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전반에 그린허싱이 만연하단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린허싱이란 의도적으로 친환경·지속가능성 등과 관련된 목표와 성과 전반을 과소보고하거나 숨기는 것을 뜻합니다.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중 하나로 분류됩니다.
지난 16일(이하 현지시각) 스위스 탄소컨설팅 기업 사우스폴이 발간한 ‘2023/2024 넷제로 보고서’에 담긴 내용입니다. 조사는 영국 시장조사기관 사피오리서치와 협력해 진행됐습니다.
사우스폴은 12개국 1,4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그린허싱이 널리 퍼진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기업은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기업들이 탄소배출 감축 노력을 줄이고 있단 뜻이 아닙니다. 조사 대상 1,400개 기업 중 4분의 3가량은 배출량 감축을 위해 이전보다 더 많은 재원을 쏟아붓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단지, 그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길 꺼린단 것.
사우스폴 커뮤니케이션팀 부국장이자 보고서 주저자인 나디아 캐흐쾨넨은 “이번 조사 결과가 우려스럽다”고 밝혔습니다.
기업들이 배출량 감축에서 배운 성과와 개선점을 공유해야 하나, 그린허싱이 이를 방해한단 것이 캐흐쾨넨 부국장의 지적입니다.
1400개 기업 중 58% “1년간 기후 관련 외부 커뮤니케이션 줄여” 📉
이번 조사에 포함된 기업은 직원 수가 1,000명 이상인 곳을 대상으로 진행됐습니다. 또 지속가능성 전략이나 팀을 보유했거나, 최고지속가능경영책임자(CSO)가 회사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곳만 조사에 참여했습니다.
응답자 모두 각 기업의 CSO나 CSR(사회공헌활동) 책임자였다고 사우스폴은 덧붙였습니다.
사우스폴은 조사 기업 1,400곳 모두가 기후대응에 있어 세계적으로도 선도적인 기업인 점을 강조했습니다. 조사 기업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이들 기업조차조차 그린허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단 것이 발견됐습니다.
조사 기업 CSO 중 44%는 지난 1년간 기후목표와 관련된 의사소통이 더 어려워졌다고 답했습니다. 또 58%는 외부 커뮤니케이션을 줄였다고 답했습니다.
이와 별개로 조사 기업 중 18%는 과학기반목표(SBT)에 의거한 감축목표를 공개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외부 커뮤니케이션을 줄인 이유에 대해 조사 기업 중 절반 이상인 57%는 환경보고 및 커뮤니케이션 내 규정 변화를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이어 고객들의 철저한 조사(45%), 친환경 주장 위한 데이터 부족(43%), 언론 감시 증가(41%) 순으로 높았습니다.
환경·소비재·화석연료 기업일수록 그린허싱 응답 ↑ 🤔
산업 부문별로도 차이가 발견됐습니다. 조사 대상 14개* 산업 부문 중 3개(환경·소비재·화석연료)에서 넷제로 목표와 관련된 외부 커뮤니케이션을 줄이는 중이란 기업 응답이 높았습니다.
재활용·재생에너지 등 환경으로 분류된 기업의 약 88%는 ‘기후목표와 관련된 메시지를 줄이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환경 기업일수록 투자자·고객·언론으로부터 더 많은 감시와 요구를 받기 때문입니다. 사우스폴은 “이들 기업은 기후대응과 관련해 (다른 산업보다) 더 기준이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식음료·생활용품 등을 판매하는 소비재 기업(86%)과 석유·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기업(72%)이 뒤를 이었습니다.
사우스폴은 “조사 대상 14개 중 9개 산업 부문에서 기후커뮤니케이션을 적극적으로 축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14개 산업: 제조, 소비재, 미디어·통신, IT, 운송, 환경, 금속, 화석연료, 유틸리티, 의료, 금융·투자, 부동산, 자동차 등
프랑스 등 유럽에 본사 둔 기업일수록 그린허싱 압박 높아 ⚖️
국가별로도 차이가 발견됐습니다. 12개국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번 조사 결과, 일본과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만이 그린허싱에 대한 압박이 낮다고 답했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본사를 둔 기업의 경우 기후행동과 관련된 외부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고 답한 기업은 56%에 그쳤습니다.
물론 이는 지난해 조사보다 높아진 것입니다. 작년 3월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그린워싱 감시 강화를 위해 ‘그린 가이드’ 개정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올해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주정부 차원의 그린워싱 방지법이 발효됐습니다. 이같은 정책이 영향을 정책을 줬단 평가입니다.
사우스폴은 “그린허싱이 국가 전반에 걸쳐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유럽에 본사를 둔 기업들은 더 큰 압박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후행동과 관련된 외부 커뮤니케이션을 중단한 기업 중 프랑스에 본사를 둔 기업이 82%로 가장 높았습니다. 스웨덴 기업도 79%로 높은 편에 속했습니다.
이같은 결과는 유럽이 그린허싱 등 그린워싱과 관련된 정책이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강하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프랑스의 경우 2021년 4월 세계 최초로 그린워싱 벌금을 법제화했습니다. 기업의 제품·광고 등이 그린워싱으로 적발되면 허위 홍보 비용의 80%까지가 벌금으로 부과됩니다.
이와 별개로 제품·서비스에 친환경 주장을 넣기 위해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도록 한 법이 유럽연합(EU) 차원에서 도입된 것도 영향을 줬단 평가입니다.
“뉴노멀된 그린허싱”…기업 브랜드 이미지 훼손·기후대응 방해 🏛️
정작 조사 기업 중 81%는 ‘기업 성공을 위해선 넷제로 전략을 홍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이같은 모순된 결과에 사우스폴은 “그린허싱이 뉴노멀이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뉴노멀이란 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경제적 표준을 뜻합니다.
이사벨 헤그링크 사우스폴 글로벌 이사는 “새로운 규제와 불확실성, 조사 등에 직면한 기업들이 그린허싱을 결정한단 것이 걱정스럽다”면서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사우스폴은 궁극적으로 그린허싱을 피해야 한다고 피력합니다.
그린허싱 자체가 세계 기후대응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그린허싱 사실이 알려지면 기업 브랜드 이미지를 더 깎아 먹기 때문입니다.
이에 사우스폴은 “(그린허싱에 대한) 기준이 모든 산업에 높아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규제가 느슨한 업계나 배출량이 많고 감축이 어려운 에너지 집약적 산업에서 더 면밀하게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우스폴은 “그린허싱은 비즈니스 관점에서 비생산적”이라며 “기업은 비판을 받을 위험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곧 기업의 기후행동이라며, 이러한 기회를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제언했습니다.
무엇보다 탄소중립·기후중립·친환경 등 기업의 주장은 모두 과학을 기반으로 측정되고 검토될 수 있어야 한다고 기관은 강조했습니다. 관련 진행 상황과 목표는 정기적으로 공개돼야 한다고 기관은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