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방지를 위한 규제를 정비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가 그린워싱 방지를 위한 지침을 공개했습니다.
공정위는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지침 개정안(이하 심사지침 개정안)’을 오는 28일까지 행정 예고한다고 지난 8일 밝혔습니다.
공정위는 기업들의 환경 관련 마케팅이 증가함에 따라 그린워싱 논란도 급증하고 있다며 개정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올해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친환경 관련 위장·표시 광고로 적발된 건수는 총 4,558건에 이릅니다.
이는 272건에 불과했던 전년대비 16배 이상 급증한 수치입니다.
정교해진 그린워싱 심사지침, “원칙 재정비·사례 구체화” 📜
공정위는 기업들의 그린워싱 방지를 막고자, 이번 심사지침 개정안에서 기준을 구체화하고 여러 예시를 추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개정된 내용은 ▲일반원칙 정비 ▲세부유형별 위반 사례 추가 ▲목표·계획 관련 그린워싱 판단 기준 구체화 ▲사업자 체크리스트 신설 등입니다.
일반원칙의 경우 명확성이 별도 원칙으로 신설·세분화됐습니다.
이에 따라 ‘친환경성’이라는 모호한 주장 대신 비교 근거, 내용, 방법 등과 함께 구체적인 환경적 이점을 명시해야 합니다.
또 전과정성 원칙도 명확히 했습니다. 즉, 일부 단계에서의 환경성이 개선됐다 해도 원료의 획득·생산·유통·사용·폐기 등 상품의 전 생애주기 차원에서 상쇄되거나 악화될 경우 환경성이 개선됐다고 표시·광고할 수 없습니다.
소비자의 구매․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누락, 은폐,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완전성 원칙도 신설됐습니다.
이밖에도 진실성·상당성·실증성·구체성·완전성을 포함해 총 7가지의 원칙에 따라 심사할 것이라고 공정위는 예고했습니다.
별도의 세부심사지침에서는 미래의 목표·계획이나 기업·브랜드의 친환경 표시·광고와 관련된 기준도 구체화했습니다.
예컨대 그간 2050년 탄소중립과 같은 선언들은 구체적 근거 없이 기업들의 친환경 마케팅에 이용된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이에 공정위는 이번 개정안에서 이 경우 ▲구체적인 이행계획 ▲인력 및 자원 확보 방안 ▲측정 가능한 목표와 기한 등을 밝혀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사업자가 사전에 그린워싱을 방지할 수 있도록 심사지침의 내용을 간소화한 체크리스트도 신설했습니다. 항목은 총 16가지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전히 알쏭달쏭하다고? 역대 그린워싱 논란으로 살펴보자면! 🔍
공정위는 이번 개정안이 그린워싱 여부의 예측가능성을 높임으로써 그린워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추진됐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용어와 사례의 복잡성과 다양성으로 인해 그린워싱 판별 기준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요.
이해를 돕기 위해 이번 심사지침 개정안을 바탕으로, 한국의 역대 그린워싱 논란 사례를 들여다봤습니다.
1️⃣ 이니스프리 종이병 논란🧴|명확성·상당성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그린워싱 사례는 단연 2021년 불거진 이니스프리의 ‘종이병’ 논란입니다. 화장품 기업 이니스프리에서 친환경 용기를 사용했다고 홍보한 제품에 플라스틱이 사용된 것인데요.
당시 사측은 홈페이지와 제품 용기에 플라스틱 사용을 안내했고, 실제로 기존 제품 대비 50% 이상 플라스틱을 절감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실사지침 개정안을 바탕으로 평가하면 해당 사례는 명확성과 상당성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먼저 제품명과 홍보 문구를 종이병(PAPER BOTTLE)으로 표기하면, 소비자가 종이만 사용했다고 오인할 소지가 있단 것. 그리고 이러한 문구로 소비자가 해당 제품이 실제보다 더 친환경적이라고 과장되게 인식할 수 있단 점에서 그린워싱의 논란이 있습니다.
