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 달러(약 6,680억원)로 북극 빙하를 구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각)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급격하게 소실 중인 극지방 빙하를 구하기 위한 해결책 중 하나로 지구공학기술이 과학계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빙하 해저에 방파제를 건설해 따듯한 해류인 난류를 막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아이디어를 둘러싸고 과학계가 분열됐다고 네이처는 전했습니다.
NASA 등 美 연구진 “그린란드 빙하 소실 알려진 것보다 多”…담수 유입 ↑ 🌊
이같은 아이디어의 배경에는 극지방 빙하 소실이 예상보다 가파른 상황이 있습니다.
같은날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제트추진연구소(JPL) 등 공동연구진은 네이처에 북극 인근 그린란드 내 빙하 소실이 애초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이 사라졌단 연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공동연구진이 지난 37년간(1985~2022년) 그린란드 빙하 가장자리가 표시된 위성사진 23만 6,000여장을 분석한 결과, 2003년 이후 그린란드에선 연간 약 2,600억 톤에 달하는 양의 빙하가 녹아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시간당 평균 3,000만 톤이 사라졌단 뜻입니다.
그 결과, 이제까지 알려진 것보다 20% 많은 빙하가 사라진 것이 발견됐습니다.
공동연구진은 현재까지 그린란드 빙하 소실이 해수면 상승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은 미미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문제는 해류 순환 시스템인 ‘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류(AMOC)’가 붕괴할 수 있단 우려가 나오는 것. 빙하가 녹으며 나온 담수가 해류 시스템을 붕괴시킬 경우 기상이변이 불가피합니다.
논문 제1저자이자 NASA JPL 소속 빙하학자인 채드 그린 박사는 “그린란드 빙하가 최근 수십년간 감소했다”며 “바다에 유입되는 담수의 양이 늘어나면 AMOC 약화는 불가피하다”고 경고했습니다.

2018년 ‘둠스데이 빙하’ 구할 기술 제안한 무어 박사, 방법은? 🧊
극지방 빙하를 구할 방법으로 제안된 것은 지구공학기술입니다. 지구공학기술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기후시스템을 조절이나 통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논의 자체는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 빙하학자이자 핀란드 라플란드대 북극센터 교수인 존 무어 박사는 네이처에 극지방 빙하 주변 해저에 대형 장벽을 쌓는 지구공학기술을 제안했습니다.
그린란드 서쪽 해안에 있는 거대 빙하 ‘세르메크 쿠잘레크’를 연구한 결과, 이 빙하가 해수면 300m 아래 대서양에서 흘러온 난류에 닿아 더 빠르게 소실되고 있단 것이 무어 박사의 말입니다.
이에 무어 박사는 빙하 주변에 자갈과 모래를 사용해 100m 높이 방파제를 짓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빙하까지 흘러오는 난류가 줄어들며 빙하가 녹지 않는단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그는 이 기술이 남극에 있는 ‘스웨이츠’ 빙하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한반도 전체 면적과 비슷한 스웨이츠 빙하(19만 9,000㎢)가 녹으면 서남극지역 전체 붕괴로 이어져 5.3m의 급격한 해수면 상승을 초래합니다. 이 때문에 ‘둠스데이 빙하’로 불립니다.
무어 박사는 그린란드 빙하 보호에 필요한 비용이 5억 달러, 우리돈으로 약 6,68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스웨이츠 빙하의 최대 500억 달러(약 66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밖에도 무어 박사는 300m 높이의 인공섬을 만들어 빙붕 유실을 막거나, 해수를 육지로 끌어올려 얼리는 방식으로 빙하 소실을 낮추는 방법 등을 제안했습니다.

