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 시장의 선두 주자인 테슬라가 충전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가운데 세계 주요 완성차업체가 ‘충전동맹’을 맺고 견제에 나섰습니다.
▲현대자동차 ▲기아 ▲제너럴모터스(GM) ▲BMW ▲메르세데스-벤츠 ▲혼다 ▲스텔란티스 등 7개 완성차 기업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각) 공동 보도자료를 통해 이같이 밝혔습니다.
이들 7개 완성차 기업은 북미 지역에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합작법인(JV)을 설립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를 두고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최고경영자(CEO)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며 “전기차 충전은 사용자 경험(UX)과 떼어낼 수 없는 만큼, 합작법인을 통해 충전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 것”이라 전했습니다.
글로벌 완성차 7개사, 10억 달러 투자해 충전동맹 합작법인 세운 이유? 🤔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투자액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같은날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7개사가 최소 10억 달러(약 1조 2,900억원)를 투자해 합작법인을 세울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합작법인 참여사 모두 동일한 금액을 투자할 것이라고 WSJ는 덧붙였습니다.
이번 합작법인은 2017년 BMW·폭스바겐·다임러·포드 등 완성차 기업 4곳이 유럽에 공동설립한 전기차 고속 충전 회사 ‘아이오니티(Ionity)’를 모델로 삼았습니다.
아이오니티는 유럽 내 고출력 충전소 설치를 목표로 설립됐습니다. 이후 현대차 등이 합류하며 현재까지 유럽 24개국에 걸쳐 2,600여개 고출력 충전소가 설치된 상태입니다.
세계 각국 완성차 기업이 공동으로 투자해 북미에 전기차 충전 인프라(기반시설)를 확대하려는 이유는 크게 2가지로, ①북미 시장 내 전기차 구매 촉진 ②테슬라 견제가 주요 배경으로 제시됐습니다.
1️⃣ 전기차 보급 최대 장벽, ‘충전 인프라’…“기업 협력으로 해결할 것” 🔋
글로벌 주요 완성차 기업들이 합작법인을 설립한 표면적 이유, 바로 북미 지역에 전기차 충전소를 확대해 미국 소비자들의 전기차 구매를 촉진하겠단 것입니다.
실제로 2030년까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 비율이 50%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이에 걸맞은 충전소는 충분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미국 에너지부(DOE)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미국에는 3만 2,000대의 공공 DC(직류) 고속 충전기가 있습니다. 230만 대의 전기차가 이 충전기를 사용 중입니다. 충전기 1대를 차량 약 72대가 사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충전소 부족 문제는 전기차 구매를 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미국 시카고대학교 산하 에너지정책연구소(EPIC)와 여론조사기관 ‘NORC 공공문제연구소(AP-NORC)’가 공동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충전소 부족이 전기차 구입에 있어 최대 장벽으로 작용한단 점이 재차 강조됐습니다.
당시 조사에 참여한 미국 성인 5,408명 중 80%가 충전소가 부족해 전기차를 구매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이처럼 미국 소비자 다수가 충전소 부족을 근거로 전기차 구입을 망설이는 현상이 지속되자 완성차 기업이 협력해 충전 시 고객들이 겪는 불편을 최소화하겠단 것입니다.
이번에 합작법인을 세운 7개사는 공동 보도자료에서 “소비자가 언제 어디서나 필요할 때 충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북미 지역에 양질의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해 전기차 수요를 뒷받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 테슬라 ‘슈퍼차저’ 美 고속 충전소 60% 차지…“테슬라 견제” ⛽
글로벌 완성차 기업 7개사가 합작법인을 세운 배경 그 이면에는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의도란 분석도 나옵니다.
현재 테슬라는 세계 전기차 점유율은 물론 충전 분야에서도 압도적 1위를 차지하며 전기차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DOE에 의하면, 테슬라의 자체 고속 충전소인 ‘슈퍼차저’는 미국 전체 고속 충전소의 60%를 차지합니다.
