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아몬드, 귀리, 콩 등으로 만든 우유 대체품에 ‘우유(Milk)’ 표기를 허용할 방침입니다.
지난 2월 22일(현지시각) FDA는 유제품이 포함되지 않은 제품에 우유 표기를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이 담긴 지침 초안을 공개했습니다. 초안 제목은 ‘식물성 우유 대체품 표기 및 자발적 영양 주장에 대한 산업 지침’입니다.
지금까지 FDA는 아몬드우유·귀리우유·두유 등 이른바 ‘식물성 우유’에 대해 우유(Milk)라는 용어 대신 ‘식물성 우유 대체품(Plant based Milk Alternatives)’으로 지칭해왔습니다.
이는 낙농업계와 식물성 식품업계 간 ‘식물성 우유’의 표기를 놓고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왔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미국 내에서 어떻게 흘러왔고, 또 어떤 파장을 낳고 있는지 그리니엄이 살펴봤습니다.
잠깐, 이미 아몬드우유·귀리우유라고 부르는데? 🤔
우선, 현재 미국에서 법적으로는 식물성 우유 대체품은 식품명과 마케팅에 ‘우유(Milk)’란 단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는 FDA가 1973년 수립한 우유의 정체성에 대한 정의 때문입니다. 당시 FDA는 우유(Milk)의 정의를 “한 마리 이상의 건강한 젖소”에게 얻어지는 ”젖 분비물”로 한정했습니다. 미 연방 식품·의약품·화장품법(FD&C Act) 또한 이 정의를 따릅니다.
물론 현실은 다릅니다. 식물성 우유 대체품 상당수가 제품명에 우유를 표기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형마트에서는 두유(Soy Milk)나 아몬드우유(Almond Milk)라는 제품명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낙농업계나 주정부가 이러한 표기 문제로 식물성 식품기업을 고소할 때마다 번번히 패소했기 때문입니다. 식물성 대체버터 표기 소송에서 승리한 미요코스크리머리(Miyoko’s Creamery)의 사례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이에 대해 낙농업계는 정부와 FDA가 의도적으로 식물성 식품산업의 편을 들고 있다고 반발해왔습니다.
낙농계 “식물성 우유는 모조품” VS GFI “시대착오적 판단” 💥
대체우유 표기를 둘러싼 낙농업계와 식물성 업계간의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 것은 2017년입니다.
발단은 낙농업계로부터 비롯됐습니다. 당시 낙농업계는 꾸준한 로비를 통해 미국 의회가 낙농프라이드법(Dairy Pride Act)을 발의하도록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법은 식물성 유제품을 우유, 요거트, 치즈 등 유제품의 모조품·대체품으로 간주할뿐더러, 해당 제품에 유제품 용어를 쓰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에 대응해 비영리 싱크탱크 GFI(Good Food Institute)는 FDA에 식물성 유제품에 우유 등 유제품 표기를 허용해 줄 것을 청원합니다. GFI 청원서의 내용은 새로운 식품에 대해 ‘전통적’ 식품을 참조하여 이름을 사용하는 관행을 허용해 달라는 것.
즉, 식물성 유제품의 표기에 두유(Soy Milk)나 아몬드우유(Almond Milk) 등으로 표기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갈등이 불거지자 2018년 FDA는 식물성 유제품의 이름 표기에 관한 대규모의 업계 및 소비자 의견을 취합했습니다. 질문에는 식물성 제품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우유·요거트·치즈 등의 용어가 식물성 제품 표기에 사용되는 것에 대한 의견 등이 포함됐습니다.
FDA는 이를 반영해 업계를 위한 지침을 마련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FDA는 1만 3,000건 이상의 답변을 받았다면서도, 2019년 의견 수렴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지침이 나오진 않았는데요.
5년만에 응답한 FDA, 표기 조건부 허용…“새로운 규제”란 반발도 🏷️
그러던 지난달 22일, FDA는 식물성 우유의 표기에 대한 업계 권장 사항이 담긴 지침 초안을 배포했습니다.
FDA는 초안에서 꾸준히 확대 중인 대체음료 시장의 현황을 반영하고, 소비자들에게 올바른 영양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이번 지침 초안이 작성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초안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앞으로 식물성 우유 대체품 제조업체는 아몬드, 호두 등의 견과류와 콩, 씨앗, 곡물 등으로 만들어진 식물성 우유 대체품에 우유(Milk)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두유(Soy Milk)나 아몬드우유(Almond Milk)처럼 식물성 재료명과 함께 표기해야 합니다.
둘째, 식물성 우유 대체품에는 우유와 비교해 자발적 영양성분 표기가 추가되야 합니다.
식물성 우유 대체품의 칼슘·마그네슘·비타민D의 영양 성분이 우유와 비교해 부족한 성분이 있다면 이를 설명하는 문구가 포함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우유보다 적은 양의 칼슘 함유’ 같은 문구가 제품 포장재에 표기될 수 있습니다.
이에 식물성 식품업계는 식물성 유제품 산업에 불이익을 주는 새로운 규제 장애물을 부과하는 조치라고 비판했습니다.
FDA, 오는 4월까지 의견 수렴…“식물성 우유의 향방은?” 🥛
이번에 발표된 지침 초안은 오는 4월 24일까지 의견수렴을 거칠 예정입니다.
FDA는 이번 초안이 ‘지침(Guidance)’이기 때문에 법적 효력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번 규정은 식물성 대체 유제품 중에서도 ‘우유 대체품’에만 적용됩니다.
그럼에도 미국 낙농업계에서는 이번 초안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미국 전국우유생산자연합(NMPF)은 성명서에서 FDA가 “유제품 용어의 불법 사용”을 허용하도록 결정해 FDA 자체의 정체성 기준을 위반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이어 유제품 용어 사용을 명확히 하기 위해 낙농프라이드법 도입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지난해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언론 보도에서 식물성 대체육·대체우유 등의 표시 규정 마련에 착수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현재 한국 ‘식품위생법 제 14조 식품공전’에 따르면, 식물성 우유 대체품을 우유라고 표기할 수 없습니다. 해당 법에서 우유류를 “원유를 살균 또는 멸균처리 한 것(원유의 유지방분을 부분 제거한 것 포함)이거나 유지방 성분을 조정한 것 또는 유가공품으로 원유성분과 유사하게 환원한 것”이라 정의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FDA가 전 세계 식품산업계의 표준을 선도하는만큼, 이번 초안이 식약처의 표시 규정 마련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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