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재생에너지 확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재생에너지 시설이 관광지나 유적지를 침범해 갈등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설비가 지역 풍광과 관광자원을 훼손할 것이란 우려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는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의회와 유적지 보존을 이유로 반대하는 문화부가 기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에 재생에너지 발전 설치를 막지 못하도록 문화부의 권한을 일부 제한하는 법도 제정됐습니다.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없을까요? 최근 이탈리아의 한 유적지에서는 재생에너지와 관광산업을 모두 잡을 수 있는 해결책이 소개됐습니다. 수천 년 전 로마인들이 만든 ‘테라코타(Terracotta)’ 기와와 똑 닮았지만, 전기를 만들 수 있는 태양광 패널인데요.
지난 1월 10일(현지시각), 이탈리아 폼페이고고학공원은 20년간의 복원 작업을 마친 ‘베티의 집’을 공개했습니다. 기원전 2세기에 세워진 이 유적지는 넓은 정원과 조각품, 벽들을 가득 채운 프레스코화가 특징입니다.
‘베티의 집’ 유적지가 더욱 특별한 까닭은 건물 지붕에 있습니다.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테라코타 기와와 똑같이 생겼지만, 이 지붕은 사실 태양광 발전이 가능한 패널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유적지에 사용된 태양광 패널은 이탈리아 현지 에너지기업 디아쿠아(Dyaqua)가 개발했습니다.
‘인비저블 솔라 루프타일(Invisible Solar Rooftile)’이란 이름이 붙었는데요. 이 패널은 길이 45cm, 너비 17cm의 기왓장 형태입니다.
일반적으로 태양광 패널은 전기를 생성하는 광전지(Cell) 모듈과 광전지 모듈을 보호하는 시트(덮개)로 구성됩니다. 빛을 최대한 흡수할 수 있도록 전지 모듈은 검은색, 시트는 투명 재질로 만들어집니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태양광 패널은 검은색을 띱니다.
문제는 까만색의 태양광 패널이 주변 경관을 해친다는 것. 이탈리아 대부분의 유적지는 건물 외관을 보존하도록 요구하는 법률로 인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이에 디아쿠아(Dyaqua)는 2009년부터 유적지의 건축양식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태양광 패널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디아쿠아는 태양광 패널 중에서도 시트에 주목했습니다. 7년간의 개발 끝에 테라코타의 재질을 모방한 플라스틱 소재를 개발했습니다. 이 소재의 표면은 눈으로 보기엔 불투명합니다. 허나, 태양 광선에는 반투명 태양광을 투과할 수 있단 특징이 있는데요. 덕분에 광전지 모듈의 검은색을 가리는 동시에 기존 유적지 지붕의 경관과도 잘 어우러집니다.
테라코타는 석재, 콘크리트, 목재 등의 표면 질감을 구현하는 소재도 개발했습니다. 해당 태양광 패널이 건물 지붕뿐만 아니라 건물 외벽이나 담과 같은 구조물에도 사용될 수 있다고 디아쿠아는 설명했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설치하는 위치가 지붕이나 벽 등 태양광이 잘 들지 않는 곳이다 보니 전력 생산이 낮다는 것인데요.
발전 최적 위치에 설치되는 기존 태양광 시설과 비교하면 디아쿠아의 ‘인비저블 솔라 루프타일’은 면적당 25%의 전력만 생산이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설치하지 않는 장소에 사용될 수 있단 점에서 디아쿠아의 태양광 패널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2015년 이탈리아 문화부는 디아쿠아의 태양광 패널을 유적지 내 에너지 효율성 개선을 위한 해결책으로 언급한 바 있습니다.
폼페이고고학공원은 무슨 이유 때문에 유적지에 태양광 패널을 사용했을까요?
사실 처음부터 이 유적지에 태양광 패널 기와가 사용될 예정은 아니었습니다. 이 곳은 폼페이의 다른 유적지들과 마찬가지로 베수비오 화산재에 묻혀 보존됐습니다. 지난 20년 동안은 폐쇄됐고, 2016년부터 복원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복원 프로젝트는 2018년을 기점으로 전환의 계기를 맞게 됩니다. 안전성과 지속가능성을 개선하기 위한 ‘스마트@폼페이 프로젝트(Smart@Pompeii Project)’의 일환으로 폼페이고고학공원이 디아쿠아와 파트너십을 맺은 것인데요.
유적지 내 지속가능한 전력 공급이 중요했던 주된 이유는 조명이었습니다. 폼페이고고학공원 관장인 가브리엘 주트리겔은 “폼페이에는 광범위한 조명 시스템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는데요.
그는 디아쿠아의 태양광 패널 기와 덕분에 유적지의 풍경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최대 수백만 유로의 에너지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도 덧붙였습니다.
주트리겔 관장은 아울러 이번 프로젝트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전 세계에 문화유산이 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관리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디아쿠아의 기술은 유럽연합(EU)의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인 ‘포시티프(POCITYF·Positive Energy CITY Transformation Framework)’를 통해 확산될 예정입니다. 포시티프는 도시의 지속가능성과 문화유산의 가치 향상을 결합하는 프로젝트입니다.
EU는 향후 몇 달 이내에 이탈리아 로마의 현대미술관 막시(Maxxi), 고딕 건축양식으로 유명한 포르투갈 에보라시 내 공공건물 등에서 디아쿠아의 태양광 패널이 사용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