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가 빈번해지면서 안정적인 식량 공급처로 버티컬 팜(Vertical Farm)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버티컬 팜은 맞춤형 재배와 정밀 관리를 통해 식량 생산량을 증대할 수 있는데요. 뿐만 아니라, 도시 근처에 위치해 물류비와 탄소발자국도 줄일 수 있습니다.
다만, 버티컬 팜 상용화를 위해서 여러 걸림돌을 해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버티컬 팜 운영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문제인데요. 실외농업과 달리 버티컬 팜은 LED조명이 필수인 상황. 화석연료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할 경우 버티컬 팜의 탄소배출량이 많아진단 지적도 나오는데요.
그런데 최근 탄소네거티브 생산 프로세스를 구축한 버티컬 팜이 소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아이슬란드에 자리한 바이오테크 스타트업 이야기인데요. 어떤 곳인지 그리니엄이 살펴봤습니다.
해조류 버티컬 팜? 대체 단백질 생산하는 VAXA! 🧪
박사테크놀로지스(Vaxa Technologies·이하 VAXA)는 2016년 설립된 바이오테크 스타트업입니다. 여기서 ‘박사(Vaxa)’는 아이슬란드어로 ‘자라다’란 뜻인데요. 이름에 걸맞게 VAXA는 버티컬 팜에서 지속가능한 먹거리를 생산합니다.
잎채소, 버섯 등을 재배하는 일반적인 버티컬 팜과 달리 VAXA의 버티컬 팜은 ‘해조류’를 키운단 점에서 독특합니다.
정확히는 해조류의 일종인 스피루리나(Spirulina)를 재배하는데요. 식물플랑크톤으로 구성된 단세포성 미세조류의 일종인 스피루리나.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 미래 식량으로 지목했을 정도로 영양분이 뛰어납니다. 이 해조류는 비타민 B1·2·3, 구리, 철분, 마그네슘 등을 함유하고 있는데요.
더욱이 스피루리나의 단백질 함유량은 기존 육류보다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스피루리나의 단백질 함유량은 약 69%. 이는 콩(39%)이나 소고기(20%)보다 높을뿐더러, 식물성 단백질 공급원과 달리 필수아미노산을 모두 함유한단 이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스피루리나는 기존 육류를 대체할 단백질원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상황. 여기에 VAXA는 스피루리나의 비타민 함량을 더욱 높이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사실 스피루리나는 햇빛에서 자라면 인간이 쉽게 소화할 수 없는 유사-B12(Pseudo-B12)가 생성됩니다. 이에 VAXA는 버티컬 팜에서 특정 파장의 빛과 분홍색 조명을 사용해 스피루리나를 재배한 것. 위 조건에서 재배한 결과, 스피루리나에 인체 흡수율이 높은 B12의 일종인 ‘메틸코발라민’이 생성된 것이 확인됐습니다.
현재 VAXA는 버티컬 팜에서 스피루리나를 재배 및 가공해 영양제, 천연 색소, 대체 단백질 등으로 판매 중입니다.
지열발전소 폐CO2·에너지 재활용해 ‘탄소네거티브’ 성공해! ⚡
최근 VAXA의 스피루리나 재배 과정이 ‘탄소네거티브,’ 즉 탄소를 흡수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난 9월 7일(현지시각)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글로벌식품안보연구센터가 세계적인 의학·과학 출판사 스프링거(Springer)의 해양생명공학(Marine Biotechnology)저널에 발표한 연구 결과인데요.
연구에 따르면, VAXA 버티컬 팜은 제품 전과정평가(LCA)에서 탄소발자국이 -(마이너스) 0.008CO2eq(이산화탄소환산톤)인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해당 연구는 소고기 1kg을 VAXA에서 생산한 스피루리나 1kg으로 대체할 경우, 소비자는 최대 100kg의 온실가스를 절약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VAXA가 스피루리나 재배 과정을 탄소네거티브로 만들 수 있던 비결은 ‘지리적 위치’에 있습니다. VAXA의 버티컬 팜은 아이슬란드 남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해당 지역은 세계에서 8번째로 크고, 아이슬란드에선 가장 큰 헬리셰이디 지열발전소 바로 옆입니다.
