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 목표의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을 알고도 무리하게 강행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난 14일 감사원은 이같은 내용이 담긴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실태’ 점검 최종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지난 6월 중간 감사 결과를 발표한 지 약 5개월만입니다.
감사 결과, 문재인 정부 시절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가 신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무리하게 상향 조정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습니다. 또 공공 및 민간 태양광 사업이 급증하는 과정에서 허술한 제도와 관리감독 소홀로 공직자의 도덕적 해이가 나타났단 점도 드러났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신재생에너지 국정과제 채택에 따라 산자부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11.7%에서 20%로 상향했습니다.
또 2021년에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상향하며 신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도 30.2%로 추가 상향됐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30.2%란 신재생에너지 비중 목표가 무리라는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그 결과, 지난 1월 이 목표는 21.6%로 하향 조정됐습니다.
전(前) 정권의 무리한 신재생에너지 정책 추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국제적 흐름을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 상향 자체를 문제로 보긴 어렵단 반론도 나옵니다.
감사원, 117일간 이뤄진 신재생에너지 감사 결과 발표 📜
감사원은 감사 배경에 대해 신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나타난 난개발과 사업비리, 전력계통 불안정 등의 부작용을 엄단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이를 통해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실효성 있는 추진을 유도한단 것이 감사원의 설명입니다.
이번 감사는 2022년 10월 17일부터 2023년 2월 10일까지 이뤄졌습니다.
감사원은 크게 ①사업목표 수립 및 이행 ②사업 인프라(기반시설) 구축 ③사업 관리 등 3가지 분야로 나누어 사업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점검했습니다.
① ‘사업목표 수립 및 이행’ 분야에서는 신재생에너지 보급 목표의 수립 과정, 후속조치 이행,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의 영향 전망 등에 방점이 찍혔습니다.
② ‘사업 인프라 구축’ 분야에서는 신재생에너지 보급의 주요 인프라, 즉 전력계통과 백업설비 확충 계획을 살펴봤습니다.
③ ‘사업 관리’ 분야에서는 특혜 및 비리 의혹이 제기된 대규모 발전사업 3곳에 대한 중점 점검과 중·소규모 발전사업 관련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 우대정책 관련 위법·부당 사례를 점검했습니다.
점검 결과, 감사원은 주무기관인 산자부에 제도 개선이 필요한 사항 23건을 통보했습니다.
이외에도 비리·특혜 관련 업무처리자 7명에 대해서는 징계 및 문책을 요구했습니다. 또 겸직 허가 같은 조치 없이 태양광발전소를 운영해 이득을 취한 240명은 각 기관에서 추가 조사 후 징계 등을 조치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업목표 수립·이행|무리한 목표 강행 🎯
먼저 감사원은 NDC 수립 과정에서 산자부가 신재생에너지 목표를 무리하게 상향 조정했단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 결과, 신재생에너지 목표가 일관성 없이 변경되며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로 이어졌단 것입니다.
감사 결과, 산자부 내부에서는 신재생에너지 비중 목표 30.2%가 어렵단 결과가 나왔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자부가 무리하게 목표를 상향했단 점을 꼬집었습니다.
대통령 지시로 환경부 등과 2021년 NDC 상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해진 목표’를 이유로 강행됐다는 설명입니다.
또 신재생에너지 목표 상향에 따라 전기요금 인상이 우려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없이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축소 전망했단 점도 지적됐습니다.
감사원은 2017년 이미 산자부가 신재생에너지 비중 20% 달성 시 2030년 전기요금을 2018년 대비 최대 39.6% 인상해야 한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같은해 7월 대통령비서실의 요청으로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재생에너지 목표 상향이 전기요금 영향이 우려할 수준이 아니란 결과로 바뀌었단 것
2019년 8월에는 산자부가 국회에 ‘전력구입비 연동제 연구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비용 증가가 우려된다는 내용을 삭제했단 점도 감사 결과로 드러났습니다.
2️⃣ 사업 인프라 구축|이행 연기·대책마련 미흡 👎
신재생에너지 목표 달성을 위해 전력계통 보강, 백업설비 확충 등 특단의 인프라 대책이 필요하단 지적이 잇달았음에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던 점도 감사에서 지적됐습니다.
