수직농장(Vertical Farm·버티컬팜)은 일찍이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해결책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일반 농업과 비교해 토양 면적과 물소비량·탄소배출량이 모두 적은 반면, 농업 생산성은 높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앞다퉈 수직농장을 설계하는 스타트업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가격 상승 및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수직농장 스타트업들이 최근 극심한 경영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수직농장 기업 줄줄이 파산·정리해고 발표 🥬

수직농업 업계 침체 조짐은 지난해 말부터 관측됐습니다. 지난해 10월, 미국 피츠버그에 본사를 둔 수직농업 스타트업 피프스시즌(Fifth Season)은 돌연 폐업을 결정했습니다. 회사 설립 불과 2년만의 일이었습니다.

피프스시즌은 피츠버그에 약 6만 평방피트(약 5,574㎡) 규모의 수직농장을 운영 중이었습니다. 이 농장에서 자란 각종 채소류는 미 대형 식품 유통체인 홀푸드(Whole Foods)와 크로거(Kroger)를 포함해 약 1,200개 이상의 매장에 판매됐습니다.

2022년 초 이 회사는 “매출이 60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 미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기존보다 더 큰 수직농장 건설을 계획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피프스시즌은 높은 에너지가격과 생산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공장은 즉시 문을 닫았고, 농장 속 식물들은 방치됐습니다.

 

▲ 자동로봇이 피프스시즌의 수직농장에서 재배된 채소를 LED실에서 가져오는 모습 ©Fifth Season

같은해 11월, 네덜란드 수직농장 스타트업 글로우팜(Glowfarms)도 폐업을 결정을 했습니다. 글로우팜은 성명을 통해 “에너지가격 상승으로 인해 작물의 효율적인 생산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이 어려운 시기에 살아남을 만큼 충분한 자금을 찾기 어려웠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을 닫지 않은 수직농장 기업들의 상황도 그리 좋지 않습니다. 글로우팜의 폐업이 결정된 11월, 독일 수직농업 스타트업 인팜(Infarm)은 전체 직원의 절반 이상인 500명을 해고했습니다.

인팜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에너지가격 상승으로 인해 사업에 여러 압박을 받고 있다”며 “생산비를 더는 감당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공급망 문제로 인한 자재비 상승도 정리해고의 주요 원인으로 명시했습니다.

2013년에 설립된 인팜은 수직농업을 선도하던 기업 중 하나였습니다. 11개국에 걸쳐 1,800개 이상의 소매점에 수직농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창업 후 카타르투자청(QIA) 등으로부터 6억 450만 달러(약 7,888억원)를 투자받았습니다. 또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닌 유니콘 기업 중 하나였습니다.

인팜은 “상당한 침체로 인해 성장 둔화를 내다봤다”며 “영국·프랑스·네덜란드 지부의 운영 축소를 고려하는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 프랑스 수직농장 스타트업 아그리쿨은 컨테이너에서 주로 딸기를 재배한다 컨테이너 하나당 4000여개의 딸기를 재배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일반 농장 대비 120배나 공간이 절약된다고 밝힌 바 있다 ©Agricool

같은달 수직농장 스타트업 칼레라(Kalera)는 미 장외주식시장 나스닥(NASDAQ)으로부터 상장폐지를 통지받았습니다. 나스닥은 칼레라 주가가 30일 연속 주당 10센트 미만으로 거래되고 좀처럼 개선될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나스닥은 칼레라가 2022년 한해 동안 전체 가치의 99%를 잃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밖에도 수직농장을 운영 중이던 미 애그테크(AgTech) 스타트업 아이언옥스(Iron Ox)도 절반 이상의 직원을 해고했습니다. 일반 화물 컨테이너에서 수직농장을 운영 중이던 프랑스 수직농장 스타트업 아그리쿨(Agricool)은 재정난에 의해 올해 1월부터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에너지가격 상승으로 수직농장 운영비↑·수익↓ ☹️

수직농장 산업이 전반적으로 어려울 만큼 투자가 나빴던 것은 아닙니다. 시장조사기관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지난해 실내농장(Indoor Farming) 산업의 자금 조달액은 14억 달러(약 1조 8,200억원)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전년 조달액인 17억 달러(약 2조 3,000억원)보다 줄어든 것이나, 경기침체 속에서도 전반적으로 많은 자금이 몰렸단 평가가 대다수입니다.

