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25일은 그리니엄이 첫 콘텐츠를 발행한 지 2년째 되는 날입니다.
순환경제 전문매체를 표방하는 그리니엄. 지난 2년간 국내외에서 순환경제와 기후문제에 대한 관심이 확연히 높아졌음을 체감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순환경제를 자원절약과 폐기물 재활용으로만 한정해 여기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난 2021년 12월 정부가 내놓은 ‘한국형(K)-순환경제 이행계획’의 주요방점 또한 폐기물 재활용에 맞춰져 있었는데요.
그리니엄은 창간 2주년을 맞아 ‘순환경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금 마주하려 합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글로벌 순환경제 전환을 선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관 ‘엘렌맥아더재단(EMF·Ellen MacArthur Foundation)’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습니다.
[편집자주]
1966년 등장한 순환경제, ‘엘렌맥아더재단’ 통해 유럽·미국 전파돼 🌐
생산-소비-폐기로 자원을 낭비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선형경제. 이와 대비되는 순환경제는 자원을 최소한으로 투입하고 제품을 가능한 한 오래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폐기물 배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경제 모델로 제시됩니다.
순환경제의 개념은 1966년 영국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에 의해 처음 제시됐습니다. 이후 순환경제란 용어는 1990년 영국 환경경제학자 데이비드 피어스와 케리 터너의 논문에서 처음 언급됩니다.
순환경제는 2006년 중국의 ‘제11차 5개년 계획’과 유럽연합(EU)의 ‘순환경제 실행계획’ 등에 주요 개념과 정책으로 포함되며 서서히 주목받습니다. 그러던 중 2000년대 불거진 원자재 가격 폭등과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을 겪으며 순환경제의 중요성이 부각됐습니다.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순환경제가 부상하는 과정에서 유럽과 미국에 순환경제 개념을 전파했다고 평가받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전 세계 순환경제 전환을 선도하고 있는 엘렌맥아더재단(EMF)입니다.
요트 선수에서 순환경제 전도사로…“항해 중 물질의 유한성 깨달아” ⛵
이 재단은 전직 요트 선수인 엘렌 맥아더의 이름을 따와 2010년에 설립된 영국의 비영리단체입니다.
재단을 살펴보기에 앞서 설립자인 맥아더는 누구이고, 왜 순환경제에 주목했는지 궁금할 수 있습니다.
재단 설립 이전까지, 맥아더란 사람은 순환경제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바로 그가 약 72일 만에 요트로 세계일주에 성공한 최단 기록 보유자란 사실입니다.
어릴 적부터 항해에 도전했던 맥아더는 2005년, 영국 해안을 출발해 대서양과 인도양 그리고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대장정을 거쳐 다시 출발지인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종전기록보다 30시간가량 줄인 71일 14시간 18분 33초였습니다. 그는 바로 단독 세계일주 최단기록 보유자에 올랐는데요.
이를 인정받아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으로부터 남성의 기사 작위(나이트)에 해당하는 명예 ‘데임(Dame)’ 작위를 받았습니다. 또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훈장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맥아더는 4년 뒤인 2009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돌연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1년 뒤, 맥아더는 순환경제 촉진을 목표로 하는 재단을 설립합니다. 맥아더는 항해에서의 경험이 자신을 순환경제에 대한 실천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는데요.
“(항해는) 당신이 탄 배가 온 세상이고 출항 시 챙긴 물건이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이다. (…) 인생의 그 어떤 경험도 ‘유한(有限)’이라는 단어를 (항해보다) 더 잘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 세계 경제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엘렌 맥아더, TED
2015년 미국 지식공유 강연 TED에 출연한 맥아더는 항해 중, 배 안의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온갖 고군분투를 겪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요트 안에 불이 나 팔에 화상을 입고, 돛대를 수리하다 부상을 당해 온몸에 멍이 들기도 했습니다. 음식, 연료, 옷, 휴지, 치약까지도 첫 출항 때 챙긴 물품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 디젤 한 방울과 마지막 음식 봉지 하나까지 관리해야 했다”고 강연에서 말했는데요.