쉽게 말해 테슬라를 중심으로 ‘표준 충전동맹’이 형성되고 있단 것.
이에 부담을 느낀 다른 완성차 업체들이 테슬라의 압도적 지위를 견제하기 위해 합작법인 설립에 나선 것으로 풀이됩니다.
사실 지난 6월 테슬라와 충전동맹을 결성한 GM과 메르세데스-벤츠 또한 이번 합작법인 설립에 참여하했습니다. 이는 테슬라의 충전 방식에만 의존하지 않겠단 두 기업의 의지가 드러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합작법인 설립과 별개로 완성차 기업 내 충전 네트워크 경쟁이 심화할 수 있단 전망도 나옵니다. 합작법인 설립과 별개로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충전 네트워크를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 1월 2030년까지 북미·유럽·중국 등 세계 각지에 1만여개 이상의 고속 충전소를 구축하겠단 계획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 전기차 충전 방식, 크게 NACS와 CCS로 구분돼!
합작법인, 美 전역 3만 개 이상 충전소 설치…“CCS·NACS 모두 설치” 🚗
합작법인은 규제당국의 승인을 거쳐 올해 설립 절차를 마무리하고 2024년 하반기부터 충전소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완성차 기업 7개사는 공동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 시내와 고속도로에 최소 3만 개의 고속 충전소를 설치하겠다”며 “2024년 여름 미국에 첫 충전소를 개장하고 이후 캐나다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각 충전소에는 모든 기업의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도록 대표 충전 규격 2가지가 적용됩니다.
미국, 유럽 등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충전 규격인 CCS(합동충전시스템)와 함께 테슬라 충전 규격인 NACS 커넥터까지 함께 제공될 예정입니다.
또 재생에너지로만 충전소 전력을 공급하겠단 계획도 갖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외에도 합작법인은 편의시설과 사용 시스템 개발 등, 충전소의 사용자 경험(UX)을 향상하는 서비스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충전사업자 연합해 국내 충전 네트워크 구축 중인 현대차, 합작법인 주도할까? 🤝
한편, 이번 합작법인에서 현대차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도 나왔습니다.
현대차는 자체 고속 충전소 ‘이핏(E-pit)’을 통해 국내에서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해 온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1년 개소한 현대차의 이핏은 국내 주요 전기차 충전사업자와 연합 네트워크를 형성해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습니다.
장재훈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이번 합작법인은 지속가능한 교통수단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현대차의 비전과 일치한다”며 “전기차 분야에서 현대차가 지닌 전문성을 내세워 전기차 충전 환경을 재정립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백악관, 합작법인 설립 환영…실제로 테슬라 견제 가능할까? 🤔
기업들은 이번 합작법인이 미국 정부가 시행하는 ‘국가 전기차 충전인프라 확대 특별법(NEVI)’의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내다봅니다.
NEVI는 미국 정부가 전기차 충전소 확대를 위해 오는 2026년까지 총 50억 달러(약 6조원)를 지원하는 정책입니다. 2021년 11월 발효된 ‘초당적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 법안(IIJA)’에 의해 시행되고 있습니다.
충전소 확대를 기반으로 전기차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미국은 이번 합작법인 설립에 지지를 표했습니다.
합작법인 설립이 발표된 같은날(7월 26일) 미국 백악관은 카린 장 피에르 대변인을 통해 환영의사를 밝혔습니다.
장 피에르 대변인은 “이번 합작법인은 미국 경제와 기후변화 대응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특히,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세계 주요 완성차 기업들이 중요한 진전을 보여줬다”고 평가했습니다.
한편, 합작법인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테슬라는 전기차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지난 2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테슬라는 미국 텍사스주에서 캘리포니아주로 이어지는 도로에 전기트럭 전용 충전소 설치하기 위해 미 정부에 1억 달러(약 1,300억원)의 보조금을 요청했습니다.
테슬라가 전기트럭 분야에서도 충전 인프라를 주도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 상황. 과연 이번 합작법인이 테슬라의 견고한 존재감을 견제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