다만, 알렉스 프레데릭 피치북 선임연구원은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며 “(수직농장) 기업 상당수가 성장보다는 수익성을 우선시하도록 사업 전략을 재설계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짐 레이턴 칼레라 최고경영자(CEO)는 작년 8월 투자자들에게 회사의 수익성을 위해 4개 신규 수직농장 시설 개장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수직농장계 테슬라로 불리는 미 스타트업 앱하베스트(AppHarvest) 또한 수익 창출을 위해 12개 신규 농장 건설을 보류했습니다.

 

▲ 수직농장 스타트업 앱하베스트는 미국 켄터키주 모어헤드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수직농장을 운영 중이다 ©AppHarvst

수직농장 스타트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경기침체와 공급망 대란 그리고 에너지가격 상승 등의 요인이 고루 작용한 것인데요.

특히, 연중무휴 24시간 내내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작동하는 수직농장 특성상 에너지가격 상승이 무엇보다 치명적이었단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애그테크 스타트업 아그리텍처(Agritecture)의 헨리 고든스미스 CEO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수직농장의 경우 기업이 조명·냉난방부터 물 한방울까지 모든 환경을 제어해야 하고 이를 측정할 센서까지 동작시켜야 한다”며 “농장 운영비는 평방피트(0.09㎡)당 최소 300달러(약 39만원) 이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일반 실외 농장의 운영비는 같은 면적당 몇 달러 수준에 불과합니다.

 

▲ 미국 아이언옥스는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활용해 자동화가 적용된 수직농장을 운영 중이다 2021년 빌 게이츠의 브레이크스루에너지벤처스BEV가 5300만 달러약 630억 원를 투자한 바 있다 허나 아이언옥스는 경영난으로 인해 올해 초 직원 절반 이상을 해고했다 ©IronOx

IT팀 치솟은 인건비, 수직농장 기업도 부담돼…“고물가로 소비 심리 위축” 📈

여기에 높은 인건비도 수직농장 스타트업들에게는 압박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들 기업 상당수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인공지능(AI)과 자동로봇 등 첨단기술을 수직농장에 적용했습니다. 즉, 시설 자동화를 통해 생산능력은 높이고 인건비는 줄인 것인데요.

문제는 시설 자동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로봇공학 및 정보기술(IT) 팀에게 빅테크 기업 수준의 높은 인건비를 지불해야만 했단 것입니다.

더불어 수직농장에서 나온 채소류는 가격 면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졌습니다. 2020년 미 코넬대 연구에 따르면, 시카고·뉴욕의 수직농장에서 재배된 양상추는 미 서부의 일반 농장에서 재배된 양상추와 비교해 생산비가 2배 이상 비쌌습니다.

수직농장 운영비가 많이 드는 상황에서 농산물을 팔아 충분한 수익을 내기가 어려웠단 뜻인데요. 설상가상으로 고물가로 인해 소비 심리가 위축된 것도 수직농장 산업 입장에서는 큰 타격이었습니다.

 

▲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플랜티의 수직농장의 모습 올해 1월 초 플렌티는 이 농장이 폐쇄됐단 소식을 발표했다 현재 플렌티는 미 캘리포니아주 콤프턴에 새로운 수직농장을 건설 중이다 ©Plenty

“올해 더 많은 기업이 버티지 못할 것”…수익 창출 위한 고민 필요한 시점 💰

월마트와 소프트뱅크 등으로부터 지난해 1억 달러(약 1,260억원)의 투자를 받은 수직농장 스타트업 플렌티(Plenty)의 아라마 쿠쿠타이 CEO는 “이같은 일은 (수직농업) 스타트업이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올해는 더 많은 수직농장 기업이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플렌티 또한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올해 1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운영 중이던 수직농장 시설을 폐쇄하고, 일부 직원을 해고했습니다.

에릭 스타인 미 펜실베니아주립대 경영학 교수는 수직농장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고민할 시점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스타인 교수는 수직농장에서 나온 제품들은 점점 많아진 반면, 그 제품에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 소비자는 제한된 상황임을 꼬집었습니다. 이에 베리류와 같은 더 비싼 농산물을 재배해 판매해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스타인 교수는 주요 실패 사례로 앱하베스트를 꼽았습니다. 앱하베스트는 지난해 3분기까지 총 1,000만 달러(약 130억원)의 수익을 얻었고, 이중 700만 달러(약 91억원)를 2명의 임직원 해고시 퇴직금으로 지불했습니다.

이에 스타인 교수는 “수익을 내기 전에도 보수가 높은 경영진을 뽑는다”며 수직농장 기업들이 운영 측면에서도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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