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맥아더재단(EMF)에 의하면, 매년 수조 리터의 물이 직물 염색에 사용됩니다. 전 세계 폐수의 20%가량이 패션산업에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염색 공장 한편에서는 약간의 흠집이나 얼룩짐을 이유로 다량의 염색된 직물이 그대로 버려집니다. 수자원 낭비와 섬유폐기물이 동시에 증가하는 상황.
이를 고심한 한 기업이 있습니다. 140년 역사의 직물 염색 전문 기업 세이쇼쿠(Seishoku)입니다.
세이쇼쿠는 일본 고유의 장인정신을 고수하다 보니 작은 흠집이나 얼룩에도 엄격했습니다. 이로 인해 폐기되는 원단도 많다는 것을 발견한 것.
이에 버려질 뻔한 직물을 새로운 용도로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는데요. 세이쇼쿠가 선보인 순환소재 ‘뉴노스(NUNOUS)’의 이야기입니다.
뉴노스의 시작은 세이쇼쿠가 염색 후 버려지는 직물 스크랩(자투리)에 주목하면서였습니다.
세이쇼쿠는 1880년부터 직물 제조업체로 시작해 1942년부터는 직물을 염색해온 기업입니다. 연간 2,000만㎡(제곱미터)의 직물을 염색합니다.
세이쇼쿠는 이중 약 1~2%가량이 불량으로 폐기되는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비율로는 적어 보여도 연간 20만~40만㎡에 달하는 양입니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세이쇼쿠는 2013년부터 염색 후 폐기되는 직물 스크랩을 활용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방법은 쉽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직물을 재활용하는 방식은 분쇄돼 카펫 등이나 타일 등으로 다운사이클링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세이쇼쿠는 염색을 통해 나온 아름다운 색상을 살리면서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던 것.
그리고 2018년 세이쇼쿠는 일본 오카야마현 산업기술센터와 함께 개발한 기술을 공개합니다.
수백 장의 직물과 바이오플라스틱 필름을 겹쳐 가열하고 압착해 새로운 소재로 만드는 ‘라미네이션(Lamination)’ 기술입니다.
이 기술은 면·린넨·양모 등 다양한 직물 스크랩에 적용 가능합니다. 바이오플라스틱의 경우 환경 영향을 줄이기 위해 비식용 사탕수수로 생산됐습니다.
라미네이션 기술을 사용하면 직물과 필름은 열과 압력을 받아 하나의 블록 덩어리가 됩니다. 이후 가공하는 방식에 따라 활용도가 달라지는데요.
블록 형태는 아주 단단하기 때문에 ‘뉴노스 스톤’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인테리어 타일이나 가구용 패널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얇게 자르면 천이나 가죽 느낌의 얇은 시트인 ‘뉴노스 스킨’이 됩니다. 가죽과 천 사이의 질감이 나며, 물에도 잘 견딘단 점에서 활용도가 높습니다.
무엇보다 라미네이션 기술의 핵심은 직물을 자르거나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압착해 만들기 때문에 직물의 색상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압착 과정에서 겹쳐있는 직물들이 약간씩 틀어지면서 수평 방향으로는 나뭇결이나 대리석과 비슷한 독특한 패턴이 나타납니다.
수직 방향으로 자를 경우, 겹겹이 쌓인 지층 같은 패턴이 나타나 다른 매력을 띱니다.
뉴노스는 다양한 형태와 패턴 덕에 여러 용도로 사용되는데요.
세이쇼쿠는 라미네이션 기술을 공개한 같은해 ‘뉴노스 이니셔티브’를 시작해 여러 기업 및 디자이너와 협업을 시작합니다.
뉴노스 스톤으로 만든 패널과 블록은 각종 기업 및 상점의 인테리어 장식 소재로 사용됐습니다. 또 뉴노스 스킨은 지갑, 시계줄, 전등 조명 등 기존의 가죽이나 천이 사용하던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2022 S/S(봄여름) 파리 맨즈 패션위크’에서는 일본 패션 브랜드 더블릿(Doublet)과 협업해 뉴노스 스킨으로 만든 재킷과 바지 그리고 가방이 공개됐습니다.
뉴노스 스킨으로 만들어진 덕에 가죽과 청바지 사이의 묘한 질감이 표현된 것이 특징입니다.
한편, 세이쇼쿠는 청바지 원단을 사용한 뉴노스로 우산 손잡이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작년 10월 당시 데님(청바지 원단) 생산기업 시카와(Shikawa)는 크라우드펀딩 기획으로 데님 원단으로 만든 우산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자체 기술로 만든 초발수 데님 원단만으로 플라스틱 비닐을 대체한다는 아이디어입니다.
그리고 손잡이까지 데님 원단을 사용할 방법을 찾던 와중 세이쇼쿠의 뉴노스를 발견했다는데요. 어어진 시카와의 요청에 세이쇼쿠는 데님 원단으로 만든 뉴노스를 제공했습니다.
세이쇼쿠는 뉴노스가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에게 노출되면서 많은 사람이 패션과 섬유산업의 폐기물 문제를 생각해볼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세이쇼쿠는 더 많은 대중에게 노출될수록 뉴노스를 활용할 아이디어도 풍부해진다고 설명합니다.
이에히메이 아키라 세이쇼쿠 사장은 조명이나 간판 등은 고객들이 제시해준 아이디어였다면서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독특한 조합을 제시한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세이쇼쿠는 뉴노스의 활용도를 더 넓히기 위해 개선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세이쇼쿠는 뉴노스의 최대 크기를 늘리는 한편, 내화성 향상을 연구 중입니다. 현재 생산 가능한 뉴노스의 최대 크기는 가로 450㎜에 세로 250㎜로 제한되는데요.
화재 안전 기준을 통과하는 대형 뉴노스를 만들어 벽지 등으로 수요처를 넓히겠다는 구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