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 및 재생에너지 설비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니켈·리튬·코발트 등 핵심광물도 점점 고갈되는 상황입니다. 이에 새로운 핵심광물 공급원으로 주요 광산 기업은 ‘심해채굴’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심해채굴을 둘러싼 시각은 엇갈립니다. 핵심광물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필요하단 입장과 환경파괴·생물다양성 손실 등을 초래한단 입장이 서로 부딪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심해채굴이 무엇이고, 현재 어떤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니엄이 살펴봤습니다.
국제해저기구, 2024년 안에 심해채굴 면허 발급…“관련 규정은 아직” 🤔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의하면, 심해채굴은 심해저에서 니켈·망간 등 광물을 채굴하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심해저는 수심 200m 이상의 해저입니다.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UNCLOS·유엔 해양법협약)’에 따르면, 심해는 ‘국가관할권 한계 밖의 해저·해상 및 그 하층토’로 정의됩니다. 전체 해저 면적의 3분의 2를 차지합니다.
협약에 따라 심해채굴을 포함해 심해저 지역을 탐사하고 개발하는 모든 활동은 유엔 산하 해양규제기관인 국제해저기구(ISA)로부터 허가 받아야 합니다.
현재까지 국제 해역에서의 심해채굴은 시험(파일럿) 수준으로 진행하거나 광물 자원을 탐사하는 규모로만 이뤄지고 있습니다.
다만, 2024년부터 상업적 용도의 대규모 심해채굴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ISA가 오는 7월까지 심해채굴을 희망하는 각국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채굴 허가 신청서를 받을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ISA는 1년 동안 신청서를 검토한 뒤 전체 회원국의 3분의 1 이상 찬성표를 얻은 주체에 한해 ‘심해채굴 면허’를 발급할 예정입니다. ISA에는 유엔 해양법협약 당사국인 168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돼 있습니다.
문제는 심해채굴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단 것입니다. 앞서 ISA는 2016년부터 심해채굴이 환경오염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규정안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회원국 간 의견 차이로 합의에 이르진 못했습니다.
“남태평양 심해, 전기차 약 3억 대 제작에 사용될 핵심광물 풍부” 🙆
태평양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나우루공화국(이하 나우루)은 심해채굴에 찬성하는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최근 심해채굴 논쟁을 더욱 촉발시킨 주체입니다.
나우루는 지난 2021년 세계 최초로 ISA에 심해채굴 허가를 신청했습니다. 나우루가 후원하고 있는 광산기업 ‘나우루 오션 자원 주식회사(NORI)’와 본격적으로 해저광물을 채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나우루는 NORI와의 심해채굴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NORI의 모회사인 캐나다 광산기업 메탈스컴퍼니(The Metals Company) 역시 심해채굴을 찬성하는 기업 중 한 곳입니다.
메탈스컴퍼니는 “남태평양 15만k㎡(제곱킬로미터) 심해에만 전기차 2억 8,000만 대에 활용할 충분한 희토류 자원이 있다”며 심해채굴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또 일부 광산기업은 심해채굴이 지상채굴 대비 친환경적이라며 지지하고 있습니다.
한편, 일부 기업은 심해채굴이 지상채굴 대비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심해에는 주먹 크기의 망간단괴*들이 있습니다. 이 암석을 해저에서 줍기만 하면 된다는 것. 광물 추출 시 삼림 벌목과 굴착 등의 방식이 되는 지상채굴보다 친환경적이란 것이 이들의 말입니다.
*망간단괴: 바닷물에 녹아있는 금속 성분이 평균 5,000m 깊이의 심해 퇴적물 위에 가라앉아 형성된 주먹만 한 크기의 검은색 광물 덩어리.
“심해채굴 생물다양성 및 기후 위협”…ISA 일부 회원국 반대 합세 🙅
다만,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심해채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국제 야생동물 보호단체 파우나앤플로라(Fauna&Flora)는 지난 3월 발표한 ‘해양 생태계에 대한 심해채굴의 위험 및 영향 평가’ 보고서를 통해 심해채굴에 반대하는 2가지 이유를 소개했습니다.