선제적 계통보강에 필요한 ‘신재생 보급전망’은 2017년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당시 누락됐고, 소극적인 계통보강만 반복됐습니다. 동시에 소규모 태양광이 전라남도 등 특정 지역에서 급증하면서 송변전 설비 부족이 심화됐으나 임시방편 위주로 대처했단 지적도 나왔습니다.
실제로 신재생에너지 과잉 발전 및 송배전망 보강 지연으로 제주와 전남 등에서 신재생에너지 출력제한이 시행된 바 있습니다.
이밖에도 에너지저장시스템(ESS)와 양수설비 등 백업설비 필요 용량도 부족하게 산정됐고, 태양광 입지잠재량 산정에서는 현행 규제 등이 반영되지 않았단 점도 감사 결과로 드러났습니다.
3️⃣ 사업 관리|비리 및 부당 우대 혜택 다수 적발 👿
감사원은 전 정부의 한국형 발전차액지원제도(FIT)*가 소규모 태양광에 과도한 우대를 제공했단 점도 발견했습니다.
일부 민간 사업자들이 가짜 농업인 등으로 참여해 부당 이익을 누리는 사례도 다수 적발됐습니다.
대규모 태양광 사업 인허가·계약 과정에서는 중앙부처 공무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이 민간 업체에 특혜를 준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한국전력공사(KEPCO), 한국에너지공단 등 8개 공공기관 임직원이 태양광 사업에 위법, 부당하게 참여했습니다.
농업인이 아님에도 농업인 자격을 얻어 한국형 FIT 계약을 맺고 우대 혜택을 챙긴 ‘가짜 농업인’ 등 815명도 이번 감사에서 적발됐습니다.
*한국형 발전차액지원제도(FIT): 소규모 태양광 발전사업자의 안정적인 수익 보장을 위해 20년간 고정으로 가격 계약을 맺는 제도다. 2018년 소규모 태양광 발전 장려를 위해 도입됐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전력망 부담 증가 등의 이유로 지난 7월 종료됐다.
산자부 “감사 결과 수용, 조속한 후속 조치 마련할 것” 💬
감사 발표 당일, 산자부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조속한 후속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산자부는 “신재생에너지 정책의 주무부처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조속한 후속 조치와 강도 높은 정책혁신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어서 ▲비용효율적이며 질서 있는 신재생에너지 설비 보급 추진 ▲전력계통 등 관련 인프라 보강 계획 마련 ▲개별 태양광·풍력 사업 철저한 관리 등을 약속했습니다.
산자부는 구체적으로 사업목표 수립·이행 분야에서는 향후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11차 전기본)에서 합리적 신재생에너지 목표를 설정한단 방침입니다.
이미 “올 1월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실현 가능성을 고려해 신재생에너지 목표를 21.6%로 조정한 바 있다”고 산자부는 덧붙였습니다.
11차 전기본 수립은 2024년 7월 즈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사업 인프라 구축 분야에서도 일부 선제적 계통보강 방안은 마련됐다고 산자는 밝혔습니다. 마찬가지로 향후 11차 전기본에서 선제 계통보강이 추가로 마련됩니다.
같은날 한전 또한 “일부 직원들이 겸직금지 의무를 위반하고 태양광 발전사업의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감사원의 지적에 사과와 함께 추가조사 및 인사조치를 약속했습니다.
“NDC 시급성 고려 필요” VS “실현가능성 중요” 💥
이번 감사원 발표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날 선 공방이 오갔습니다.
15일 윤희석 국민의힘 선임대변인은 “문재인 정권 에너지 정책의 총체적 실패”라며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감사가 필요하다고 성토했습니다.
반면,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정부가 세운 목표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습니다.
일각에선 기후위기 상황과 에너지 전환의 시급성을 고려할 때, NDC와 재생에너지 목표 상향이 불가피했단 목소리도 나옵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브리핑에서 국제적 흐름을 보면 NDC를 상향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주무부처인 산자부가 실현 가능성을 따져 적정 목표를 설정”하는 대신 “단기간에 무리하게 (추진)한 것을 비판”한 것이라고 감사원은 밝혔습니다.
이어 “NDC 목표를 맞추기 위해 원자력발전 등 다른 수단도 동원할 수 있었는데, 무조건 신재생에너지 확대만 실현 가능성 검토 없이 진행”한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