화산지대에 위치한 발전소는 지열 에너지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합니다. 지역 난방을 위해 열에너지도 공급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온수 형태의 폐열과 소량의 이산화탄소(CO2)가 배출됩니다.
VAXA는 지열발전소에서 부산물로 나온 에너지와 자원을 재활용하는 버티컬 팜 생산 공정을 개발했습니다.
VAXA의 버티컬 팜은 우선 지열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로 운영됩니다. 지열발전소에서 배출된 폐열과 온수는 해조류(스피루리나) 재배 시설 온도 조절에 사용되는데요. 소량의 CO2 또한 해조류 광합성을 돕고자 포집돼 사용됩니다.
VAXA는 인공지능(AI)을 사용해 천연비료와 광량의 균형을 맞추는 등 스피루리나 성장조건을 최적화시켰는데요. 덕분에 스피루리나는 이틀마다 질량이 두 배로 늘어납니다.
VAXA는 자사의 버티컬 팜에 순환경제 원칙이 적용됐다고 설명합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버티컬 팜 운영 및 해조류 재배 과정에서 ▲재생에너지 사용 ▲폐자원 재활용 ▲CO2 흡수 등이 이뤄지기 때문인데요.
시설 내 해조류 재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은 산소밖에 없다고 VAXA는 설명합니다. 회사 측은 해조류 1톤은 CO2 약 2톤을 흡수한단 점을 강조했는데요.
이에 VAXA 최고경영자(CEO)인 크리스틴 하플리다손은 “VAXA의 공정은 탄소네거티브(Carbon Negative)”라며 “(자사의 해조류가) 소고기 대체에 사용된다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어업과 축산업 대체하는 지속가능한 식품 생산 꿈꿔 ♻️
현재 VAXA는 연간 120톤가량의 해조류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향후 이 규모를 연간 400톤 이상으로 확장할 계획인데요.
VAXA는 해조류를 양식장이 아닌 버티컬 팜에서 재배하면 생육환경을 통제할 수 있을뿐더러, 물소비량과 토지사용량 모두 줄이는 이점을 내세웁니다.
앞서 살펴본 케임브리지대 연구에서도 VAXA의 버티컬 팜은 기존 소고기 생산과 비교해 물소비량과 토지사용량 모두 1% 미만이었습니다.
사업 초기 VAXA는 버티컬 팜에서 재배한 해조류를 가공해 양식용 배합사료로 만들었습니다. 해조류에 풍부한 오메가3를 추출한 이 사료는 양식어의 면역체계 개선을 돕고, 양식장 수확량도 높였는데요.
VAXA는 이어 지난 7월 영양제 브랜드인 ‘오를로 뉴트리션(Örlö Nutrition)’을 출시했습니다. 사람들을 위한 영양제로 사업을 확장한 것인데요. 해조류 양식을 통해 생선 유래 영양제를 대체함으로써, 영양제 한 병당 물고기 110마리를 구할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습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VAXA는 스피루리나를 가공해 영양제, 천연 색소, 대체 단백질 등으로 판매 중입니다. 스피루리나의 경우 푸른색 천연 색소와 함께 단백질이 추출되는데요.
회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천연 색소와 단백질은 현재 아이슬란드 현지 레스토랑에서 스무디 및 피자 도우(반죽) 속 재료로 일부 사용되고 있습니다. 회사 측은 자사의 스피루리나가 식물성 단백질의 영양 성분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 스피루리나를 넣고 만든 ‘블루 맥주’ 어때? 🍺
스피루리나에 함유된 파이코사이민 화합물은 특유의 파란색을 띠는데요. 소수지만 일부 맥주 기업은 스피루리나에서 이 천연 식용색소를 추출해 파란색 맥주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2021년 프랑스 루베 지역에 위치한 호피어반브루(Hoppy Urban Brew)가 만든 ‘블루 맥주(Blue Beer)’가 대표적인데요.
하플리다손 VAXA CEO 또한 아이슬란드 현지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피루리나에서 추출한 색소와 탄수화물을 이용해 “맥주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실제로 2021년 일본 맥주 기업인 에버브루(EVERBREW)는 스피루리나에 함유된 색소와 탄수화물을 얻기 위해 VAXA에 투자를 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