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첫 소형모듈원전(SMR) 사업으로 주목받았던 뉴스케일파워(NuScale power·이하 뉴스케일)의 프로젝트가 비용 문제로 결국 중단됐습니다.
지난 8일(현지시각) 뉴스케일은 올해 3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미 발전사업자인 유타주발전사업자(UAMPS)와 추진하던 ‘CFPP 프로젝트(Carbon Free Power Project)’를 해지했다고 밝혔습니다.
CFPP 프로젝트(이하 사업)는 2029년경 미 중서부 아이다호주에 SMR 6기를 배치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1기당 발전용량 77㎿(메가와트)로 총 462㎿ 설치를 통해 전력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뉴스케일과 UAMPS, 양사는 성명을 통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양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를 계속할 만큼의 수요자를 확보할 가능성이 적다”며 “사업을 종료하는 것이 양사 모두에게 가장 현명한 결정이라고 판단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뉴스케일은 사업 해지 배경에 대해 전력구매 계약자를 충분히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美 첫 차세대 SMR 사업, 무산된 이유?…“공급망 대란·원자재 가격 상승” 😮
뉴스케일이 이번 사업에서 전력구매자를 확보하지 못한 배경에는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문제가 있습니다.
뉴스케일이 사업 시작 당시 제시했던 균등화발전비용(LCOE)은 MWh(메가와트시) 당 58달러(약 7만 7,000원).
그러나 공급망 대란 여파로 SMR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이 MWh당 89달러(약 11만 8,000원)까지 상승했습니다.
사업에 필요한 건설 비용도 당초 예상보다 30억 달러 이상 늘어난 93억 달러(약 12조 2,800억원)로 책정되며 건설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2020년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설계 인증을 최초로 승인받았을 당시 건설 비용은 약 61억 달러(약 8조원)였습니다.
잦은 설계 변경과 비용 부담 문제 등을 이유로 올해 5월 사업에 참여하는 26개 지방자치단체가 뉴스케일과 개발비 환급협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지자체들은 뉴스케일에 전력구매 약정용량을 기존 120㎿에서 2024년 1월까지 사업규모의 80%인 370㎿로 늘리지 못할 시 투자비를 전액 반환받고 사업에서 탈퇴할 수 있단 조건이 환급협약에 담겼습니다.
뉴스케일에 지분투자한 韓기업 타격 불가피…“단, 지분 매각 계획 없어” 📉
이번 사업이 좌초됨에 따라 뉴스케일에 대규모 지분투자를 한 국내 기업들의 타격도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지분투자를 한 기업들은 리스크 발생 시 투자한 지분가치가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두산에너지빌리티(1억 300만 달러), 삼성물산(7,000만 달러), GS에너지(4,000만 달러) 등 국내 대기업 여러 곳이 뉴스케일이 우리돈으로 약 2,800억 원을 지분투자했습니다.
이들 대기업 3사는 작년 4월 뉴스케일과 SMR 사업개발 공동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습니다.
이와 별개로 두산에너지빌리티는 지난해 말 사업에 사용될 기자재 제작 계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현재 이들 기업 모두 뉴스케일 지분 매각 계획이 없단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번 사업은 경제성을 문제로 중단됐을 뿐, 기술이나 사업 자체의 전문성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두산에너지빌리티는 뉴스케일에 SMR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계획대로 진행한단 입장입니다. CFPP 프로젝트가 무산되긴 했으나 다른 지역에서 진행 중인 뉴스케일 사업은 그대로 진행됩니다.
삼성물산 또한 뉴스케일이 루마니아에서 진행 중인 SMR 사업들은 계속 진행 중이란 점을 덧붙였습니다.
삼성물산은 뉴스케일이 진행하는 SMR 사업 전반에 걸쳐 기술인력 파견과 함께 역량 공유 등 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월가 공매도 보고서·CFPP 사업 취소 등 뉴스케일 연이은 악재로 주가 ↓ 📉
뉴스케일 측은 CFPP 사업이 취소됐지만, 다른 사업들은 계속된단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측은 “미 원자력규제위가 SMR 1기당 77㎿의 인허가 절차를 시작했다”며 “인허가에만 24개월이 소요된다”고 밝혔습니다.
또 동유럽 루마니아에서 진행 중인 SMR 프로젝트의 2단계 기본설계가 시작됐고, 암호화폐 채굴업체 스탠다드파워(Standard Power)와 함께 SMR 24기를 짓는 사업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럼에도 뉴스케일 주가는 사업 중단 발표날(8일) 20% 이상 급락했습니다. 뉴스케일 A종 보통주는 IBK투자증권과 두산에너지빌리티 등 국내 기업이 64%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뉴스케일의 사업이 과장됐단 의구심도 나옵니다.
올해 10월 뉴스케일은 스탠다드파워와 1848㎿ 규모의 전력 공급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암호화폐 채굴 및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전력을 SMR로부터 끌어온단 것이 계약의 주 내용입니다.
허나, 계약 직후 스탠다드파워 전(前) 임원 증권사기 경력을 지적한 미국 월가의 공매도 보고서가 등장하며 논란을 빚었습니다. 또 뉴스케일 전 최고재무책임자(CFO)가 해당 계약 발표 직후 회사 보유 지분을 일괄 매각했단 소식도 보고서에 담겼습니다.
뉴스케일은 보고서에 대해 “근거가 없는 추측성 진술로 가득 차 있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뉴스케일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보고서가 공개된 날(10월 19일) 회사 주가는 3달러(약 3,900원) 이하로 폭락했습니다.
이번 사업 폐지 소식 이후에는 회사 주가는 2달러(약 2,600원) 미만까지 떨어졌습니다.
“퍼스트 펭귄이었던 만큼, 기술개발·수익화 등 위험부담 높아” 🤔
현 상황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블룸버그통신은 뉴스케일의 사업 중단 소식에 “원자력 르네상스가 끝났다”며 “철강 등 주요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금리 인상으로 인해 (SMR 사업도) 어려움을 겪는 중”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그럼에도 “SMR 사업이 끝났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며 “뉴스케일의 여러 경쟁업체가 더 나은 성능과 안전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 여러 기술을 개발 중”이란 소식을 덧붙였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SMR을 비롯한 원자력발전소 승인 절차가 느린 점과 방사성폐기물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이 없단 점을 지적했습니다.
미 싱크탱크 에너지경제금융분석연구소(IEEFA)의 분석가인 데이비드 슐리셀은 NYT에 “SMR은 매우 느리고 고가이며 위험하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이어 SMR이 아닌 재생에너지 설비 확산에 주력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미 싱크탱크 써드웨이(Third Way)의 기후·에너지 프로그램 담당자인 조슈아 프리드는 뉴스케일이 사업모델 개발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에 직면한 현실을 언급했습니다.
원자력규제위로부터 SMR 개발을 승인받고, 기술개발 나아가 수익을 창출하는 단계에서 뉴스케일이 개척자로 나섰던 만큼 위험부담이 컸단 말입니다.
프리드 담당자는 “신기술에서 이런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며 “테슬라를 제외하고 초기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대다수가 성공하지 못했으나, 오늘날 전기차가 많이 등장한 현실을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