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가격 급등 사태로 ‘푸드 업사이클링’ 밀가루 대안으로 떠올라

기상이변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밀 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미국, 인도, 아르헨티나 등 주요 밀 생산국은 올 상반기 극심한 폭염과 가뭄으로 인해 생산량이 줄었는데요. 여기에 우크라이나 이후 러시아가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을 봉쇄하며 세계적인 밀가루 부족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지난 17일(현지시각) 흑해 항로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협정이 4개월 연장된 덕에 밀가루 부족 사태 등 식량위기가 당분간 잠잠해질 것이란 전망입니다. 실제로 시장에서 밀 가격은 다소 안정된 상태입니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밀 선물가격은 전쟁 초기인 3월 톤당 407 달러까지 급등했는데요. 현재는 전쟁 전 수준까지 내려왔습니다.

다만, 미국 달러 강세로 인해 주요국 식품 가격은 전년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에너지와 유통 비용 상승도 밀가루 등 식품 가격 상승에 영향을 줬는데요. 우리나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밀가루 가격은 전년대비 36.9% 상승했습니다.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는 밀가루 대체재를 찾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는 상황.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은 없는 걸까요?

 

▲ 오렌지 껍질, 토마토 씨, 당근 껍질 등을 원료로 만든 밀가루의 모습. ©Packtin

오렌지 껍질·당근 껍질로 만든 밀가루? 🍊

밀가루 대체재 개발을 위해 푸드 업사이클링(Food Upcycling)을 더 활성화해야 한단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식품 생산 과정 중 나온 부산물이나 상품 가치가 떨어진 식재료를 재가공해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푸드 업사이클링. 이미 양조장에서 나온 맥주박(맥주찌꺼기)을 활용해 밀가루 대체재를 만드는 경우는 많은데요. 이제 업계는 오렌지 껍질, 당근 껍질, 토마토 씨앗 등으로 밀가루 대체재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애그테크(AgTech) 스타트업 펙틴(Packtin)이 관련 연구를 선도 중입니다.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소도시 ‘레지오 에밀리아(Reggio Emilia)’에 위치한 펙틴. 2017년 설립된 이 스타트업은 식품 및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인다는 목표 아래 식용포장재 등을 연구 중인데요. 최근에는 식품폐기물을 활용한 밀가루 대체재 생산에도 성공했습니다.

 

▲ 분쇄한 오렌지 껍질을 건조시키는 모습. ©Packtin

펙틴은 도시 내 식당 및 인근 농가로부터 매달 12톤 정도의 폐기물을 공급받습니다. 오렌지 껍질, 토마토 씨앗, 파인애플 껍질 등 폐기물의 종류도 다양한데요. 펙틴은 이를 30~40℃에서 건조시킵니다. 24시간 동안 껍질 등 부산물에 남아있는 물 분자가 완전히 제거되는데요. 이후 건조된 부산물을 잘게 갈아 가루로 만듭니다.

건조 공정에서 폐기물 속에 있는 영양분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이에 펙틴은 자체적인 건조 기술을 개발습니다. 해당 기술 덕에 과일 껍질 등 폐기물 속에 남은 영양분과 맛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는데요. 동결건조 등 기존 기술과 비교해 유지비가 저렴하다고 회사 측은 주장했습니다.

 

▲ (왼)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오렌지 껍질, 당근 껍질, 파인애플 껍질, 당근 껍질로 만든 순환 밀가루의 모습 (오)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식품박람회 ‘SIAL 2022’에 소개된 순환 밀가루. ©Packtin

각양각색 순환 밀가루 “프랑스 파리 식품박람회를 흔들다” 🍪

펙틴은 오는 2025년까지 연간 1만 5,000톤가량의 식품폐기물을 회수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회사는 궁극적으로 밀 등 해외 의존도가 높은 수입작물을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요. 그러면서 자사의 공정이 순환적임을 강조했습니다.

밀가루 대체제를 만드는 전 공정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할뿐더러, 폐기물 건조 공정에서 나온 물도 재활용하기 때문입니다. 탄소발자국을 고려해 반경 150km 이내에서 나온 폐기물만 수거하는데요. 이 때문에 펙틴은 해당 제품에 ‘순환 밀가루(Circular flour)’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원래 밀가루는 밀의 껍질과 배아를 제외한 배유, 즉 하얀색인 부분만 제분하기 때문에 흰색을 띕니다. 이와 달리 순환 밀가루는 어떤 식품폐기물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각양각색의 색깔을 보여줍니다. 가령 오렌지 껍질은 연한 노란색, 파인애플 껍질은 옅은 갈색, 당근 껍질은 흡사 코코아가루와 흡사한 순환 밀가루가 나오는데요.

순환 밀가루가 음식을 만들 때 사용되는 착색제를 대신할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합니다. 실제로 펙틴은 지난 10월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국제식품박람회(SIAL 2022)’에 참여했는데요. 박람회에서 회사 측은 순환 밀가루로 기존 음식의 색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시연했습니다.