2️⃣ SK 탄소중립 윤활유🛢️|진실성
SK엔무브(전 SK루브리컨츠)가 2022년 출시한 ‘탄소중립 윤활유’의 경우, 지난 1월 환경부로부터 그린워싱 논란으로 행정지도를 받은 사례입니다.
SK엔무브는 해당 윤활유가 제품 예상 판매량에 따른 탄소배출량을 산정하고, 자발적 탄소크레딧을 구입·상쇄했기 때문에 탄소중립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환경부는 SK엔무브가 스코프 3에 해당하는 탄소크레딧만을 구입했기 때문에 탄소중립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일각에선 탄소크레딧에 의한 탄소중립·감축의 경우, 진실성과 관련된 리스크(위험)가 상존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최근 들어 탄소크레딧의 신뢰성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인데요. SK엔무브에 탄소크레딧을 판매한 인증기관인 베라(Verra) 역시 신뢰성·투명성 논란에 휩싸인 바 있습니다.
3️⃣ 포스코 삼척화력발전소 🏭|전과정성
지난 2021년, 포스코에너지는 강원도 삼척에 건설 중인 삼척석탄화력발전소가 친환경 발전소라고 홍보해 그린워싱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당시 포스코에너지는 이미 훼손된 부지를 활용했기 때문에 기존 생태계를 훼손할 여지가 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전과정성에 비추어볼 때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해당 발전소의 건설 단계에서는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으나, 운영과정에서 석탄 연료 사용으로 다량의 온실가스(GHG)가 배출되기 때문입니다.
+ “석유기업 그린워싱은 못 막는다?”…’소비자 오인성·공정거래 저해성’ 전제는 한계로 꼽혀 ☹️
앞서 소개한 포스코에너지의 삼척화력발전소의 경우 공정위에 제소될 가능성은 적습니다. 공정위는 개정안에서 기업의 표시·광고가 심사지침에 위반하더라도 “소비자를 오인시킬 우려가 없거나 공정한 거래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없다면 기만·과장광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소비자와 직접적 연결성이 적은 발전소, 화석연료 기업 등의 그린워싱 광고를 용인하게 될 수 있다 우려합니다. 실제로 공정 거래 해당 대목은 SK E&S의 ‘탈탄소(CO2 Free) LNG’ 광고에 2022년 공정위가 무혐의 결정을 내린 근거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그린워싱 방지 위해 칼 빼든 공정위…“국내 기업, 직접적 영향 받을 것” ⚖️
공정위의 심사지침 개정안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두 가지 법률에 근거해 친환경 표시 및 광고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이하 환경기술산업법)’입니다. 이 경우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심사·실증하고 시정조치를 내립니다.
다른 하나가 표시·광고 공정화에 관한 법률(표시광고법)입니다. 공정위가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지침을 만들고 이에 따라 관리·감독합니다. 공정위가 행정 예고한 개정안이 바로 여기에 관련됩니다.
그린워싱 방지라는 목적은 동일하나 처벌 양상이 다릅니다. 환경기술산업법에 의하면, 환경부가 해당 표시·광고에 그린워싱 판단을 내릴 경우 시정조치와 과징금, 징역형 처분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실효성이 낮고 금액 산정이 어려워 대부분 강제력이 없는 행정지도 처분에 그쳐왔습니다.
이와 달리 표시광고법에 따르면 공정위는 과징금과 징역형 외에도 과태료 부과가 가능합니다. 비교적 소액이기 때문에 실질적이고 실효성 있는 규제가 가능합니다. 국내 기업들이 이번 공정위가 내놓은 심사지침 개정안에 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개정안은 오늘 28일까지 행정예고 기간을 가집니다. 공정위는 대국민 의견 수렴과 전원회의 의결 등을 거쳐 개정안을 확정·시행할 계획입니다.
한편, 환경부는 지난 1월 자원순환·기후 분야 업무계획에서 그린워싱 방지를 위해 환경기술산업법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상반기 중 과태료 조항을 신설할 것이라 발표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