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860만여명이 거주하는 대도시 뉴욕. 이 거대한 도시에서는 매년 100억 개의 플라스틱 비닐봉지가 사용되고 버려집니다.
그러나 플라스틱 비닐봉지 같은 필름 플라스틱은 재활용을 어렵게 만듭니다. 재활용 시설 내 분류과정에서 톱니나 부속장치에 끼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에 플라스틱 비닐봉지를 더 손쉬운 방법으로, 더 순환적으로 재활용한 곳이 있습니다. 뉴욕시에서 버려진 플라스틱 봉지를 사용해 만든 업사이클링 가방 ‘애니백(ANYBAG)’입니다.
‘뉴욕 가방(A New York Bag)’에서 이름을 따온 애니백. 회사명이자 가방의 이름인데요. 이름 그대로 뉴욕시의 폐플라스틱 비닐봉지를 사용해 제작됩니다.
제작 방법은 간단합니다. 뉴욕시 전역에서 깨끗한 폐플라스틱 비닐봉지를 수거한 다음 길게 자릅니다. 잘린 조각들을 모아서 열을 가하면 한 가닥의 긴 끈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끈들을 직조기에 걸고 씨실과 날실을 엮어 천으로 짜주면 끝입니다.
하나의 가방을 만드는데 95개, 약 2파운드(0.9㎏) 분량의 일회용 비닐봉지가 사용됩니다. 처음에는 자사의 공장에서 나온 비닐봉지로 시작해 학교 및 지역사회로 플라스틱 수집처를 확장했습니다.
개인은 물론, 기업들이 생산하고 기부한 재고·자투리 등도 활용됩니다. 일회용 비닐봉지 외에도 식품용 랩, 빵 봉지, 과자봉지 등 다양한 플라스틱 봉지가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비닐봉지였을까요?
“비닐봉지는 평균 12분 사용되고 버려져 1,000년 동안 남는다. 플라스틱을 바라보는 방식에 혁명을 일으키고 싶다.”
애니백의 디자이너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알렉스 답바그는 왜 비닐봉지로 가방을 만들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그는 애니백을 통해 비닐봉지 문제를 담론화하고 소비자의 인식을 높여 미 의회 의원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이 “저를 키워준 도시에 기여하고 모두를 위한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는 방법이다”고 덧붙였습니다.
답바그 CEO는 아버지대부터 내려온 가죽가공업체의 2대 사장입니다. 그는 대를 이어 뉴욕에서 살아온 뉴요커로서, 뉴욕시의 폐플라스틱 비닐봉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데요.
관심이 행동으로 전환된 기점은 2019년이었습니다.
뉴욕주는 2018년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금지법을 발표했고, 2020년 10월부터 시행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뉴욕주의 비닐봉지 금지법 시행이 다가오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비닐봉지가 판매되고 있던 것.
무엇보다 뉴욕시에는 비닐봉지를 재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했습니다. 답바그 CEO는 “재활용 회사는 (투입된) 비닐봉지가 기계를 망가뜨리며 매년 수백만 달러의 손해를 입히기 때문에 (비닐봉지 재활용을) 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는데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답바그 CEO는 가죽가공 방식을 플라스틱 비닐봉지에 적용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그는 “가죽을 엮을 수 있듯이, 플라스틱도 엮을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그리고 몇 달 간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2020년 4월 뉴욕시의 리패션 위크(ReFashion Week NYC)에서 뉴욕시의 폐플라스틱 비닐봉지를 엮어 만든 애니백을 선보였습니다.
답바그 CEO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 애니백이 업사이클링한 일회용 비닐봉지는 68만 개에 달합니다. 무게로는 1만 3,000 파운드(약 5.8톤)입니다. 지금까지 약 2,500개의 애니백이 판매됐다고 애니백 측은 밝혔습니다.
답바그 CEO는 플라스틱 전용 직조기를 구입하는 등 자동화 공정을 도입 중입니다. 이와 함께 여러 유명 브랜드와 협업하여 영향력을 확장 중입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애니백은 아디다스와 랄프로렌 등 패션브랜드와 유명 모델 미란다 커의 뷰티브랜드 코라오가닉스 등과 협업했습니다.
더불어 작년 6월에는 뉴욕의 패션브랜드 키드슈퍼와의 협업으로 파리 패션위크 컬렉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한편, 답바그 CEO는 일회용 비닐봉지의 문제를 알리기 위한 캠페인도 지속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애니백은 작년 12월 뉴욕시 길거리에서 팝업 이벤트를 통해 일회용 비닐봉지 문제를 알리기 위한 한정판 컬렉션을 선보였는데요. 여기에는 4,750개의 일회용 비닐봉지를 사용한 이 애니백은 뉴욕시에서 흔하게 쓰이는 비닐봉지의 디자인을 차용했습니다.
스마일 아이콘과 ‘좋은 하루 보내세요(HAVE A NICE DAY)’란 문구가 특징인데요.
답바그 CEO는 상징적이고 눈에 띄는 그래픽을 사용해, 여전히 일회용 비닐봉지로 도배된 뉴욕시 거리의 모습을 알리려고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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