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피해를 입은 개발도상국의 경제적·비경제적 손실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이 공식 출범했습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각) 개막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손실과 피해기금(Loss and Damage Fund)’이 정식 채택됐습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COP28은 11월 30일부터 오는 12일까지 약 2주간 열립니다.
작년 27차 당사국총회(COP27)에서 어렵게 합의에 성공한 손실과 피해 기금. 합의 후 구체적인 액수와 기금 조성 방법 등을 둘러싸고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 이견이 첨예했는데요.
그렇다면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 금액은 얼마나 될까요?
이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기후변화의 피해액을 한 장의 영수증으로 보여주는 플랫폼이 있습니다. 기후변화 시각화 플랫폼 ‘두번째 바다(Second Sea)’의 이야기입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피해, 영수증으로 볼 수 있다? 🤔
‘두번째 바다’는 기후변화의 대표적인 환경 영향인 해수면 상승을 주제로 합니다. 136개 해안도시에서 2100년까지 예상되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피해 금액을 보여줍니다.
먼저 136개 해안도시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이어 연도와 기준이 될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선택합니다.
그러면 선택한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라 해당 도시의 해안선 높이가 파란 물결로 시각화됩니다.
이에 따라 예상 해안선 상승 수치와 그로 인한 피해액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때 예상 피해액에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이주, 습지 손실, 생물다양성 감소, 홍수 등이 고려됩니다.
최종적으로는 선택한 도시명과 예상 해수면 상승치, 그로 인한 피해액이 영수증 형태의 이미지로 생성됩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의 RCP 시나리오가 적용됐다. 연구팀은 ▲적극적 저탄소 시나리오인 RCP 2.6 ▲상당한 온실가스 배출 저감이 이뤄진 RCP 4.5 ▲현재 온실가스 배출이 그대로 이어지는 RCP 8.5 등 3가지 시나리오를 선택지로 제공한다.
온실가스 15% 배출했다면? “피해보상 책임도 15%” 🧮
이 영수증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해수면 상승에 책임이 있는 국가들의 이름과 각국의 책임에 비례한 비용이 모두 기재돼 있단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은 국가 순으로 나열할 경우,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영국 등의 순서입니다. 정렬 방식을 바꿔 배출량이 적은 국가 순으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연구팀을 이끈 영국 런던왕립예술대학(RCA)의 아드리안 라후드 건축학과 학장은 국가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 기여도를 비례적으로 적용해 계산을 산출했다고 설명합니다.
라후드 학장은 “한 국가가 전 세계 배출량의 15%에 책임이 있다면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손실과 피해에도 15%의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는데요.
CO₂가 전 세계에 고르게 분포하며 대기 중에서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누적 배출량에 따른 비례적 책임을 요구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해수면 상승, ㎝ 단위라고 얕볼 수 없어 “피해액은 기하급수 ↑” 📏
라후드 학장은 기후변화에 대한 데이터를 더 쉽게 이해하고, 기후행동에 영감을 주기 위해 이번 프로젝트를 수행했다고 말합니다.
해수면이 35㎝ 상승할 전망이라고 말할 때, 누군가는 아이폰 몇 대를 포갠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 대중들이 해수면 상승치의 실제 영향을 체감할 수 있도록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편, 한국의 경우 플랫폼에 따르면, RCP 8.5 시나리오에서 2050년 인천·부산·울산시의 해수면 상승치는 각각 21.8㎝, 22.2㎝, 22.2㎝로 추정됩니다. 30㎝짜리 학습용 자에도 못 미치는 높이입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예상되는 금전적 피해액은 ▲인천 3억 달러(약 3,900억원) ▲부산 7억 9,000만 달러(약 1조원) ▲울산 1억 2,000만 달러(약 1,500억원)에 달합니다.
30년 걸린 손실과 피해 기금…‘두번째 바다’ 막을 수 있을까? 🌊
두 번째 바다 플랫폼은 COP27에 맞춰 작년 11월 공개됐습니다.
COP27은 손실과 피해 논의를 정식 의제로 채택한 첫 당사국총회(COP)입니다. 당시 11시간 마라톤협상 끝에 손실과 피해 기금 제정에 극적으로 합의가 이루졌습니다.
1992년 브라질 리우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최초로 개도국들이 기후변화 피해에 대해 책임 있는 국가들이 보상해야 한다고 요구한 지 30년만입니다.
라후드 학장은 2021년 26차 당사국총회(COP26)에서부터 손실과 피해 논의가 본격화됐다고 회고합니다.
COP26을 계기로 여러 데이터를 살펴보던 중 해수면 상승과 침수, 또 그에 대한 복구·복원 비용에 대한 데이터가 모두 존재하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는데요.
이러한 데이터들을 연결한 결과물이 바로 두번째바다 플랫폼입니다.
플랫폼 이름인 두 번째 바다는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한 바다’를 뜻합니다.
손실과 피해 기금, 시작에 불과 “중요한 건 미래에 대한 상상력” 💭
그리고 두번째바다 플랫폼이 공개된 지 약 1년 만에 손실과 피해 기금이 공식적으로 출범에 성공했습니다. 미국, 유럽연합(EU), 영국 등은 총 4억 2,900만 달러(약 5,600억원)가량의 기부금을 발표했습니다.
다만, 기후변화로 인한 개도국의 손실과 피해를 지원하기엔 턱없는 액수란 지적이 나옵니다.
2030년까지 개도국의 손실과 피해로 인한 비용은 최소 2,900억 달러(약 412조원)에서 5,800억 달러(약 824조원)로 추산됩니다.
한편, 라후드 학장은 지난해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기후변화 피해 인한 보상이 금전적 문제만은 아니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손실과 피해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기후정의 담론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
중요한 것은 재원을 발판 삼아 지역사회가 피해를 복구·복원하는 동시에 더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라후드 학장은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