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와인 시장이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올해 국내 와인 수입량은 지난해에 이어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0월 관세청 수출입통계 따르면, 지난 1~8월 국내 와인 수입액은 전년 동기보다 6%가량 늘어난 3억 9,320만 달러(약 5,592억원)를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추석과 성탄절 등 와인 선물 수요가 많은 9~12월 수입액을 더하면 지난해 연간 수입액(약 5억 6,000만 달러)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입니다.
문제는 와인 소비량 증가에 따라 배출된 와인병에 대한 재활용·재사용 대책이 없단 것입니다. 와인병은 특유의 짙은 색깔, 제각기 다른 병 모양으로 인해 재활용이 어렵습니다.
재사용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초록색 소주병, 갈색 맥주병 등 주류업계는 협약을 통해 병 규격과 재질을 통일해 사용합니다. 업체와 상관없이 수거된 공병(빈병)은 세척한 뒤 라벨과 병뚜껑만 바뀌어 재사용됩니다. 소주·맥주병 공병 회수율은 2017년대부터 평균 95% 이상을 유지 중인데요.
우리나라는 와인을 주로 수입하기 때문에 재사용 시스템 구축이 어려운 현실입니다. 생산업체들과의 사전조율도 필요할뿐더러, 애당초 와인병 수거 담당 업체도 없습니다. 공병 회수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도 낮습니다. 현재는 수입주류업체가 낸 환경개선부담금을 이용해 와인병을 폐기하는 상황.
해외에서는 현재 와인병을 재사용·재활용 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없는지 그리니엄이 알아봤습니다.
와인병 재사용 모델, 생각만큼 쉽지 않아…’병 회수에 어려움 겪어’ 🍾
해외에는 리필스테이션처럼 와인을 리필하는 모델이 있습니다. 소비자가 직접 빈 병을 가져오면 해당 병에 와인을 담아주는 식입니다.
일전에 그리니엄이 소개한 미국의 고담프로젝트(Gotham Project)와 굿굿즈(Good Goods)란 스타트업은 와인병 재사용 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려고 했습니다. 고담프로젝트와 굿굿즈는 각각 음식점과 소비자를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했는데요.
이들 기업은 모두 와인병을 회수해 세척 후 와인을 리필해 재판매했습니다. 여러 종류의 와인을 오크통 형태로 구매한 덕에 리필이 가능했는데요. 사업 시작 당시 와인병 재사용 사업에 대한 미 소비자들의 관심은 뜨거웠습니다. 두 회사 모두 지난해 말 미 전역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근 이들 기업은 수익 창출을 하지 못해 와인병 재사용 사업을 포기했습니다. 2010년 고담프로젝트를 공동설립한 브루스 슈나이더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지속가능성과 탄소발자국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덕에 소비자들이 참여할 것으로 생각했다”며 “그러나 1년간 사업을 유지했지만 거의 수익을 보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굿굿즈는 소비자가 와인병에 부착된 QR코드를 스캔하면, 수거업체를 보내 와인병을 직접 수거했는데요. 와인병 회수에 어려움을 겪은 후 해당 사업을 포기했습니다.
두 기업 모두 와인병 회수를 위해 할인, 보증금 등 소비자 인센티브를 시도했으나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없었습니다.
굿굿즈와 협력한 주류수입업체인 커뮤널브랜즈(Communal Brands)의 멜리사 사운더스 최고경영자(CEO)는 “소비자들의 대규모 행동 변화가 일어나 필요가 있다”며 “우리는 아직 그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는데요.
사운더스 CEO는 와인병을 회수해 보관하는 시스템이 소비자와 기업을 위해 더 쉽게 만들질 필요성을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순환경제 전환을 위해선 물류 부문이 해결돼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리와인 프로젝트, 이론상 성공…’높은 운송·세척비로 인해 재사용이 더 비싸’ 🤔
유럽의 경우 미국보다 와인병 재사용이 비교적 용이합니다.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유럽 주요 와인 생산지에서는 몇년 전부터 와인병 재사용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리와인(reWINE) 프로젝트입니다. 2019년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에서 시범 운영된 프로젝트인데요. 20개월간 와인 약 15만 병이 판매됐고, 이중 약 8만 병이 재사용됐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완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거한 와인병을 세척 시설까지 운반하기 위해서 최대 500km를 운송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높은 운송 및 세척 비용으로 인해 재사용 와인병을 사용하는 것이 더 비싸단 문제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와인을 유리병이 아닌 다른 용기에 담아야 한단 주장도 있습니다. 애초에 와인병 등 유리병을 만들기 위해선 엄청난 열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는 곧 온실가스 배출량(GHG)이 많단 뜻인데요.
