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전자폐기물로 만들어진 레이싱카(경주용 자동차)가 등장했습니다.
‘한국 런던 E-PRIX(2023 HANKOOK LONDON E-PRIX·이하 포뮬러 E)’ 대회에서 전시된 실물 크기의 경주차 ‘리커버리(Recover-E)’의 이야기입니다. 대회는 지난 7월 29일부터 30일(현지시각)까지 양일간 영국 런던에서 진행됐습니다.
리커버리는 이름 그대로 전자폐기물(E-waste)에 새로운 가치를 회복(Receover)시켰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영국 라제리안 스튜디오(Lazerian Studio)는 리커버리 제작에 중고거래 기업과 학생들로부터 기증받은 전자폐기물이 사용됐다고 밝혔습니다.
전자폐기물로 어떻게 경주차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전자폐기물 경주차를 살펴보면 여러 종류의 전자폐기물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전자폐기물 경주차 앞판을 장식한 폐스마트폰이 눈에 띱니다. 여기에 회색 키보드들이 받쳐주고 있어 다채로운 색깔이 돋보입니다.
스마트폰과 색을 맞춰 정렬된 일회용 전자담배 폐기물은 가지런하게 놓여 무늬를 이뤘습니다.
전자폐기물 경주차 몸체를 구성한 초록색의 전자회로판은 폐휴대폰과 노트북 등에서 나왔습니다. 운전석 뒤쪽에 장식된 충전선과 단자 등 내부부품 또한 전자폐기물로 구성됐습니다.
스튜디오 창립자이자 디자이너인 리암 홉킨스는 “(경주차의 앞에서) 뒤로 갈수록 층이 벗겨지는 모습처럼 디자인했다”고 밝혔습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경주차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우리 사회 뒤에는 이렇게 다양한 폐기물들이 숨어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홉킨스 디자이너는 강조했습니다.

홉킨스 디자이너는 그중에서도 일회용 전자담배 폐기물에 주목해야 한단 점을 피력했습니다.
일회용 전자담배는 액상·코일·배터리를 포함한 본체가 일체형으로 만들어져 코일 및 액상 재충전이 불가능한 전자담배입니다. 구입할 당시 포함된 액상과 코일이 소진되면 그대로 폐기됩니다.
일회용 전자담배는 전자폐기물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증가하고 있는 항목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실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전자담배의 인기가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홉킨스 디자이너는 영국에서만 매주 약 130만 개의 일회용 전자담배가 버려지고 있단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어 그는 “저렴한 물건을 매우 쉽게 살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번 전자폐기물 경주차는 영국 전자기기 중고거래 기업 뮤직맥파이(Music Magpie)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2007년 음악 CD 중고 쇼핑몰로 설립된 뮤직맥파이는 현재 소비자로부터 중고 또는 고장난 전자제품을 구매해 수리·재판매하는 기업입니다. 스마트폰, 노트북, 게임기 등 여러 전자제품을 다루고 있는데요.
뮤직맥파이는 수거한 물품의 약 95%가 수리돼 재판매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번 전자폐기물 경주차에는 수리나 재판매가 불가능한 나머지 5%의 전자폐기물이 사용된 것.
무엇보다 전자폐기물이 경주차 외관을 꾸미는 것을 넘어 실제 내부 구성요소로 활용됐단 점을 스튜디오 측은 강조했습니다.
“전자폐기물이 예술작품을 넘어 실제 현실에서도 창의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였다고 스튜디오는 밝혔습니다.
실제로 이번 경주차는 느리지만 주행도 가능합니다. 해변에서 버려진 전기카트의 구동계를 재활용한 덕분입니다.

전자폐기물로 만든 경주차가 공개된 시간, 장소도 인상적입니다.
바로 국제자동차연맹(FIA)이 주관하는 ‘전기자동차’ 경주 대회 전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포뮬러1을 비롯한 모터스포츠는 높은 온실가스 배출로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이에 2014년 전기차 경주인 포뮬러 E의 첫 시즌이 시작됐습니다.
문제는 탄소중립을 위해 자동차를 비롯한 여러 산업에서 전기화가 진행됨에 따라 전자폐기물 배출이 더욱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단 것.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전 세계 전자폐기물 발생량은 5,360만 톤이었으나, 오는 2030년에는 7,470만 톤까지 증가할 것이라 밝힌 바 있습니다.

이번 작품도 이러한 문제를 알리기 위해 영국의 자동차 경주팀인 ‘인비전 레이싱 포뮬러 E’ 팀이 스튜디오에 의뢰한 결과물이었습니다.
이 팀은 캠페인을 통해 전자제품 재사용과 재활용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했다고 취지를 밝혔습니다.
앞서 지난 4월 이 팀은 캠페인의 일환으로 영국 전역의 학생들이 참여해 전자폐기물로 미니 경주차 만들기 대회도 개최했습니다. 리커버리(RECOVER E)의 ‘쓰레기로 경주(Waste-to-race)’ 대회입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촉진하기 위해 인식을 높이고 기후변화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협력을 육성하기 위해 대회를 열었다고 주최 측은 밝혔습니다.
한편, 전자폐기물 경주차는 오는 11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 소개될 예정입니다. COP28을 비롯한 전시가 모두 끝나면 분해돼 재활용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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