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대표 술인 테킬라(Tequila). 다육식물의 일종인 용설란(아가베·agave)을 수확한 후 발효하여 증류해 만든 술입니다.
정확히는 녹말이 풍부한 용설란의 뿌리 ‘피냐(Piña)’를 36시간 동안 증기로 찌는데요. 이후 12시간 정도 식힌 다음 짓이겨 ‘아과미엘(Aguamiel·꿀물)’이란 설탕물을 추출합니다. 이를 다시 효모로 충분히 발효한 후 2회 정도 증류해야 테킬라가 나옵니다.
멕시코 테킬라 규제위원회(CRT)에 따르면, 2021년 1월부터 11월까지 멕시코에서만 약 5억 리터 이상의 테킬라가 생산됐습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1.2% 늘어난 것인데, 이중 상당수가 수출용이었다고 CRT는 밝혔습니다.
문제는 테킬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부산물이 발생한단 것. CRT 등에 따르면, 대개 테킬라 1병(1리터 기준)을 생산하면 약 17kg의 부산물이 발생합니다.
여러 공정에서 고농도로 압축된 부산물인 탓에 그대로 방치할 경우 토양과 수질 등을 오염시킬뿐더러, 부패 과정에서 주요 온실가스 중 하나인 메탄(CH4)이 방출될 우려도 있습니다.
멕시코 주류기업 상당수는 테킬라 제조 후 나온 부산물을 퇴비로 만들거나, 매립지로 보내는 상황. 이 때문에 멕시코에서 이 부산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놓고 여러 방안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최근 아스트랄테킬라(Astral Tequila)라는 멕시코 주류기업은 테킬라 제조 후 나온 부산물을 벽돌로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회사의 최고지속가능성책임자(CSO)인 마사 지메네즈 카르도주가 벽돌을 개발했는데요. 카르도주 CSO는 멕시코 현지대학에서 토목공학 학위를 취득한 엔지니어이기도 합니다. 그는 농부이자 건설노동자였던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테킬라 부산물의 처리 방법을 알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일명 ‘어도비(adobe)’라 불리는 이 벽돌은 모래·찰흙·물이나 나무껍질 등 유기물질로 만들어집니다. 낮에는 시원하게 유지되고 밤에는 열을 방출하기 때문에 주류 건축 자재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고, 멕시코의 따듯하고 온화한 기후에 적합하단 이점이 있습니다.
벽돌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묽은 흙 반죽에 테킬라 부산물을 섞은 후 틀 속에 넣으면 됩니다. 이후 10일간 건조를 거치면 끝. 일반 벽돌과 달리 가마에서 굽는 작업인 소성(燒成)이 필요 없습니다. 건조 과정에서 부산물 속 풍부한 섬유질이 벽돌을 튼튼하게 만든다고 협력사인 그린루프(Green Loop)는 밝혔는데요.
다만, 모든 테킬라 부산물을 이 방식으로 활용할 수는 없다고 카르도주 CSO는 밝혔습니다. 그는 일찍이 2017년부터 테킬라 부산물을 벽돌로 만드는 방안을 연구했는데요. 용설란의 재배 지역에 따라 부산물의 특성이 달라졌단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이는 곧 벽돌의 안전성과도 이어졌는데요.
최근에야 벽돌의 안전성 및 생산에 문제가 없는 최적의 용설란 재배 지역을 찾았다고 카르도주 CSO는 설명했습니다.
아스트랄테킬라 1병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만들 수 있는 벽돌 개수는 약 2개. ‘어도비 브릭 프로젝트(Adobe Brick Project)’라 불린 이 사업은 하루 최대 약 300개의 벽돌을 만들 수 있습니다.
회사 측은 올해 하반기에 일부 지방자치단체에 어도비 벽돌을 신규 건축자재로 제공할 계획임을 밝혔습니다.
또 주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사회를 위해 멕시코 해비타트(Habitat for Humanity Mexico)와 협력 중이라고 회사 측은 밝혔습니다.
한편, 대표적인 테킬라 브랜드인 호세쿠엘보(Jose Cuervo)도 부산물을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입니다. 호세쿠엘보의 경우 부산물을 활용해 플라스틱, 종이, 연료 등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고 있는데요.
호세쿠엘보는 2019년 테킬라 부산물로 만든 빨대를 개발한 바 있습니다. 이 빨대는 호세쿠엘보의 의뢰를 받은 생명공학 기업 바이오솔루션스멕시코(BioSolutions Mexico)와 플라스틱 생산 업체 펜카(PENKA)의 연구팀이 합작해 개발했습니다.
기존 플라스틱 빨대와 비슷한 질감이나, 매립지 환경에 따라 최대 5년 이내에 미생물에 의해 완전히 생분해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바이오솔루션스멕시코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아나 라보르드는 “테킬라 부산물인 용설란 섬유는 플라스틱의 지속가능한 대안을 만들기 위한 이상적인 물질”이라며 “기존 빨대와 비교해 화석연료는 물론 물소비량까지 줄여줬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이 빨대는 멕시코와 미국 그리고 호주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앞서 호세쿠엘보는 2016년 미국 자동차 기업 포드와 협력해 테킬라 부산물을 활용한 바이오플라스틱 부품 공동 개발에 나선 바 있습니다. 다만, 부산물 함유량은 20%에 그쳤습니다.
이밖에도 테킬라 부산물을 밀가루로 바꾸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2019년 당시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UNAM) 생물학과에 재학 중이던 두 학생이 시도한 것인데요. 부산물을 곱게 갈아 밀가루처럼 만든 것. 다만, 이 시도는 연구에 그쳤을 뿐 상업적 성공으로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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