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기후대응 논의를 위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지난 6일(현지시각) 개막했습니다.
오는 18일까지 이어질 총회는 약 200개국의 대표단과 기후·환경 관련 시민단체(NGO), 기업인, 언론인 등 4만여 명이 참여한다고 주최국인 이집트 정부는 예상했습니다.
COP27 개막날인 6일, 기후변화로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를 본 개발도상국에게 선진국이 재원을 지원하는 문제가 정식 의제로 채택됐습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이 작성한 ‘의제 채택’ 문건에 의하면, ‘손실과 피해 해결에 중점을 두는 것을 포함해 기후변화의 악영향과 관련된 손실과 피해에 대응하는 재원 조달에 관한 사항’이 공식 의제로 채택된 것.
이번 COP는 6년 만에 아프리카에서 열린단 점에서 개도국의 기후보상 요구에 더욱 힘이 실릴 전망입니다. 올해는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전 세계에서 빈번했기 때문인데요. 지난 8월 파키스탄은 역대급 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습니다. 서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도 지난 10월 홍수로 인해 300만 명이 넘는 수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이 때문에 뉴욕타임스(NYT),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은 COP27에서 ‘손실과 피해’를 집중해서 봐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손실과 피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그리니엄이 정리했습니다.
COP27 주요 의제, ‘손실과 피해’란? 🏚️
파리협정에서는 지구 온도 상승폭을 1.5℃ 이내로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1.5℃는 기후재난을 막을 수 있는 마지노선인데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에 따르면,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이미 1.1℃ 상승한 상태입니다.
이로 인한 극단적 기상현상과 함께 해수면 상승, 해양산성화, 빙하 후퇴, 염류화, 토지 및 산림 저하, 생물다양성 손실 등의 피해가 나타나고 있는데요.
UNFCCC는 이처럼 “자연적 기후변동성을 넘어 자연과 사람에게 광범위한 악영향이 초래한” 손실과 피해를 일컬어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라고 부릅니다.
UNFCCC 체결 이전 언급된 ‘손실과 피해’…선진국 반대로 논의 계속 무산돼 🏳️
손실과 피해는 피해 결과를 정의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COP에서 이를 공식 의제로 논한단 것은 “그 손실과 피해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누구이며, 배상은 얼마나 어떻게 지불되야 하는가”의 논의가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손실과 피해가 공식적으로 나온 것은 1991년입니다.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가 주변 군소도서국들과 함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했는데요. 당시 바누아투는 선진국들에게 탄소배출로 인한 영구적 손실과 피해를 보상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다만, 1992년 유엔 환경개발회의에서 UNFCCC가 체결될 당시 해당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손실과 피해는 2007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COP13(13차 당사국총회)에서야 공식적으로 언급됐습니다. 당시 UNFCCC 문서에서 처음으로 손실과 피해가 언급됐는데요.
개도국의 끈질긴 문제 제기 끝에 2013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COP19(19차 당사국총회)에서 ‘손실 및 피해’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합의체계가 구축됩니다. 이른바 ‘손실과 피해에 관한 바르샤바 국제 메커니즘(WIM)’입니다.
WIM은 이해관계자 간의 대화 일관성·조정·시너지를 강화하고 관련 조치와 지원을 제공하는 기능을 맡았는데요. 문제는 재원조달에 대해서는 어떤 결정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이후로도 선진국들은 ‘손실과 피해’의 보상을 위한 새로운 자금 조달 체계 구축을 거부해왔습니다. 특정 국가의 책임을 언급하며 보상을 요구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
2015년 COP21의 파리협정문에서도 손실과 피해 문제가 책무나 보상에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삽입하는데 합의함으로써 제8조 손실과 피해 문제가 포함될 수 있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 비용, 얼마나 심각하길래? 🤔
30여년이 넘도록 이 문제가 해소되지 못한 이유.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의 규모를 측정하기 어려울뿐더러, 그 비용 또한 천문학적이라 추산되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 아닐 막칸디아가 2018년 내놓은 연구에 따르면, 2030년까지 개도국의 손실과 피해로 인한 비용은 최소 2,900억 달러(약 412조원)에서 5,800억 달러(약 824조원)로 추산됩니다. 또 2050년에는 연간 1조 8,000억 달러(약 2,557조원)에 달하는데요.