첫째, 심해채굴이 해삼·산호 등의 생물들을 멸종시킬 수 있단 것.
파우나앤플로라는 오랫동안 어둡고 조용한 곳에 적응해 온 심해종에게 채굴로 인한 소음과 빛 공해는 매우 치명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일부 심해종은 포식자를 피하거나 짝과 먹이를 찾기 위해 진동과 소음을 감지합니다. 그러나 심해채굴이 이러한 기능을 방해해 종 자체의 생존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보고서는 심해채굴로 망가진 생물다양성이 재회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단 점을 지적했습니다.
둘째, 심해채굴이 기후문제를 더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캐서린 웰러 파우나앤플로라 국제 정책 책임자는 “해저에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블루카본’ 역할을 수행하는 해조류와 퇴적물 등이 있다”며 “채굴 과정에서 이러한 해양생태계가 훼손될 경우 해양의 탄소저장 능력이 완전히 중단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로 인해 지구촌이 현재 직면한 기후위기가 더 악화할 수 있단 것이 웰러 책임자의 경고입니다.
ISA 일부 회원국도 비슷한 이유로 심해채굴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중순부터 4월까지 ISA 내에서 심해채굴 규정 합의가 진행되는 동안, 독일·프랑스·스페인·코스타리카 등 회원국은 심해채굴에 반대의사를 피력했습니다.
이들은 심해생태계의 생물학과 환경에서의 역할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아직 부족하다며 심해채굴 중단을 촉구했습니다.
ISA 사무총장 심해채굴 지지 vs 중립지켜야 “규정 마련 시한 7월 임박” 📃
심해채굴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 허용 결정권을 쥔 ISA의 채굴 규정 마련 시한은 오는 7월로 다가왔습니다.
2021년 6월 나우루가 심해채굴 허가를 신청하면서, 규정 마련과는 상관없이 2년 이내에 채굴 신청을 검토하도록 하는 이른바 ‘2년 규칙(two-year rule)’이 발동했기 때문입니다.
2년 규칙은 유엔해양법협약 내 제162조를 말합니다. 협약에 의하면, ISA는 신청된 심해채굴을 관리하기 위한 규정을 채택해야 합니다. 규정이 채택되지 못하더라도 2년 이내에 채굴 제안을 평가해야 합니다.
2년 규칙이 발동된 건, 1994년 유엔해양법협약이 발효되고 30여년만에 처음입니다.
나우루의 신청에 따라 ISA가 규정을 마련해야 하는 시한은 오는 7월 9일까지입니다. 오는 7월 ISA 회의에서 심해채굴 관련 규정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기존 규정에 근거해 승인 여부를 검토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심해채굴을 찬성하는 회원국들은 규정 제정을 촉구하는 상황입니다. 반면, 심해채굴이 꼭 필요한지 의구심을 갖는 여론도 있어 ISA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 속 마이클 롯지 ISA 사무총장은 심해채굴을 줄곧 지지해 왔습니다.
롯지 총장은 과거 심해채굴이 수 세기 동안 지상에서 이뤄진 여러 활동보다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에 독일 외교관은 롯지 사무총장이 지나치게 광물 친화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심해채굴 사업 추진 시 약 14조 원 소요…“상업성은 미지수” 💰
한편, 심해채굴이 상업적으로 경제성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됩니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키플링어(Kiplinger)는 지난달 7일(현지시각) “메탈스컴퍼니가 계획하고 있는 심해채굴 사업을 전면적으로 추진하려면 106억 달러(약 14조원)가 필요할 것”이라며 “사업성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선 쉽게 엄두를 내기 어려운 액수”라고 지적했습니다.
프라딥 싱 독일 지속가능성 연구소 해사법 전문가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심해채굴이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지상채굴 대비 비용 측면에서 갖는 우위를 보여주며 경쟁력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ISA는 오는 7월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할 예정이나, 심해채굴을 둘러싼 찬반 논쟁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심해채굴 규정 논의를 위한 회의는 오는 7월 10일부터 7월 28일(현지시각)까지, 카리브해 섬나라 자메이카에서 개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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