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청정수소의 생산 장려를 위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생산 세액공제 세부기준을 공개했습니다. 지난 6월 미 에너지부(DOE)가 국가 청정수소 전략 및 로드맵을 발표한 지 반년 만입니다.
미 재무부와 국세청이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각) 공개한 ‘청정수소 생산 보조금 세부기준’에 따르면, 청정수소 생산 시 1㎏당 최대 3달러(약 3,800원)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세액공제액은 전주기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4단계로 차등화됩니다.
고온·고출력이 필요한 중화학·중공업·중장비 운송의 탈탄소화 수단으로 주목받은 청정수소. 그간 높은 비용과 생산 확장에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이 때문에 IRA의 생산 세액공제가 청정수소 업계에 단비가 될지 기대를 받아왔습니다.
정작 청정수소 업계에선 이번 세부기준에 엄격한 조건이 포함돼 청정수소의 범위를 대폭 좁혔단 반발도 나옵니다.
美 에너지부, 청정수소 기준 발표 “온실가스↑ 막기 위해 3대 기준 제시” ⚖️
이번에 발표된 세부기준에는 ▲전주기 온실가스 배출량 ▲적격 청정수소 ▲적격 수소 생산시설 등의 정의가 담겼습니다.
먼저 전주기 온실가스 배출량은 미 아르곤국립연구소의 최신 분석모델인 ’45VH2-GREET’에 따라 ‘웰투게이트(well-to-gate)’ 부분으로 산정됩니다. 쉽게 말해 원료 생산부터 운송, 수소 생산까지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포함된단 것.
CCS(탄소포집·저장)를 접목한 화석연료 기반 수소 생산(블루수소), CCS를 접목한 바이오매스 가스화, 재생에너지 기반 수전해(그린수소), 원자력 기반 수전해(핑크수소) 등이 청정수소 생산 방식으로 인정됐습니다.
공제액은 수소 1㎏당 배출량 ▲0.45㎏ 미만 3달러 ▲0.45~1.5㎏ 1달러 ▲1.5~2.5㎏ 0.75달러 ▲2.5~4㎏ 0.6달러로 차등화됩니다.
동시에 재무부는 적격 청정수소 및 생산시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용된 에너지의 ‘에너지특성인증서(EAC)’가 3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기준은 추가성(incrementality)·지리적 상관성(deliverable clean power)·시간적 상관성(time-matching)입니다.
에너지부는 이러한 3가지 기준 없이 세액공제를 제공할 시 수소 생산을 위한 전력으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할 위험이 있단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존 포데스타 미 백악관 청정에너지 선임고문은 “중요한 환경보호 조치를 포함하는 동시에 청정수소 산업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1️⃣ 추가성
추가성이란 청정수소 생산에 사용되는 전력은 청정전력원의 신규 발전소 또는 추가된 발전 용량으로 충당돼야 한단 뜻입니다. 이는 전기자동차 충전이나 산업용 전기에 사용됐던 기존 청정전력이 청정수소 생산으로 이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수소 생산 시점을 기준으로 3년 이내에 신규 건설된 발전소 또는 추가된 발전 용량으로 청정전력을 조달해야 한단 점이 세부기준에 명시됐습니다.
2️⃣ 지리적 상관성
세부기준은 청정전력이 수소 생산지와 동일한 지역에서 공급돼야 한다고 정의합니다. 에너지부의 3년 주기 그리드(계통) 연구 결과, 이 경우 송전 혼잡을 해소하고 비용효율적인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란 설명입니다.
단, 지리적으로 멀더라도 발전시설과 수소 생산시설 간 전력 전달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추가 방법에 대해선 의견 요청 사항으로 열어두었습니다.
3️⃣ 시간적 상관성
수소 생산과 동시간대에 공급되는 전력에서 나오는 배출량이 전주기 온실가스 배출량에 포함해야 한단 내용입니다. 청정전력 사용 내역을 2027년부터는 연 단위로, 2028년부터는 시간 단위로 입증해야 합니다.
청정수소 생산에 청정전력이 실제로 사용됐는지를 검증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추가성 보다 강력한 검증 조건입니다.
*해당 용어의 해석은 산업통상자원부를 인용함.
엄격한 기준에 원자력·CCS 기반 청정수소 프로젝트 난색 💦
청정수소 세액공제 세부기준 발표를 기다려온 업계는 당황한 기색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난색을 표한 곳은 원자력 업계입니다.
