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남부 에인트호번시에서 이색적인 팝업스토가 열렸습니다.
팝업스토어에 방문한 관람객들이 자신의 소변을 가져오면 ‘소변과 폐식용유를 재활용해 만든 비누’로 교환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요.
지난 21일(현지시각)부터 오는 29일까지 열리는 ‘2023 네덜란드디자인위크(DDW)’의 행사 중 하나입니다.
팝업스토어를 기획한 네덜란드 디자이너이자 예술가인 아서 길레미노는 행사를 통해 “플라스틱병, 채소껍질 재활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는데요.
왜 하필 오줌의 순환경제에 주목한 것인지, 프로젝트를 좀 더 살펴봤습니다.
길레미노가 준비한 오줌비누 팝업스토어는 DDW 기간 중 에이트호번시 디자인 플랫폼인 ‘레지던시포피플(Residency for the People·이하 레지던시)’에서 열립니다.
오줌비누를 교환하는 장소는 레지던시 건물 1층 화장실 바깥 공터입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방문객은 자신의 소변을 병에 담아 가져온 뒤, 레지던시 화장실 창문에 설치된 선반에 올려둡니다. 그리고 지정된 시간에 방문하면 길레미노로부터 오줌비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위생상의 문제로 오줌비누를 비치해둘 수 없으므로 직접 건네야 한단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또 현재 유럽연합(EU) 내에서는 소변이 포함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불법이므로 구매가 아닌 교환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오줌비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오줌비누는 폐식용유와 소변, 오렌지껍질, 수산화나트륨 등의 재료만 있음 충분합니다. 이들 재료를 한데모아 가열하고 섞어준 뒤 굳히면 끝.
특히, 주목할 점은 폐식용유·소변·오렌지껍질 나아가 수산화나트륨까지 오줌비누 제작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도시의 폐기물에서 구할 수 있단 것입니다.
일례로 양잿물로 불리는 수산화나트륨은 나무·짚 등을 태운 잿가루를 원료로 만들 수 있습니다.
길레미노는 이처럼 오줌 등 폐기물로 비누를 만드는 것은 고대 로마부터 수세기 동안 이뤄진 전통방식이라고 설명합니다.
암모니아(NH3)가 풍부한 오줌은 과거부터 비료 및 세제 용도로 활용됐습니다. 그러날 오늘날 오줌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그대로 버려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길레미노는 재사용에 대한 고민 없이 자원을 쉽게 폐기해버리는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지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팝업스토어 개장 이전부터 길레미노는 오줌비누 만들기 워크샵을 진행해왔습니다.
일반인들이 직접 오줌비누를 만들며 더러움 대 깨끗함이라는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워크샵 참가자는 자신의 오줌을 직접 가져와 비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몸에서 나온 폐기물을 어떻게 순환할 수 있는 지를 경험합니다.
길레미노는 “(오줌비누가) 화장품용 비누를 대체할 수는 없다”면서도 “더 중요한 것은 폐기물로 무엇이 가능할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하는데요.
길레미노의 오줌비누는 2022년 유럽연합(EU)이 주관하는 ‘신유럽바우하우스상(New European Bauhaus Prizes)’에서 순환형 산업생태계 형성 부문 최종후보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순환성 아이디어에 EU도 주목한 것.
앞서 지난해 11월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도 길레미노의 오줌비누 제작 프로젝트가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팝업스토어는 네덜란드 문화센터 겸 박물관인 ‘뉴웨연구소(Nieuwe Instituut)’가 주최한 ‘뉴스토어 1.0(New Store 1.0)’ 행사 중 하나입니다.
보다 윤리적이고 자원을 고려하는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대안적인 교환형태”를 탐구하는 것이 행사의 취지입니다.
이를 위해 뉴웨연구소는 세 명의 디자이너를 선정해 자원의 추출-착취-고갈이 아니라 재생·복원할 수 있는 소비 방식에 대한 제품 아이디어를 선보였습니다. 그중 하나가 오줌비누였던 것.
한편, 다른 두 디자이너는 각각 조명과 생선에 주목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조명 디자이너 아르누트 마이어는 2가지 조명 컬렉션인 ‘블랙마블(Black Marble)’을 선보였습니다.
하나는 전자폐기물로 만들어졌습니다. 다른 하나는 나무창틀에 유리조각을 끼운 설치물로, 휴대폰 플래시를 켠 채 올려두면 빛이 반사돼 주변을 밝히는 방식입니다.
생태계를 교란하는 빛 공해와 함께, 조명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에너지 소비 행태를 지적하고 싶었다고 아르누트는 설명했습니다.
예술 연구자이자 어부인 브로겐 버윅은 행사에 2가지 생선요리를 선보였습니다.
동일한 재료와 재료법을 사용하지만, 주재료인 생선이 공급된 방식만 다릅니다.
더 높은 가격을 내고 현지에서 잡은 농어를 선택할지, 저렴하지만 수입된 터키 양식 농어를 선택할지는 소비자의 몫입니다.
식사를 마친 뒤 선택한 생선의 ▲생산지 ▲어획방식 ▲운송거리 ▲신선도 등의 정보가 상세히 담긴 영수증이 제공됩니다.
버윅은 이번 ‘배에서 가게로(From Ship to Shop)’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가 먹는 음식의 기원과 경로에 대해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뉴웨연구소는 이번 팝업스토어가 단순히 일회성 전시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이번 팝업스토어는 시험단계로, 확장에 들어간단 것이 주최 측의 설명입니다.
뉴웨연구소는 2024년 이탈리아 밀라노가구박람회에서 확장된 ‘뉴스토어’를 개장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2025년까지 앞서 소개된 제품들을 모두 판매할 수 있는 전용 상점을 로테르담에 열 계획이라고 뉴웨연구소는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