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판 IRA’…EU ‘핵심원자재법(CRMA)’ 입법 추진에 산업계 긴장, 어떤 법이길래?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이어 유럽연합(EU)이 핵심원자재법(CRMA·Critical Raw Materials Act)을 입법 추진한다는 소식에 우리나라 산업계가 긴장하고 있습니다.

EU는 내년 1분기 안에 CRMA 초안을 만들 방침입니다. EU 집행위원회는 법안 초안 마련에 앞서 지난달 25일(현지시각)까지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의견수렴 마지막날 유럽 내 380곳 이상의 한국 기업을 대표하는 유럽한국기업연합회(KBA 유럽)와 한국무역협회(KITA) 브뤼셀지부는 공동명의로 EU 집행위에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KBA유럽과 무역협회는 해당 의견서에서 “(우리는) 자국 기업을 유리하도록 하는(favoring) 차별적인 법과 규제를 도입한 일부 국가에 의해 촉발된 보호무역주의 추세에 우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는데요.

의견서에는 “CRMA는 최소한의 행정적 부담과 과도하지 않은 요구로 EU와 비(非) EU 기업 모두가 지나치게 영향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두 기관은 또 CRMA 도입으로 인해 EU의 배터리규제 등 이미 현존하는 규제와 중복을 피하는 한편 규제의 일관성을 유지해달라고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CRMA의 구체적인 윤곽이 나오지 않았으나, 우리 기업과 정부 모두 앞다퉈 이에 대응하는 전략을 추진 중인 상황입니다.

도대체 CRMA가 무엇이기 때문인지, 그리니엄이 한번 정리했습니다.

 

▲ 2020년 9월 티에리 브렌튼 EU 내부시장담당 집행위원이 유럽에 필요한 핵심원자재(CRM) 목록 30여개를 발표하고 있다. ©Xavier Lejeune

2차 전지·재생에너지 설비 제작 필요한 광물도 EU ‘핵심원자재’로 지정돼 💨

EU 행정부 기능을 수행하는 집행위는 일찍이 유럽 산업에 필요한 여러 원료를 ‘핵심원자재(CRM·Critical Raw Materials)’로 지정해 왔습니다.

EU 집행위는 2011년 14개 광물을 첫 CRM 목록에 넣어 발표했습니다. 이후 원자재 가격의 중요성과 공급 상태를 고려해 3년 주기로 목록을 갱신하는데요. 2022년까지 총 4차례의 갱신이 이뤄졌고, 현재 등록된 원자재는 30여개에 이릅니다.

EU 집행위는 크게 3가지 기준에 따라 CRM 목록을 갱신합니다.

  • 1️⃣ 산업연관성(Link to industry) 🏭: 일반 제조업에서 핵심적으로 쓰이는 원료를 뜻합니다.
  • 2️⃣ 현대기술(Modern technology) 📲: 스마트폰 등 전자·자동화 산업에 주로 사용되는 희토류가 포함됩니다.
  • 3️⃣ 환경(Environment) 🌅: 전기자동차 배터리·태양광패널·풍력발전기 등 2차 전지나 재생에너지 설비와 관련된 광물입니다.

 

▲ 주요 광물이 재생에너지, 전자제품, 국방안보 및 우주기술 등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주는 인포그래픽. ©EC

EU 집행위 “핵심광물 중국 의존도 너무 높아”…CRMA 필요성 대두돼 🌍

즉,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한국의 주요 EU 수출품에 들어가는 원료가 언제든 CRM에 포함될 수 있단 뜻입니다. 그간 EU 집행위는 CRM을 규정하고 공급망 위험도(리스크)를 분석하는 연구만 수행했을뿐, 관련 규제를 도입하려고 하지 않았는데요.

상황이 반전된 것은 올해 9월입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9월 연설에서 “희토류와 리튬 등의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고 우려했습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2030년까지 핵심원자재 수요가 500%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CRMA 추진을 핵심 정책과제로 제시했습니다.

