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서 골판지 상자로 만든 33가지 가구가 공개됐습니다.
돌, 나무, 플라스틱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되, 소재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살리는 작업으로 유명한 영국 출신 가구 디자이너 맥스 램의 작품입니다.
램 디자이너가 만든 가구는 런던 유명 전시관인 갤러리 푸미(Gallery Fumi)에 지난 5일부터 오는 11월 18일(현지시각)까지 전시됩니다.
이번 전시회 이름은 재료 그대로 ‘박스(Box)’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전시회에 공개된 가구는 의자, 탁자, 소파 등 33가지. 모두 골판지 상자를 주재료로 만들어졌단 점이 특징입니다.
그간 부차적으로 여겨진 골판지 상자에서 새로운 소재의 가능성을 재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램 디자이너는 밝혔습니다.
램 디자이너는 플라스틱을 배제하면서도 무한히 재활용이 가능한 동시에 집에서 누구나 쉽게 수리할 수 있는 가구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는데요.
그 때문에 가구에 사용된 모든 재료는 집에 흔히 있는 재료들로 한정됐습니다. 골판지 상자, 밀가루, 물 그리고 약간의 나사와 종이테이프 등입니다.
그는 우표 상자부터 렌즈 포장 상자, 휴지심 등 수년간 스튜디오에 쌓여있던 폐기물로 이번 가구 컬렉션을 구성했습니다.
일부 가구는 장식을 더하기 위해 광물 안료와 아마씨유로 만든 페인트가 사용됐습니다.
어떻게 골판지 상자와 밀가루만으로 가구를 만들 수 있을까요?
우선 램 디자이너는 만들고자 하는 가구 모양에 맞춰 골판지 상자를 쌓았습니다. 각각의 골판지 상자를 연결하는 과정에는 종이테이프와 밀가루풀* 그리고 일부 나사가 사용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온 자투리 상자와 종이는 버려지지 않고 재활용됐습니다. 물에 적셔 종이 반죽처럼 골판지 가구 외관에 바르는 방식으로 활용된 것.
이를 통해 골판지 가구 외골격을 강화할 수 있었다고 램 디자이너는 밝혔습니다. 얇거나 지지력이 약한 상자도 같은 방식이 사용됐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밀가루풀: 밀가루와 물로 만든 풀.
그 결과, 소재 본연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난 골판지 가구가 탄생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골판지 가구에는 디자이너의 서사도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일례로 의자 한쪽에 드러나는 일본 통신사 후지쯔 로고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의 향수를 불러옵니다. 또 다른 상자는 할아버지의 농장에서 온 비료 포대가 담겨있던 것입니다.
디자이너에 의하면 일상 속에서 배출한 골판지 상자가 차고 6개 분량이나 쌓여있습니다.
램 디자이너는 이번 가구 컬렉션에서 골판지가 그 자체로 소재가 될 수 있는지 탐구했다고 설명합니다.
일상적으로 골판지를 재료로 사용하긴 했으나, 그간 제품 운송이나 시제품 모형 제작에만 사용하는 일에 그쳤단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램 디자이너는 “(골판지 상자를) 부차적인 재료가 아닌 원료로 보기까지 거의 20년이 걸렸다”고 밝혔습니다.
골판지 가구에 대한 그의 관심이 언제 시작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다만, 2021년 그가 삼성전자와 에코패키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골판지 가구를 제작한 영상이 남아 있습니다.
이번 컬렉션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간 램 디자이너가 플라스틱을 사용한 여러 가구로 이름을 알려왔기 때문입니다.
램 디자이너는 “그 소재(플라스틱)를 다시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대안을 찾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번 작업을 계기로 자신과 소비자가 플라스틱 제품을 끊는 시작이 되길 희망한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물론 그의 작품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램 디자이너는 최대 15겹의 종이 반죽으로 가구 외골격을 보강했음에도 골판지 가구가 일반적인 가구보다 내구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단 점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골판지 가구를 통해 가구를 돌보는 방법을 배우길 원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램 디자이너는 “(골판지) 의자에 부딪히면 사람보다 의자가 다칠 가능성이 더 크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사물을 더 잘 돌보는 법을 배워야 하고, 모든 것이 영원히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도 배워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는데요.
이점은 앞서 ‘집에서도 쉽게 수리할 수 있는 가구’를 만들고 싶었단 그의 말과도 이어집니다.
한편, 지속가능성한 소재에 대한 램 디자이너의 관심은 골판지 상자가 처음은 아닙니다.
2019년 그는 인도네시아 발리의 순환디자인 명소인 ‘데사포테이토헤드(Desa Potato Head)’와 협업해 여러 폐기물을 가구로 바꾸는 작업을 시도해 왔습니다.
맥스 램의 시그니처 의자 디자인에 833개의 폐페트병을 소재로 사용해 리조트의 페스티벌용 의자가 탄생한 바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현지 기업에서 나온 대나무 스크랩(자투리)은 의자와 램프로 변신했는데요.
당시 램 디자이너는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가구를 만들기 위해 재료와 기술을 모두 현지화하길 바랐다는데요. 이를 위해 모든 재료를 리조트 50마일(약 80㎞) 반경 이내에서 조달했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