세부기준에서는 3년 이내 신규 건설된 발전소에서 청정전력을 조달해야 한다고 제시합니다. 허나,원자력발전소는 신규 건설은 물론 발전 용량 추가에도 3년 이상의 기간이 걸립니다.
쉽게 말해 현 기준대로는 원전을 사용한 핑크수소는 적격 청정수소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CCS를 활용한 블루수소도 생산 세액공제 혜택을 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이는 지난 5일 에너지부가 공개한 ‘수소샷 기술 평가’ 문서에 따른 분석입니다. 해당 보고서는 2031년까지 청정수소 1㎏당 생산비용 1달러라는 목표(수소샷)를 달성하기 위한 조건을 분석한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CCS를 활용한 천연가스 기반 블루수소는 세액공제의 최저 기준인 청정수소 1㎏당 배출량 4㎏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천연가스 생산 과정, 즉 업스트림의 배출량이 높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프라법(IIJA)에 따른 CCS 세액공제(저장되는 CO₂ 1톤당 85달러)를 받을 경우, 청정수소 생산 세액공제를 중복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CCS를 사용한 화석연료발전소의 전력을 사용한 수전해 생산을 청정수소로 인정할지에 대해서는 의견 요청 사항으로 유보한 상황입니다.
“수소 리더십 中·EU에 내줄 것”…그린수소도 비용 ↑ 💰
미 민주당 내 보수성향 인사인 조 맨친 웨스트버지니아주 상원의원은 이번 세부기준에 대해 10배는 더 엄격해진 기준이라며 “수소시장이 시작되기도 전에 무산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맨친 의원은 화석연료 업계를 대변하는 정치인 중 한 명입니다.
미국 최대 원전 운영기업 컨스텔레이션에너지는 성명을 통해 “(세부기준이) 확정된다면 미국은 기존 원전을 활용해 수소와 탈탄소화 정책을 펼치고 있는 중국과 유럽에 수소 및 탈탄소화 리더십을 넘겨주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린수소 또한 ‘시간적 상관성’ 조건으로 인해 생산비용이 급증할 수 있단 우려가 나옵니다.
미 컨설팅 기업 우드맥킨지는 지난 3월 해당 조건이 적용될 경우 그린수소 생산비용이 세액공제를 적용받더라도 2030년 생산비용이 1㎏당 4~5달러에 상당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반면, 청정전력 사용을 연간 단위로 입증할 경우 생산비용은 세액공제 적용 시 1㎏당 2025년 2달러·2030년 1.5달러 미만으로 급감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재무부가 해당 안에 대한 의견을 받고 있는 만큼, 추후 수정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지난 10월 선정된 ‘지역 청정수소 허브’ 7곳 중 2곳이 원자력을 이용한 핑크수소 생산 계획을 포함했단 점도 주목할만 합니다. 컨스텔레이션에너지 또한 그중 하나인 ‘중서부 수소 허브(MachH2)’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재무부는 해당 세부기준 안에 대해 60일간 공개 의견을 수렴한 뒤 계획을 확정할 계획입니다.
산자부 “국내 기업 사업 활성화 기대”…韓 청정수소 인증제에 끼칠 영향은? 🇰🇷
미 정부가 내놓은 청정수소 생산 보조금 세부기준에 우리 정부의 입장은 일단 긍정적입니다.
지난 26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설명자료를 통해 “우리 기업의 미국 내 청정수소 프로젝트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국내 기업들은 미래 에너지원으로써 수소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북미, 중동, 호주 등 다양한 지역에서 청정수소 공급망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에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미국의 청정수소 세부기준이 우리나라의 청정수소 인증제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
앞서 수소경제위원회는 지난 18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제6차 회의를 열고 ▲청정수소 인증제 운영방안 ▲수소 산업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육성 전략 ▲수소전기차 보급 확대 방안 ▲국가 수소 중점 연구실 운영방안 등을 심의 의결한 바 있습니다.
청정수소 인증제는 ‘수소 1㎏당 온실가스 배출량 4㎏ 이하’의 수소를 청정수소로 인증하고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청정수소를 4등급으로 구분하고, 차등적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정부는 청정수소 인증 시범사업을 추진해 2026년까지 50개 이상의 예비·시범 인증 수요를 발굴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인 인센티브의 금액과 규모는 제시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