캘리포니아 와인연구소(California Wine Institure)가 2020년 내놓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리병은 와인업계 전체 탄소발자국의 29%를 차지합니다. 또 병을 운송하는 과정에서 탄소발자국이 13% 정도 추가됩니다.
“유리병 고집 필요 없어”vs”와인 숙성 위해 유리병 필수” ⚖️
최근 와인업계에서 활발히 논의 중인 것은 와인을 ‘백 인 박스(Bag-in-Box)’에 담는 것입니다. 이는 주스나 와인 같은 대용량 액상제품을 유리나 플라스틱병이 아닌 진공백에 담고 이를 종이상자에 포장하는 형식을 말합니다.
상자 끝에 레버가 설치돼 필요한 만큼의 양을 먹을 수 있는데요. 유리병 보다 낮은 탄소발자국 및 대용량으로 담을 수 있단 이점이 있습니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와인 포장 형태이기도 합니다.
사운더스 CEO는 한 와인 전문 팟캐스트에 출연해 유명 와인 일부를 ‘백 인 박스’에 담아 판매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상자 형태로 포장된 와인은 개봉 후에도 약 4~6주 동안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다고 사운더스 CEO는 설명했습니다.
반면, 와인을 제대로 숙성시키기 위해선 유리병이 계속 필요하단 주장도 있습니다.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양조장 ‘샤또 뒤 가루뻬(Château du Galoupet)’의 전무이사인 제시카 줄미는 재활용 유리를 활용해 와인병을 만들었습니다. 줄미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와인은 병에서 숙성되도록 설계됐다”며 “추후에도 계속 유리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주요 와인 생산업자들이 알루미늄 캔, 종이상자 등이 와인 용기에 부적합하단 의견을 내비쳤다고 FT는 전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유리병 부족 사태’…대체용기 물색 본격화 🔍
사실 올해 2월 러시아발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와인업계는 유리병이 아닌 다른 용기를 본격적으로 물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리병 주요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전쟁으로 인해 공장 가동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천연가스 가격 등이 급등해 공장 문을 닫은 경우도 많은데요.
주요 와인 생산국 모두 유리병 부족 사태로 인해 공급에 차질을 빚었습니다. 특히, 와인 10개 중 4개의 유리병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프랑스가 직격탄을 맞았는데요. 프랑스 와인 가격은 올해 상반기에만 최대 40% 가량 상승했습니다.
미국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 현지매체인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내 유리병 가격은 2020년 9.67달러에서 2022년 24.69달러로 치솟았습니다. 이 때문에 현지 양조장들은 음식점·대형마트에서 버린 와인병을 재사용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영국 와인업체는 유리병 부족 사태로 인해 아예 재활용 플라스틱병에 와인을 담아 판매 중입니다. 재활용 플라스틱병에 와인을 판매 중인 영국 주류업체 아콜레이드(Accolade)는 재활용 플라스틱병이 “무게와 공간을 모두 절약해 매우 유용하다”고 소개합니다.
다만, 기존 유리병이 익숙한 소비자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다고 회사 측은 덧붙였는데요. 와인을 유리병에서 다른 용기로 바꾸기 위해선 “무엇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회사 측은 강조했습니다.
+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통과된 1013법안?! 📝
지난 9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주 상원의회를 통과한 1013법안에 서명했습니다. 이 법안은 맥주 캔과 와인병에 보증금(5~10센트)을 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데요. 주정부는 캘리포니아에서만 와인병 등 유리병이 13억 개 이상 버려진단 점을 강조하며 “법안이 폐기물 감소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안은 오는 2024년 1월 1일에 발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