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의 표준으로 사용될 기준을 지난달 31일 (현지시각) 확정했습니다. 공식 명칭은 ‘유럽지속가능성 공시기준(ESRS·European Sustainability Reporting Standards)’입니다.
CSRD는 지난 1월부터 EU 내 250명 이상 대기업을 대상으로 적용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입니다. EU 역내 기업을 비롯해 한국 기업도 공시 대상에 해당됩니다.
이번에 확정된 ESRS는 EU 자문기관인 유럽재무보고자문그룹(EFRAG)에서 제출한 초안을 바탕으로 EU 집행위가 수정한 안입니다.
결론적으로 의무공시 대상이 축소되고 기업의 공시 자율성이 증가하면서, EFRAG 초안보다 완화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EU 집행위는 오는 7일(현지시각)까지 의견 수렴을 거칩니다. 이후 유럽의회와 EU 27개 회원국의 심의를 받을 예정입니다.
이의 제기가 없을 경우 ESRS 확정안은 2024년 1월 시행되는 CSRD에 적용됩니다.
ESG 경영 내 핫이슈, ESRS와 CSRD란? “EU ESG 공시의 짝꿍” 🇪🇺
ESRS는 EU의 ESG 보고지침인 CSRD을 구현하기 위해 마련한 표준 보고 양식입니다.
CSRD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및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후공시와 함께 글로벌 3대 공시지침으로 꼽힙니다.
특히, CSRD는 3대 공시지침 중에서 가장 먼저 법적 발효가 이뤄졌단 점에서 주목받습니다.
EU 집행위는 CSRD를 통해 지속가능성 보고를 재무보고와 동등한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앞서 EU 집행위는 2017년 첫 ESG 보고지침인 ‘비재무정보 보고지침(NFRD)’을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NFRD에서는 기업들이 중요 정보를 임의로 취사 선택하는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이에 개선안으로 등장한 것이 CSRD입니다.
CSRD는 기업이 공시하는 비재무정보의 투명성, 비교가능성,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개선점이 반영됐습니다. ▲구체적인 ESG 경영 목표 설정 ▲지속가능성 관련 정책 ▲보고의무 대상 확대 ▲제3자 검증 의무화 등이 특징입니다.
CSRD의 다른 특징은 ‘이중 중대성(Double materiality)’ 평가 방식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이중 중대성이란 지속가능성 이슈가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In-bound)뿐만 아니라, 기업의 활동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Out-bound)을 함께 고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지속가능성 영향과 재무적 가치가 분리될 수 없음을 재차 강조한 것.
ESRS 12가지 기준 “ESG 관련 기업 영향, 폭넓게 공시 요구” 📜
이번에 확정된 ESRS 기준은 첫 번째 세트(First Set)로,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사항을 다룹니다.
추후 공개될 두 번째 세트(Second Set)에는 산업 섹터별 표준안, 중소기업을 위한 간이 표준안, 비EU 기업 표준안이 담길 계획입니다.
ESRS 첫 번째 세트에는 12개의 기준과 4개의 보고 영역이 담겼습니다.
12개의 기준은 2가지의 공통기준(ESRS1 및 ESRS2)과 주제별 10가지로 구성됩니다. 4개의 보고 영역은 ▲지배구조 ▲전략 ▲영향·위기·기회 ▲수치·목표 등입니다.
- 1️⃣ ESRS1: 공통표준은 지속가능성 보고서 작성시 적용해야 하는 일반 원칙을 규정합니다.
- 2️⃣ ESRS2: 일반적인 기업 개요 및 전략, 지배구조 등 필수 구성항목을 제시합니다.
더불어 주제별 기준 10가지는 환경 5가지, 사회 4가지, 지배구조 1가지로 구성됩니다.
- 환경 🌍: ①E1 기후변화 ②E2 오염 ③E3 물과 해양자원 ④E4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⑤E5 자원 사용과 순환경제
- 사회 🌐: ⑥S1 인력 ⑦S2 가치사슬 내 근로자 ⑧S3 영향권 내 지역사회 ⑨S4 소비자 및 최종 사용자
- 지배구조 🏛️: ⑩G1 사업수행
ESRS에 따르면, 공시대상은 밸류체인(가치사슬) 내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 전체를 아우릅니다.
E1 기후변화 공시를 예로 들면, 탄소배출량의 경우 스코프 1·2·3를 모두 보고해야 합니다. 단, 가치사슬 관련 정보의 경우, 기업의 어려움을 고려해 공시가 3년간 유예됩니다.
모든 기업이 10가지에 대해 모두 공시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들은 지속가능성 관련 기업에게 또는 기업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되는 이슈를 선정해, 해당 이슈에 대해 공시하는 방식입니다.
기업들은 ESRS2에 담긴 ‘중대성 평가 공시 요구사항’을 근거로 중대성을 평가하게 됩니다.
EU 집행위 “ESRS 수정안, 초안 대비 기업 자율성 높였다” 📈
앞서 설명한대로 이번에 EU 집행위가 확정한 ESRS는 EFRAG의 초안을 기반으로 합니다. EU 집행위는 추가 수정 작업을 거쳐 지난 6월 9일(현지시각) 수정안을 공개했습니다.