지난 20년 동안 개도국이 기후변화로 입은 피해가 이미 5,000억 달러를 넘었단 분석도 나왔습니다. 비영리 기관 GCSE의 이사이자 환경과학 전문가인 카림 아메드 박사의 분석인데요. 아메드 박사는 1998년부터 2017년까지, 저소득(LIC) 및 하위 중소득 국가(LMIC) 20곳의 누적 ‘손실 및 피해’ 추정치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20년 동안 기상이변으로 인해 5,930억 달러(약 837조원)의 피해가 발생했고 사망자는 29만 3,000명으로 추산됐습니다.
아메드 박사는 이 추정치가 매우 보수적인 수치라고 설명했는데요. 해당 분석에는 손실과 피해로 인한 건강문제, 식량공급 불안정, 일자리 손실, 교육 박탈, 이주 등으로 인한 장기적인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잠깐, COP26에서 이미 ‘기후재원’ 약속하지 않았어? 💰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비용 논의란 점에서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26차 당사국총회)에서 논의된 ‘기후재원이행계획’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기후재원(Climate Finance)이란 선진국이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을 지고 공공 및 민간에서 재원을 마련하여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적응 조치를 지원하는 자본을 뜻합니다. 기후재원은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고(감축) 기후 피해에 대한 선제적 조치(적응)을 통해 피해 최소화에 초점을 맞추는데요. 이에 비해 ‘손실과 피해’ 논의는 기후변화로 이미 피해를 겪은 사람들을 돕기 위한 재원 마련이 중점이란 차이가 있습니다.
30년 넘게 해묵은 숙제 ‘손실과 피해’…COP27에선 달라질 수 있을까? 🌐
2019년 COP25(15차 당사국총회)에서 설립된 ‘손실과 피해에 관한 산티아고 네트워크(SNLD)’에 따라 지난해 COP26에서도 손실과 피해 지원이 논의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선진국의 반대로 손실과 피해에 대한 기술적 지원만 논의됐을 뿐, 재원 마련 등 현실적 측면은 논의되지 못했습니다.
COP26 기간 중 77개 개도국그룹(G77)과 중국이 협력해 ‘손실과 피해 금융시설(Loss and Damage Finance Facility)’ 설립을 제안했으나 관철되지 못했습니다.
다만, 향후 3년간(2022~2024년) 별도의 프레임워크에서 관련논의를 이어나간다는 ‘글래스고 합의(Glasgow Dialogue)’ 도출에 성공했습니다.
COP27 주최국인 이집트는 그간 ‘손실과 피해’가 핵심 의제가 될 수 있도록 온 역량을 쏟았습니다. 와엘 아불마그드 이집트 COP27 특사는 “기후재앙으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경험한 나라들에 대해 어떤 보상을 할지를 총회의 우선적 의제로 설정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이에 개도국들 또한 COP27에서 ‘손실과 피해 금융시설’ 설립을 다시 요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일부 선진국 또한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9월, 덴마크는 기후취약 지역에 손실과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1억 덴마크 크라운(약 189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COP26 개최 당시 영국 스코틀랜드가 손실과 피해 보상에 100만 파운드(약 16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이후 처음입니다.
미국도 손실과 피해 보상 논의에 참여할 계획입니다.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는 COP27에서 열릴 손실과 피해 보상 논의에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 경제전문매체 CNBC는 케리 특사의 발언이 “사상 처음으로 미국이 유엔 기후회의(COP)에서 배상을 논의할 용의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지난 9월 미국이 “기후비상사태로 인한 손실과 피해를 보상할 준비가 되지 않다”는 발언과 비교해 급선회한 태도란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