“빙하 해저에 부유식 커튼 건설해 난류 차단”…2024년에도 연구 이어져 🤔
무어 박사의 연구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 각지 기술자와 사회과학자와 협력해 방파제 건설에 적합한 소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기술 자체도 방파제에서 ‘커튼 콜(Curtain Call)’로 바뀌었습니다.
커튼이 햇빛을 차단해 주는 것처럼, 난류를 막아주겠단 것. 이는 해저에 고정된 부유식으로 설계됩니다.
그는 “내구성이 뛰어나고 미끄러운 플라스틱이 초기에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플라스틱을 모든 곳에 사용하기에는 좋은 재료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현재는 플라스틱과 비슷한 특성을 지닌 천연섬유가 검증 대상에 올랐습니다.
무어 박사는 지역주민들이 아이디어에 동의하고 지지할 시 시범장치 건설 및 연구까지 약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실제로 일부 과학계에서는 무어 박사의 연구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기후복구센터는 오는 2월 무어 박사의 방파제를 모델링하기 위해 실험을 진행합니다. 커튼 콜 건설 시 해류의 흐름과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미 다트머스대에서도 유체역학 모델링 실험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환경 여파·비용 문제 산적”…극지방 인근 대규모 토목건설 타당성 지적도 📊
문제가 없진 않습니다.
이 기술이 실제로 구현될 시 일어날 환경적 영향에 대한 여파가 가늠이 안 된단 것이 주된 논쟁거리입니다.
무어 박사는 독일 알프레드베게너 극지해양연구소(AWI)와 협력해 작년 4월 미 국립과학원 학술지인 넥서스(PNAS Nexus)에 추가 연구를 게재했습니다.
무어 박사는 해당 학술지에서 “(방파제나 커튼 콜을 지으면) 해당 빙하가 녹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서도 “난류가 다른 해역으로 흘러가는 탓에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노르웨이 베르겐대 극지방 해양학자인 라스 스메드스루드 박사도 비슷한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스메드스루드 박사는 “커튼 콜이 빙하와 바다 사이의 영양분 흐름을 차단할 수 있다”며 “잠재적으로 주변 해양생태계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또 이 아이디어가 해양열파를 막는 것이 아니라 빙하의 국지적인 소실을 막는 것일 뿐이라고 그는 지적했습니다.
미 콜로라도대 산하 국립빙설데이터센터 수석연구원이자 빙하학자인 트윌라 문 박사도 같은 지점을 우려했습니다. 문 박사는 또 극지방에서의 대규모 건설이 극도로 어렵단 점을 꼬집었습니다.
문 박사는 “빙하 소실 외에도 너무 다양한 요인이 해수면 상승에 기여하고 있다”며 “해수면 상승을 막기 위해선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적응에 더 많은 시간과 자원,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피력했습니다.

“커튼 콜 건설 비용 2021년 선진국이 낸 기후재원과 맞먹어” 💰
비용 역시 주요 논쟁거리 중 하나입니다. 무어 박사에 따르면, 길이 80㎞·깊이 600m에 이르는 커튼 콜을 바다에 설치하긴 위해선 400억~800억 달러(약 53조~107조원)가 필요합니다.
이는 2021년 선진국이 낸 기후재원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연간 유지 관리비용도 최대 20억 달러(약 2조 6,000억원)가 필요합니다.
다만, 해당 연구를 지지하는 케임브리지대 기후복구센터 소장인 숀 피츠제럴드 박사는 “커튼 콜 건설에 필요한 비용이 국가가 해수면 상승에 대처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과 비교돼야 한다”고 반문했습니다.
커튼 콜 프로젝트 추진에 합류한 마리안 하겐 전(前) 노르웨이 외무부 차관은 해안주택 보유자나 사업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일부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기후변화 해결할 시간 벌기 위한 ‘임시 조치’ 중 하나” ⚗️
도덕적 해이를 둘러싼 논쟁도 큽니다. 온실가스 감축이 더 우선돼야 하는 상황에 이같은 논쟁이 소모적이란 주장입니다.
무어 박사도 동의하는 대목입니다. 그는 “인류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빠르게 배출량을 감축해야 한다”고 피력했습니다. 단, 무어 박사는 임시방편으로 이 기술도 필요하단 입장입니다.
그는 “도덕적 해이란 대중에게 어떤 잠재적인 기술이 사용될지 알리지 않는 것”이라고 첨언했습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지구해양대기학과 교수인 크리스티안 쇼프 또한 이 기술이 ‘임시 조치’인 점을 강조했습니다. 커튼 콜 등 지구공학기술이 인류에게 기후변화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이란 것이 쇼프 교수의 말입니다.
빙하학자이자 미 시카고대 명예교수인 더글라스 맥아이엘 박사는 1970년대 있었던 기후과학계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맥아이엘 박사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1978년 서남극빙붕의 재앙적 붕괴 가능성을 기후변화와 연결한 오아히오주립대의 한 빙하학자가 있었다”며 “당시 그 학자가 제안한 개념은 극심한 저항에 부딪혔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과학계에선 서남극대륙의 빙하가 소실되는 것을 검증하기 위해선 수십년의 연구와 데이터가 필요하단 지적이 주를 이뤘습니다.
맥아이엘 박사는 커튼 콜 같은 지구공학기술 자체가 비슷한 제안인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이들 기술이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불신은 그 이상으로 크단 것.
그는 “움직이는 빙하 옆에 서는 것은 ‘괴물 옆에 서는 것’과 같다”며 “인간이 개입해서 이 움직임을 바꿀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맥아이엘 박사는 “지금으로부터 몇 년이 지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 세계경제포럼(WEF) 2024년 지구공학 등 기후테크 신기술 부작용 주의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