펙틴을 바라보는 식품업계의 시선은 대체로 긍정적입니다. 펙틴의 제품이 기존 밀가루보다 저렴할뿐더러, 영양과 풍미 모두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탈리아 현지 음식점과 파트너십을 맺고 여러 제빵제품을 연구 중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습니다.

펙틴은 또 식용포장재도 연구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순환 밀가루를 활용해 비닐 등 기존 플라스틱 포장을 대체하는 것인데요. 이를 통해 일회용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도 해결하고 싶다고 펙틴은 이야기했습니다.

 

▲ (왼)커피박 밀가루와 맥주박 밀가루로 만든 빵, (오)커피박 밀가루로 만든 브라우니의 모습. 그라운드업의 커피박 밀가루는 올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캐나다 식품박람회(SIAL Canada 2022)’에서 혁신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Groundup eco-ventures

캐나다서 커피박 연간 20만톤 배출…밀가루로 만들면 어떨까?” ☕

커피박(커피찌꺼기)을 활용한 밀가루도 있습니다. 캐나다 앨버타주에 위치한 푸드테크 스타트업 그라운드업 에코벤처스(GroundUp Eco-ventures·이하 그라운드업)가 개발했는데요.

커피 한 잔을 위해 들어간 원두 중 단 0.2%만 사용되고, 나머지 99.8%는 버려지는데요. 캐나다에서만 연간 20만 톤가량의 커피박이 버려지는 상황입니다. 그라운드업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숀 레깃은 카페 수십여곳에서 버려진 커피박을 수거해 업사이클링해 밀가루를 만들었는데요.

커피박이 푸드 업사이클링 산업에서 활용될 수 있는 높은 잠재력이 있다고 레깃 CEO는 강조합니다. 레깃 CEO는 커피박 1,000kg을 밀가루로 업사이클링하면 340입방미터(μg/m3)의 메탄이 방출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커피박으로 만든 밀가루는 저지방, 저설탕, 고섬유질일뿐더러, 글루텐 프리(Gluten-Free)*라 건강하다고 강조했는데요.

커피박 밀가루는 앞서 살펴본 펙틴의 순환 밀가루와 비슷한 공정을 거쳐 제작됩니다. 다만, 커피박을 건조시키는 공정에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는 단점이 있는데요. 추후 태양광, 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된 전력만을 사용하는 것을 목표한다고 그라운드업은 덧붙였습니다.

한편, 그라운드업의 커피박 밀가루는 올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캐나다 식품박람회(SIAL Canada 2022)’에서 혁신 부문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 커피박에서 기름도 뽑는다고? 🪔
그라운드업은 커피박에 높은 열을 가해 기름을 추출합니다. 커피박은 500℃ 이상의 높은 열을 가하면 커피박을 이루는 성분들이 작은 기체상의 분자로 쪼개지며 열분해가스가 생성되는데요. 이를 응축하면 액체상의 바이오 원유를 얻을 수 있는 것. 레깃 CEO가 20여년간 석유시추산업에서 얻은 연구 이론이 총동원된 것인데요. 그라운드업은 건조된 커피박을 밀가루 대체제로 만들기 전에 기름을 추출한다고 밝혔습니다.

*글루텐 프리(Gluten-Free): 불용성 단백질의 일종인 글루텐이 없는 것을 뜻한다. 해당 인증을 받은 제품은 글루텐에 민감한 사람들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

 

▲ 바나나는 쌀, 밀, 옥수수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이 소비되는 작물이다. 바나나 껍질로 만든 밀가루도 최근 식품업계에 주목을 받고 있다. ©Freepik

바나나 껍질 밀가루, 식품 영양가 높일 수 있어…소비자 수용성 높여야 해!” 🍌

커피박과 함께 바나나 껍질을 활용한 밀가루에도 식품업계의 관심이 늘고 있습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바나나는 쌀·밀·옥수수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이 소비되는 작물입니다. 해외 통계 사이트 스태티스타(Statista)는 바나나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소비되는 과일이라고 밝혔는데요. 소비가 많은 만큼, 상당한 양의 바나나 껍질이 버려지는 상황.

이에 과학자들은 바나나 껍질의 활용방안을 연구 중인데요. 지난 8월 미국 화학학회(ACS)가 발행하는 ‘식품 과학·기술’ 저널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바나나 껍질은 섬유질·마그네슘·칼륨 등이 풍부하고 밀가루로 활용할 가치도 높단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연구진은 바나나 껍질로 만든 가루를 첨가물로 활용하면 쿠키와 같은 식품의 영양가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밀가루 대체재를 늘리기 위해선 영양학적 연구가 더 진행돼야 한단 목소리도 있는데요. 소비자 수용성이 낮은 만큼 이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 바나나 껍질로 만든 베이컨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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