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 요건을 일부 완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SEC가 기업 공급망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 요건, 즉 기후공시를 완화할 방침이라고 지난 20일(현지시각) 보도했습니다.
새로 도입할 규칙이 스코프 3(Scope 3) 기준에 맞춰 배출량을 측정하기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스코프 3는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중에서 모든 밸류체인(가치사슬)에서 나오는 배출량을 포함해 측정과 계산이 모두 어렵습니다.
여기에 법적 분쟁 소지도 불거졌습니다. SEC의 기후공시 추진에 대해 공화당과 일부 기업 대표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센 상황입니다. 기후공시가 기업에 부담을 줄뿐더러, 주요 투자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흐리게 한단 주장입니다.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일부 SEC 관계자들이 기업 및 기타 이해관계자와 함께한 비공개회의에서 스코프 3 공개를 의무화하면 법적 분쟁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SEC 기후공시 최종안 발표 연기 이유, 스코프 3 공시 때문 🤔
작년 3월 SEC는 2024년부터 스코프 1·2와 함께 스코프 3 배출량 정보 수집을 시작해야 한다는 기후공시 초안을 발표했습니다. 최종안은 의견 청취를 거쳐 작년 12월에 발표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초안은 발표 직후 기업들의 반발에 직면했고 최종안 발표는 계속 미뤄졌습니다. 기후공시 최종안 현재까지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SEC가 최종안 발표를 계속 미루며 고심하는 이유는 스코프 3 배출량 공개 여부 때문입니다.
시장조사기관 딜로이트에 의하면, 대다수 기업의 경우 스코프 3 배출량이 전체 70%를 차지합니다.
EPA에 따르면, 스코프 3 배출량은 15개 카테고리별로 모두 보고해야 합니다. 원자재 조달, 생산과 운송, 소비자의 제품 사용 및 폐기물, 직원들의 출퇴근 통근량 등이 포함됩니다.
즉, 수집해야 할 데이터가 너무 많단 것.
스코프 3 공개로 인한 법적 문제 우려하는 SEC…“EPA 패소가 결정적” ⚖️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SEC 내부에서도 스코프 3 공시 의무화를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왔습니다.
한 소식통은 로이터통신에 “(비공개회의에서) 스코프 3 공시를 의무화하면 SEC가 법적 분쟁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비판이 거셌다”며 “스코프 3 공시와 연관된 세부 규칙을 제정할 때마다 소송에 휘말려 SEC의 손발을 묵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같은 우려는 지난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환경보호청(EPA)의 온실가스 배출 규제 권한을 제한하는 판결을 하며 더 심화했습니다.
작년 7월 EPA는 석탄회사가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했습니다. 당시 발전원에서 석탄화력발전소 비중이 큰 18개 주정부와 석탄회사 등이 EPA를 상대로 EPA가 미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한할 권리가 없다는 내용으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미 대법원은 6대 3 다수의견으로 EPA의 패소를 결정했습니다. EPA처럼 SEC도 소송이 제기되면 패소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스코프3 다운스트림 부문에서 일반적 소비자 정보도 수집해야 한단 점에서 개인정보 침해 소지도 있습니다. 더욱이 스코프 3 배출량 계산을 위한 합의된 방법론도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업체에서 제시한 각자 산정방식에 따라 같은 활동이라도 배출량이 상이할 수 있습니다.
겐슬러 SEC 의장 “배출량 공시 규정 축소 검토 중” 📊
스코프 3 공시에 대한 최종 규칙은 아직 제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미국 내에서는 이 문제가 정치적 갈등으로 비화했습니다.
민주당은 SEC에 스코프 3 공시를 축소하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반면, 공화당은 SEC가 스코프 3 공시를 의무화하는 것은 권한 밖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게리 겐슬러 SEC 의장도 스코프 3 공시에 회의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SEC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겐슬러 의장은 스코프 3 공시 의무화를 철회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올해 3월 겐슬러 의장은 “SEC는 배출량 공시 규정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스코프 3 공시를 위한 배출량 측정과 방법론이 제대로 개발됐는지 의문이란 것이 이유였습니다.
지난달 미국 상공회의소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한 겐슬러 의장은 약 1만 6,000개의 의견을 받은 기후공시 규정이 최종 확정돼 채택되면 어떤 법적 문제도 없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가운데 지난 10월 미 캘리포니아주는 주정부 차원에서 스코프 3 배출량을 포함한 기후공시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연매출이 10억 달러(약 1조 3,400억원)을 초과하는 캘리포니아주 소재 기업의 배출량을 공개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이 법안에는 2027년부터 기업들의 스코프 3 배출량도 공개하도록 했습니다.
겐슬러 의장은 주정부 차원의 기후공시는 기업들이 많은 정보를 생산한 덕에 SEC 기후공시를 준수하기 위한 비용 부담이 더 저렴해질 것이라고 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주요 기업 로비스트들은 주주소송 위험으로 인해 기업들이 SEC에 스코프 3 배출량 공개를 꺼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SEC 기후공시 최종안 발표 시점 미정…“스코프 1·2 공시는 확정” 📅
스코프 3 공시에 대한 최종 규정은 아직 제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스코프 3 공시 최종 규칙과 기후공시 최종안 발표 시점에 대해 SEC 대변인은 언급을 거부했습니다.
올해 8월 한국을 방문한 폴 문터 SEC 국장은 올해 4분기까지 기후공시 기준을 확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SEC가 스코프 3 공시를 제외하더라도 기업들은 스코프 1과 스코프 2 배출량은 공시해야 합니다.
한편, 미국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스코프 3 공시 의무화가 표준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국제재무보고기준(IFRS) 산하 국제지속가능성표준위원회(ISSB)는 지속가능성 및 기후공시 표준안에 스코프 3 공시를 포함했습니다. ISSB의 공시 표준안은 강제성은 없으나, 국제 기준으로 활용된단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유럽연합(EU) 또한 스코프 3 공시를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의무화할 계획입니다.
<저작권자(©) 그리니엄,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