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테크란 분야는 특수하다. 기존 정보통신(IT) 시장과 달리 정부의 감축목표가 시장의 수요를 창출한다. 정책과 밀접할뿐더러, 규제나 정책 수립 나아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수립에 따라 시장의 크기가 달라진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 온드림소사이어티에서 열린 ‘월간클라이밋’ 행사에 참석한 김승완 사단법인 넥스트 대표가 남긴 말입니다. 월간클라이밋은 임팩트투자사 소풍벤처스가 주관하는 행사입니다.
‘스타트업을 위한 기후정책 가이드’를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 참석한 각 분야 전문가는 정책 리스크와 관련한 경험담을 이야기했습니다.
“IEA, 탄소중립 달성 위해 필요한 기술 중 50% 아직 시장에 출시 안 돼” 🧪
이날 세미나는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넥스트가 발간한 ‘기후정책 가이드북: 기후테크의 기회와 장벽’의 총괄저자인 이제훈 넥스트 선임연구원의 발제로 시작됐습니다. 이 가이드북은 지난해 11월 발간됐습니다.
보고서 작성 배경에 대해 이 연구위원은 작년 4월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에서 발표한 ‘제1차 탄소중립기본계획’을 언급했습니다.
이 연구위원은 “기본계획 발표 후 그들(정부)이 사용하는 언어와 기후테크 기업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며 “기본계획에서 느껴지는 장벽을 서술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3년간 기후테크 기업에서 일하며 규제를 느꼈다”며 “기후테크 거버넌스에 대한 고민과 전략적 접근을 보완하는 역할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필요한 온실가스 중 50%는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혁신 기술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이에 이 연구위원은 탄소중립의 선결과제 중 하나로 기후테크의 기술혁신을 강조했습니다.
이 연구위원은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비용이 상승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저탄소 기술이 나오면 신(新)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피력했습니다.

韓 기후테크 삼극특허 점유율 7% 불과…4대 부문에 필요한 기술·정책은? 🤔
넥스트에 따르면, 한국의 기후테크 삼극특허 점유율은 7% 수준입니다.
삼극특허는 미국·일본·유럽 등 특허청에 모두 등록된 특허입니다. 국가 기술경쟁력을 파악하는 지표로 활용됩니다.
한국의 기후테크 삼극특허 점유율은 일본(42%)이나 미국(20%) 등 주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합니다. 단, 기후테크의 전반적인 기술수준 연평균 증가율은 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9%를 상회합니다.
이날 이 연구위원은 발제에서 크게 4대 부문(전환·산업·건물·수송)에 필요한 혁신 기술과 정책 리스크를 설명했습니다. 4대 부문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99%를 차지합니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전환(발전)
- 기본계획 내 감축목표 2018년 대비 2030년까지 9% 감축(약 1억 4,590만 톤).
전환은 2018년 기준 국내 온실가스 배출에서 3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산업과 수송 등 다른 부문에서 기존 에너지원을 전력화함에 따라 향후 전력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이 연구위원은 “(기본계획에서) 전환 부문의 방확성은 명확하다”며 “디테일에서 승부가 결정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전력시장 등 전환 부문을 둘러싼 시장과 제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단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전환 부문 기업의 경우 정책 동향을 빠르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이 연구위원은 덧붙였습니다.
🏭 산업
- 기본계획 내 감축목표 2018년 대비 2030년까지 4% 감축(약 2,980만 톤)
산업 부문은 딥테크(첨단기술)를 중심으로 기후테크가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유럽에서는 저탄소제품을 더 높은 가격으로 구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 연구위원은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딥테크 기후대응 기술을 둘러싼 국제경쟁이 치열하다”며 “전통 공정에서 벗어나는 분야에 대한 딥테크 선도 기술 확보가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 건물
- 기본계획 내 감축목표 2018년 대비 2030년까지 8% 감축(약 1,710만 톤)
기본계획 내에서 건물 부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그리리모델링과 히트펌프가 언급됐습니다.