맥아더는 이 경험을 통해 물질의 유한성을 깨닫게 되었고, 이는 세계 경제 또한 마찬가지란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맥아더는 “세계를 항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도전”에 뛰어들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유한한 세계 경제가 장기적으로 기능하게 만들 방법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방법을 찾기 위해, 그는 민간 및 공공부문에서 여러 자원순환 전문가들과 상담을 거쳤습니다. 이를 통 순환경제의 개념을 알게 됐다는데요.
진정한 순환경제란? “분리수거·재활용 아닌, 시스템의 변화!” 🗺️
그렇다면 맥아더가 말하는 ‘순환경제’란 무엇일까요?
그는 순환경제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의 선형경제를 살펴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오늘날 우리 경제는 주로 땅에서 재료를 가져와(Take) 무언가를 만들고(Make), 궁극적으로 버리는(Dispose)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비해 순환경제는 처음부터 재생을 염두에 두고 설계합니다. 이는 단순히 제품의 설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재생가능한 재료를 위한 자금 조달부터 구독·리필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제 시스템의 변화와 이어집니다.
맥아더는 이러한 과정을 항해에 비유했습니다. 그는 항해에서 중요한 것은 배의 속도만이 아니란 점을 짚었는데요. 그는 배를 만들고, 물자를 채우고, 날씨를 파악하는 등 영향을 끼치는 모든 것들의 총합이 중요한 것처럼, 순환경제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습니다.
엘렌맥아더재단이 꼽은 순환경제 3원칙은? ⚖️
순환경제의 중요성을 깨달은 맥아더는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한다는 목표 아래, 2010년 재단을 설립합니다.
재단은 순환경제 전환에서 무엇보다 ‘설계(Design)’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순환경제로의 전환은 곧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의 경제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작업이라고 재단은 설명하는데요.
재단은 순환경제의 구체적인 원칙을 3가지로 규정합니다. ▲폐기물·오염 제거 ▲제품·재료 순환 ▲자연 재생 등입니다.
첫 번째 원칙은 폐기물과 오염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제품을 설계할 때부터 일회용 소재, 재활용이 어려운 소재를 피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원칙은 제품과 재료의 가치를 순환시키는 것입니다. 사용이 끝난 제품과 재료를 재사용과 재활용, 퇴비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다시 재자원화함으로써 자원 낭비를 막을 수 있습니다.
기존의 재활용 담론은 ‘사후처리적 접근’인 반면, 순환경제는 설계 때부터 가치 회복을 중점에 둔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재단은 설명합니다.
세 번째 원칙은 자연을 재생하는 것입니다. 순환경제는 자원낭비를 없앰으로써 자연 훼손을 막을 수 있습니다. 재단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훼손된 자원의 재생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재생농업, 재생양식 등을 사례로 꼽았습니다.
순환경제 교육·네트워킹 플랫폼으로 성장…“정부·기업과도 협업 중!” 🤝
현재 재단은 순환경제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크게 ▲교육 ▲비즈니스 및 정부 ▲인사이트 및 분석 ▲커뮤니케이션 등 4가지 영역에 중점을 맞추고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재단은 이것이 “각국 정부와 국제기관, 기업, 도시 대학, 비영리단체, 혁신가 및 기타 많은 사람들과 협력하는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를 위해 재단은 세계 정책 입안자와 기업가를 돕기 위해 각종 사례 연구와 교육자료, 정책 지침 등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2021년에는 패션 브랜드를 위한 순환경제 백서를 발간했습니다.
또한 전 세계 수천 명의 혁신가와 기업가들을 연결하기 위해 순환 스타트업들을 모은 목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순환 스타트업 인덱스(Circular Startup Index)’입니다.
재단은 “완전히 순환적인 비즈니스는 아직 없다”면서도 이러한 스타트업이 순환경제로 나아가기 위한 여정을 만들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밖에도 순환경제의 기본 개념을 설명한 콘텐츠부터 순환경제 용어 사전, 팟캐스트 방송 등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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