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극지방 해빙 소실 속도가 빨라진 가운데 영국의 한 기후테크 스타트업이 해빙(海氷)을 다시 얼리는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영국 리얼아이스(Real Ice)란 스타트업의 이야기입니다. 해빙은 바닷물이 얼어 만들어진 것을 말합니다. 반면, 빙하는 민물로 이뤄진 두꺼운 얼음덩어리입니다.
이 스타트업은 북극 해빙 위로 해수를 끌어 올려 얼리는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현재 캐나다 극지지식청(POLAR)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기후복구센터(CCRC)가 공동 연구 중입니다.
지난 25일(이하 현지시각) 리얼아이스는 소셜미디어(SNS)에 관련 실험 영상을 올렸습니다. 캐나다 북부 누나부트 준주에 있는 켐브리지베이에서 진행 중인 실험으로 펌프가 해수를 해빙 위로 끌어올리는 영상이었습니다.
해수 펌프가 사흘간 2시간씩 작동한 결과, 얼음 크기가 97㎝에서 123㎝까지 커졌다고 리얼아이스는 밝혔습니다.
“극지방 복원, 기후변화 악순환 막아”…현대차·UNDP 주목한 리얼아이스 🧪
리얼아이스는 영국 웨일스에 있는 뱅거대학교 내 해양보호 자원봉사 프로젝트에서 시작됐습니다.
27명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은 웨일즈 일부 지역이 기후변화로 50년 이내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수 있단 점에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이에 북극의 얼음을 다시 얼리자는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북극 얼음을 다시 얼리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이유는 ‘알베도 효과’와 연관돼 있습니다. 알베도는 물체에 반사된 햇빛 비율, 즉 반사율을 말합니다. 하얀색인 눈과 얼음의 경우 햇빛의 약 90%를 반사합니다.
문제는 기후변화로 이들 얼음이 사라짐에 따라 더 많은 태양빛을 지구가 흡수한단 것. 이는 지표면 온도가 올라 극지방 얼음이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당시 뱅거대 학생으로 재학 중이던 시안 셔윈은 풍력을 이용해 해수를 퍼올려 얼음을 다시 올리는 기계를 제안합니다.
그의 프로젝트는 2020년 유엔개발계획(UNDP)과 현대자동차그룹의 ‘내일을 위해(For Tomorrow)’ 캠페인에 솔루션 중 하나로 선정돼 소개됩니다.
크라우드소싱* 방식으로 진행된 이 캠페인은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위해 UNDP와 현대차가 캠페인에 선정된 솔루션 중 일부의 사업화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이 때문에 리얼아이스의 선정 소식은 당시 국내 언론을 통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크라우드소싱: 생산과 서비스의 과정에 소비자 혹은 대중을 참여시켜 더 나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고 수익을 참여자와 공유하는 것을 뜻한다.
수중드론 사용해 해수 끌어올려 냉동…3년간 시제품 개발, 캐나다서 실험 🌊
이듬해인 2021년 셔윈은 사업을 본격 추진하기 위해 스타트업을 설립합니다. 리얼아이스 공동설립자 겸 공동 최고경영자(CEO)인 셔윈은 수중드론을 통해 해빙을 다시 만드는 작업을 구상 중입니다.
수중드론이 해빙 아래에서 구멍을 뚫고 해수를 끌어올린 후 얼린단 것. 해빙 위에 새로운 얼음층이 형성돼 전체 온도가 내려가 커진다는 메커니즘입니다. 수중드론은 그린수소로 작동한단 구상입니다.
회사 공동 CEO인 안드레아 체콜리니는 “현재 최소 400만㎢에 달하는 얼음을 유지하고 1980년대 700만㎢ 수준으로 복원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극 원주민 지역사회와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사측은 강조했습니다. 셔윈 공동 CEO는 “원주민 지역사회의 지식과 경험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며 “(캐나다에서 진행 중인) 실험에 현지주민 참여를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리얼아이스는 향후 3년간 프로토타입(시제품)을 개발하고 제작한단 계획입니다. 또 캐나다에 약 100만㎢를 덮는 실험을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한반도 면적의 약 5배 크기입니다.
‘자금·기술력 부족’…리얼아이스, 아이디어 현실 가능성은? 🤔
문제는 자금과 기술력입니다. 리얼아이스는 ‘부트스트래핑’ 기업입니다. 이는 기업가가 외부자본을 유치하지 않고 창업해 운영하는 것을 뜻합니다. UNDP와 현대차 또한 리얼아이스에 별도의 투자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현재 리얼아이스는 ‘냉각크레딧’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는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회사가 일정량 이상의 얼음을 얼리면 그에 해당하는 양을 크레딧으로 인정받아 판매한단 것. 단, 이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없는 상황입니다.
냉각크레딧이 판매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메이크선셋이란 스타트업이 냉각크레딧을 판매해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태양지구공학 실험을 사용해 나온 크레딧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별개로 리얼아이스의 아이디어와 연구 자체가 지구공학기술이 아니냔 반문도 나옵니다. 이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기후시스템을 조절이나 통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단, 이에 대해 사측은 화학물질이나 인공적인 조작 없이 자연 과정을 모방하는 기술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스타트업도 해빙 재냉동 기술 연구” 🧊
한편, 리얼아이스와 마찬가지로 북극 해빙을 보존하려는 스타트업이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2023년 설립된 네덜란드 ‘아틱 리플렉션스(Arctic Reflections)’가 대표적입니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 출신 포저 이프마 CEO가 공동설립한 곳입니다. 네덜란드 델프트공대와 미국 하버드대 출신 연구원들이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리얼아이스와 마찬가지로 해수를 해빙 위로 끌어올려 얼리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와 별개로 북극해 주변에 해빙을 만들어 해류를 사용해 인근 해역으로 옮기는 방식도 구상 중입니다.
아틱 리플렉션스는 창업 당시 네덜란드 투자사인 유니크(UNIIQ)로부터 35만 유로(약 5억원) 상당의 시드 투자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이 투자금을 기반으로 올해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 인근에서 1차 실험을 진행한단 것이 사측의 계획입니다.
공동설립자 겸 최고운영책임자(COO)인 톰 메이제란은 “아틱 리플렉션스를 통해 실행 불가능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기후대응을 위해선 온실가스 감축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나, 사라진 극지방을 다시 되살리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돼야 한단 것이 메이제란 COO의 말입니다.
이프마 CEO 또한 “(극지방에) 얼음이 더 많아지면 태양빛 반사가 많아지고 기후대응에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