이 연구위원은 히트펌프에 대해 “과거에도 히트펌프를 도입하려고 했으나 규제가 많았다”며 “한국에 도입하기 위해선 어떤 개선이 필요한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또 초기 비용이 높은 만큼 금융시장과 연계하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 수송
- 기본계획 내 감축목표 2018년 대비 2030년까지 8% 감축(약 3,710만 톤)
마지막으로 수송 부문에서는 전기자동차 확대와 충전기 보급 등이 새로운 시장에 상당한 기회가 있다고 이 연구위원은 설명했습니다. 단, 기존 사업자와의 갈등 등 제약 요인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그는 밝혔습니다.
+ 탄녹위, 기후테크 5대 분류체계 따르지 않은 이유는? 📊
한편, 탄녹위의 기후테크 5대 분류체계를 따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 연구위원 “모든 기업이 배출량과 연관해 논의된다”며 “새로운 분류체계가 나오면 기후정책의 효과성이 위배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기후테크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정책 리스크” ⚖️
이어진 패널토론에서 전문들은 현실적인 제언과 경험담을 쏟아냈습니다. 기후테크가 정책 변화에 민감하단 점에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이효섭 인코어드 부사장은 “기후테크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정책 리스크다”라고 꼬집었습니다.
2013년 설립된 인코어드는 에너지 수요 관리 스타트업입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사용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이 부사장은 “새롭게 형성된 제도나 시장의 경우 (정부도) 누가 담당자인지 모를 때가 많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는 “산업통상자원부에 문의하면 한국전력공사에 물어보라며, 민원을 회전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산자부, 한전, 에너지공단 등 너무 많은 이해관계자가 엮어있을뿐더러, 담당자조차도 새로운 제도를 모르는 경우가 많단 것. 이와 관련해 가이드가 필요하단 의견도 내놓았습니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녹색건축이 시대적으로 맞다”면서도 “초기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현실적으로 전환이 가능하냐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단, 이는 지원금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란 점을 김 교수는 분명히 했습니다.
강인철 플러그링크 대표도 정책 리스크를 언급했습니다. 2021년 설립된 플러그링크는 전기차 충전 사업에 필요한 시설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 중입니다.
강 대표는 “창업 전후로 친환경자동차법 시행령이 개정돼 기존 건물까지 소급해 전기차 충전 구역이 의무화됐다”고 밝혔습니다. 덕분에 한국 건물 주차장의 2%가 전기차 충전기 설치가 의무화된 것.
직후 대기업들까지 전기차 충전 사업에 진출해 과경쟁 시장, 즉 레드오션이 됐단 것이 강 대표의 설명입니다. 강 대표는 “(전기차 시장은) 아직 보조금에 의존하나 자동차 총소유비용 측면에서 언젠가 저렴해질 것이란 기대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일개 대표로서 기후대응이란 거창한 목표를 지원하고 있단 자부심이 아직 와닿지 않는 영역”이라며 “금융 드라이브가 필요하다”고 목소리 높였습니다.
황유식 그리너리 대표는 자발적 탄소시장(VCM)과 관련해 유럽을 중심으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는 상황을소개하며 “한국이 멀어지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인 기후테크 산업…“인프라 금융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
한편,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는 기후테크 산업을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했습니다. 자본이 수익률이 높은 곳으로 가는 것이 현실이란 것. 바이오나 AI와 같이 주요 투자 트렌드에서 기후가 잘 보이지 않는단 점도 문제라고 한 대표는 밝혔습니다.
에너지, 폐기물 등 기존 산업과 기후산업이 구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년간 기후테크 산업으로 투자가 몰리긴 했으나, 정작 초기 기업들은 자금 부족을 느끼고 있단 현실도 꼬집었습니다.
한 대표는 정부 차원에서 “기후금융을 인프라 금융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며 “SOC(사회간접자본)급으로 인센티브를 확실히 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컨트롤타워 부재에 대한 지적도 나왔습니다. 한 대표는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와 관련해 은행에 갔는데 정작 실무자가 모르는 경우가 있다”며 “(기후금융을) 누가 이끌고 있는지 컨트롤타워 윤곽이 안 보인다”고 꼬집었습니다.
한 대표는 “기후와 연관된 사업은 전체 밸류체인(가치사슬)과 커플링돼 있어야 한다”며 “기후테크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자사의 기술이 밸류체인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전체 시야를 가지고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