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과 홍합 등 조개류의 껍데기가 새로운 순환자원으로 떠올랐습니다.
껍데기에 탄산칼슘이 풍부해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는데요. 한국에서도 순환경제사회전환촉진법(前 자원순환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굴껍데기가 순환자원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최근에는 홍합 껍데기에 붙은 털 모양의 물질 ‘족사’에 주목한 기업이 있습니다. 족사는 대게 ‘홍합의 수염’으로 불립니다.
홍합 족사는 평소 단단하고 질겨 손질이 어려운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이 특성을 살려 새로운 순환자원으로 살려낸 것. 그런데 홍합 수염을 어떤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단 것일까요?
2021년 영국 런던에 설립된 순환소재 스타트업 ‘시스텍스(Seastex).’
대개 버려지던 홍합 수염을 고품질의 건축 자재로 탈바꿈한 기업입니다. 이들은 홍합 족사가 천연 섬유란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홍합은 대개 암석에 붙어 생활합니다. 파도와 조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단백질 성분의 강력한 섬유다발을 만들어 몸체를 고정합니다.
사실 서양에는 오래전부터 조개류의 족사를 고급 섬유로 사용했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지중해 지역 조개에서 채취한 족사로 만드는 ‘바다비단(Seasilk)’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족사의 어원에서도 드러납니다. 고대 그리스어로 족사(βύσσος)는 ‘매우 고운 황색 아마포(리넨)’란 뜻입니다.
프랑스에서도 한 스타트업이 홍합 족사를 활용해 직물 생산에 도전한 상태입니다.
허나, 시스텍스의 접근은 조금 달랐습니다.
시작은 2021년 샌더 네베얀스 최고경영자(CEO)가 홍합 수염에 주목하면서였습니다. 그는 15년 경력의 인테리어 디자이너입니다.
네베얀스 CEO는 먼저 홍합 수염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실험을 거쳤다고 말합니다. 수백 개의 샘플을 분석한 끝에 홍합 수염의 특성을 찾아낼 수 있었는데요.
약 2년 간의 연구 결과, 네베얀스 CEO는 홍합 수염이 흡음성이 뛰어나단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홍합 수염을 압축할 경우 특유의 구조로 인해 소리를 잘 흡수할 뿐더러, 내구성도 높았다는 것입니다.
홍합 수염은 화재에도 강했습니다.
불이 잘 붙지 않고 높은 열에 노출이 되더라도 세포막이 부풀면서 단열층을 형성한단 것이 사측의 설명입니다. 화재 시 불이 확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단 것.
또 화재 시 플라스틱 소재와 달리 녹지 않을 뿐더러, 연기와 유독가스도 적다고 시스텍스는 강조했습니다.
홍합 수염을 대체소재로 사용하기 위해선 하나의 관문이 더 남아있었습니다.
여러 부산물로 오염된 홍합 부산물에서 깨끗한 섬유만 회수할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홍합 양식농가에서 가져온 홍합 부산물에는 깨진 껍질과 침전물 등이 섞여 비린내가 진동했습니다.
이에 네베얀스 CEO는 창업 2년차에 균일한 족사 섬유를 회수하는 처리 공정을 개발하는데 매진했습니다. 관건은 대량의 폐기물을 효과적으로 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홍합 수염을 폭신한 소재로 가공하는 기술개발에도 열중합니다.
이렇게 개발된 소재는 ‘시울(Seawool)’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시스텍스는 시울이 다양한 분야의 인테리어 소재로 사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홍합 수염 소재는 기존의 양털·면 등 천연섬유와 달리 토지 이용과 비료·살충제 사용이 없고 생분해가 가능합니다. 홍합 부산물의 매립을 방지함으로써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CH4) 발생을 줄이는 효과도 있습니다.
시스텍스는 홍합 수염을 원료화함으로써 홍합 양식업계의 추가적인 수익원 창출에도 기여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홍합은 해양의 이산화탄소(CO₂)를 흡수하는 동시에 미세플라스틱을 정화하는 역할도 수행합니다.
최근에는 홍합 암초가 해안가 침식 방지와 해양생물 서식지를 제공해 기후대응과 생물다양성 회복에 도움된다는 점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2년 간의 연구개발 끝에 시스텍스는 작년 9월 런던디자인페스티벌에서 첫 번째 제품을 공개했습니다.
홍합 수염의 특성을 살린 음향·단열 패널 ‘ABC 타일’입니다. 전기 시스템, 배관, 냉난방공조(HVAC) 등 건물 유지관리 시스템을 방해하지 않도록 분리가 가능하도록 설계됐습니다.
수명이 다한 제품은 무료로 수거돼 새로운 제품의 원료로 재활용됩니다.
네베얀스 CEO는 ABC 타일의 출시를 시작으로 앞으로 건설 산업의 혁신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이어 2030년까지 세계 홍합 폐기물 배출량의 25%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