 

▲ 2020년 기준 EU의 핵심광물 수입 국가별 현황. EU는 핵심광물 상당수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EC

실제로 중국은 세계 희토류 공급의 3분의 2를 차지합니다. EU 집행위에 따르면, 유럽은 희토류의 98%를 중국에서 수입하는데요. 붕산염(Borate), 백금(Platinum) 같은 핵심원자재 또한 튀르키예(터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각각 98%, 71%를 의존하는 상황입니다.

EU는 수입원자재 의존도를 줄이고 자원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2020년 유럽원자재동맹(ERMA)’을 발족했습니다. 또 2030년까지 희토류 수요의 20%를 유럽 내에서 생산하기 위해 유럽원자재기금(RRMF)을 통해 자금을 지원 중이었습니다.

CRMA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유럽 내 핵심광물 등 자원 확보에 더 힘을 쓰겠단 것입니다.

 

▲ 안나 미셸 아시마꼬불루 유럽의회 국제무역위원회 부위원장은 9일(현지시각) 유랙티브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데 “훨씬 더 공격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uropean Union 2020

리튬 수요 최대 30% 유럽에서 채굴돼야 해…“최선의 방어는 공격” ⛏️

CRMA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들어갈지는 모릅니다. 다만, 지난 9일(현지시각) EU 미디어네트워크인 유랙티브(Euractiv)는 집행위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특정 원자재의 경우 역내에서 최대 30%까지 채굴(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EU 집행위 원자재 부처 국장인 피터 핸들리는 “(역내 자급률 목표를) 10% 혹은 30%로 할지 여부는 원자재의 전체 밸류체인(가치사슬) 단계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티에리 브렌튼 EU 내부시장담당 집행위원은 “유럽 내 정제 리튬 수요의 최소 30%, 전체 희토류의 평균 20%는 반드시 유럽 내부에서 공급(채굴)돼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유럽의회 국제무역위원회 부위원장인 안나 미셸 아시마꼬불루는 유럽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데 “훨씬 더 공격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아시마꼬불루 부위원장은 이어 “이는 (IRA 법안을 통과시킨) 미국이 하고 있는 일이고, 중국이 영원히 해온 일”이라며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피력했는데요.

EU가 일본, 베트남, 캐나다 등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위반되지 않는 선에서 CRMA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아시마꼬불루 부위원장은 덧붙였습니다.

 

▲ 포스코케미칼 인조흑연 음극재 공장에서 자동화 로봇을 활용해 음극재를 제조하고 있는 모습. ©포스코케미칼

우리 정부 CRMA “예의 주시 중”…한국 기업 일부 선제 대응 중 👀

현재 EU 집행위는 내년 1분기까지 CRMA 초안을 내놓고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CRMA에 유럽산 광물 비율이 낮은 공산품에 대한 추가 관세, 보조금 철회 등의 조항이 들어갈 경우 한국 기업이 타격을 입게 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한데요.

아울러 기업들이 제품당 유럽산 재료 비율 등 각종 증명 서류를 요구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관세 장벽이 생기는 것인데요.

한국 정부는 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외교부는 EU가 추진 중인 CRMA가 한국 기업 등 무역 차별 요소가 포함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면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EU 집행위 발표 직후 경제단체 및 관련업계를 불러 두 차례 긴급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상황을 예의 주시 중입니다.

일부 기업들은 선제적으로 현 상황에 대응 중입니다.

지난 7일 포스코케미칼은 오는 2025년까지 유럽에 음극재 공장을 설립하겠단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이차전지 핵심 소재인 음극재는 양극재와 함께 포스코케미칼의 주요 제품 가운데 하나인데요. 이번 공장 설립은 CRMA 도입에 따른 현지 고객사 대응 차원이라고 회사 측은 밝혔습니다.

SK온은 이미 헝가리에서 배터리 생산 거점인 코마롬 1·2공장을 가동 중인데요. 여기에 3조 3,100억 원을 투입해 헝가리에 3공장을 지을 계획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도 폴란드에서 이미 1공장이 가동 중인 가운데 2공장 증설을 고려 중인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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