해당 수정안이 논의를 거쳐 지난달 31일 확정된 것입니다. EFRAG 초안에서 수정된 사항은 크게 3가지입니다.
1️⃣ 의무 공시 대상 축소 📝
당초 EFRAG의 초안에서는 ESRS2 및 E1(기후변화), S1(인력) 등이 의무 공시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EU 집행위는 수정안에서 ESRS2만 의무 공시 대상으로 지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기업은 E1 및 S1에 대해 중대성을 평가한 뒤, 공시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단, EU 집행위는 E1을 공시에서 제외할 경우, 중대성 평가 내용에 대한 설명을 공개할 것을 전제합니다.
2️⃣ 일부 공시 단계적 시행 🪜
ESRS 초안에서는 밸류체인에 대한 공시는 3년간 유예됐습니다. EU 집행위는 여기에 더해 일부 기준에는 1~3년의 유예가 추가로 제공됩니다.
보고 첫해에는 기업 규모 관계 없이 환경 관련 위험·재무영향 공개가 유예됩니다. 이후 2년 동안은 재정 영향 관련 정성적 정보만 제공할 수 있습니다. S1 또한 보고 첫해에는 일부 공개를 생략할 수 있습니다.
직원 750명 미만 기업은 E1의 스코프 3 배출량 및 S1 공시를 포함한 일부 기준 공시가 1~2년 유예됩니다.
3️⃣ 자발적 공시 확대 🦜
일부 공시 요구사항과 공시 대상 데이터 항목 또한 의무 공시에서 자발적 공시로 전환됐습니다.
이에 따르면 기업들은 ▲생물다양성 전환 계획 ▲S1 관련 비(非)고용 인력 지표 ▲특정 지속가능성 주제를 중요 정보로 평가하지 않은 이유 등의 공시 여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수정안 확정에 “사실상 기후공시 철회”란 비판도 💬
EU 집행위가 6월 공개한 수정안을 그대로 확정하자, 사실상 EU 집행위가 엄격한 기후공시를 도입하는데 실패했다는 반응이 유럽 금융업계에서 나왔습니다.
12개 기준 중 10가지 기준에 대해 기업이 공시 대상 정보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유럽 및 국제 금융기관들은 6월 EU 집행위가 수정안을 공개한 직후부터 해당 수정안에 대한 우려를 표해왔습니다.
수정한 공개 직후 유럽지속가능성투자포럼(EUROSIF)은 EU의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EFRAG의 초안을 따라야 한다고 피력했습니다.
지난 7월 ‘기후변화에 관한 기관투자자 그룹(IIGCC)’, 유엔환경프로그램금융계획(UNEP FI) 등은 92개 자산운용사 및 기관투자자와 함께 ESRS 수정안을 재고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럼에도 EU 집행위가 수정안을 확정한 상황.
이에 알렉산드라 팔린스카 EUROSIF 전무이사는 성명에서 “주요 ESG 지표를 필수로 유지하라는 투자자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기후변화 싱크탱크 E3G의 츠베텔리나 쿠즈마노 선임정책고문 또한 “EU 집행위는 (업계의) 압력을 받아 기후 관련 정보의 의무적 공개를 철회했다”고 비판했습니다.
2024년 발효되는 CSRD, 한국 기업은 어떤 대비 필요할까? 🇰🇷
ESRS에 따른 CSRD 적용 대상은 EU 역내외 기업 모두를 아우릅니다.
구체적인 대상은 ▲EU 상장기업(초소형 상장기업 제외 FY* 2024) ▲EU 소재 대기업(FY 2025) ▲EU역내 연간 순매출 1억 5,000만 유로(약 2,100억원) 초과 비EU기업(FY 2028) ▲연간 순매출 4,000만 유로(약 570억원) 초과 EU지사·자회사를 보유한 비EU기업(FY 2028) 등입니다.
가장 먼저, 오는 2024년 1월부터 EU 상장사 및 직원 500인 이상 대기업을 대상으로 적용될 예정입니다.
쉽게 말해 한국 기업 또한 공시의무를 적용 받게 된단 것.
가장 빠른 적용 시기는 2025 회계연도(FY)로, 비EU 기업 중에서 EU 규제시장에 채권·주식을 상장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더욱이 밸류체인에 걸쳐 지속가능성 정보를 공시해야 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EU 매출이 없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삼일회계법인(삼일 PwC)은 국내 기업들이 CSRD 내 비EU 기업의 공시 대상 범위에 해당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이밖에도 협력사 등 밸류체인 전반을 포괄하는 데이터 수집 시스템 및 인프라(기반시설) 구축, 지속가능성경영활동의 내재화 및 전문성 확보, 공시기준의 지속적 모니터링 등이 필요하다고 삼일PwC는 덧붙였습니다.
한편, 비EU 기업에 대한 지속가능성 정보공개기준은 2024년 6월까지 채택될 ESRS 두 번째 세트에 별도로 작성·공개될 예정입니다.
*FY(Fiscal year·회계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