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이 떠난 뒤 맞이한 찰스 3세 시대, 기후환경정책 달라질까?

지난 8일(현지시각) 영국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영연방의 수장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만 96세로 스코틀랜드 밸모럴 성에서 서거했습니다. 여왕 서거 직후 세계 각국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왕 서거 직후 장남인 찰스 왕세자가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대관식은 몇 달 뒤에나 열릴 전망인데요. 찰스 3세 시대를 열면서 영국 왕실은 물론 영국 사회 곳곳에 적잖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BBC, 더가디언,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외신은 찰스 3세 시대를 맞아 ‘기후환경정책’이 달라질 수 있단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 2020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서 스웨덴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왼)를 만난 당시 찰스 왕세자(오)의 모습 ©Clarence House, 트위터

50여년 넘게 기후환경 문제 피력한 찰스 3세 국왕 👑

찰스 3세 국왕이 환경 문제에 주목한 것은 1970년대부터입니다. 1970년 찰스 3세 국왕은 아버지이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인 필립 마운트배튼 공이 프랑스 스트라스부스에서 열린 세계 환경 콘퍼런스에서 “너무 늦기 전에 오염 문제에 대해 지금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찰스 3세 국왕은 이날 아버지의 연설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회고합니다. 실제로 회담 폐막 10일 뒤 당시 찰스 왕세자는 영국 내 인구 과잉,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 등을 꼬집으며, “자동차와 비행기에서 배출되는 가스”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를 경고했습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찰스 3세 국왕은 50여년 넘게 기후환경 문제에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수년간 영국 왕실 자선 단체와 함께 기후변화 및 유기농업 문제에 막대한 후원을 진행했는데요.

 

▲ 1970년 2월 9일(현지시각) 프랑스에서 열린 환경콘퍼런스에서 필립공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당시 이를 지켜보는 관중들 사이로 젊은 찰스 3세 국왕(오) 모습이 보인다. ©The Royal Family Channel, 유튜브 캡처

지난 4월에는 애플 최고디자인책임자(CDO) 출신인 조니 아이브와 함께 ‘테라 카르타 디자인 랩(Terra Carta Design Lab)’이란 디자인 공모전을 진행했습니다. 이 공모전은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디자인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요. 여기서 테라 카르타(지구 헌장)는 찰스 3세 국왕이 주도한 지속가능한 시장 이니셔티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간 그의 행보를 두고 평가는 엇갈렸습니다. 기후변화와 환경문제에 대해 목소리 높이는 것이 영국 왕실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위협한단 비난도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 찰스 왕세자가 2004년부터 2005년까지 영국 정부 7개 부처 장관에게 로비 활동을 벌였단 사실이 영국 일간지 더가디언을 통해 보도됐다. 언론은 이 시간에 ‘검은 거미(Black Spider) 메모 사건’이란 이름을 붙였다. ©The Guardian

기후환경 문제 피력? 왕실 정치적 중립성과 대비돼 🕷️

실제로 찰스 3세 국왕은 왕세자 시절이던 2005년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에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꼬집으며 엄격한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채택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기후변화를 비롯한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 영국 정부 7개 부처 장관들에게 서한을 보내는 등 로비했단 사실이 2015년 일간 더가디언 등 영국 현지매체를 통해 보도됐는데요.

이 사건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던 영국 왕실의 행보와 대비돼 정치권 및 일부 언론으로부터 비난받았습니다. 언론은 그의 글씨 모양에 빗대어 ‘검은 거미 메모 사건’이란 이름이 붙었는데요. 당시 찰스 왕세자는 ‘간섭하는 자(meddiling prince)’란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여러 비난에도 불구하고 찰스 3세 국왕은 기후변화에 대해 목소리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2017년 당시 찰스 왕세자는 토니 주피터 등과 함께 기후변화 관련 서적(Climate Change: A Ladybird Expert Book)을 출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왕세자의 정치적 견해를 표현한 것에 대해 곳곳에서 의문을 제기했는데요.

지구온난화의 역사, 위험, 도전 그리고 해결책 모색 등을 전반적으로 다룬 이 책은 출간 즉시 영국 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기후환경문제에 목소리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는데요.

이 때문에 찰스 3세 국왕은 선왕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달리 정치적 의견도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군주가 될 것이라고 주요 외신은 전망합니다.

 

▲ 지난해 11월 1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서 기조연설 중인 찰스 3세 국왕 모습 ©Kira Worth, UNFCCC

“우리는 좋은 말을 더 좋은 행동으로 지금 바꿔내야 한다” 🌡️

영국 역사가이자 작가인 앤서니 셀던경은 찰스 3세 국왕이 기후변화 대응 활동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자신감을 얻었다고 분석합니다. 앤서니 경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한때는 조롱을 당했던 그가 이제는 ‘애튼버러의 아우라’를 갖게 됐다”고 말했는데요.

막스 포스터 CNN 영국 왕실 특파원은 찰스 3세 국왕을 기후변화를 세계적 의제로 만든 장본인으로 평가했습니다. 포스터 특파원은 2019년 12월 파리협정에서 탈퇴하려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하려던 사람이 당시 찰스 왕세자였단 일화를 보도했는데요.

찰스 3세 국왕은 막스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도 “매달 기온이 최고 기록을 갱신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대로 갈 수 없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너무 오래 방치한다면 무언가를 재배하는 것이 어려워 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왕실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위협한단 비난을 무릅쓰고 활동가처럼 기후문제에 열정을 쏟은 점에 대해 포스터 특파원은 높게 평가했습니다.

찰스 3세 국왕은 지난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도 각국 정상들에게 기후문제 해결을 위해 산업계와 협력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당시 찰스 왕세자는 COP26 특별정상세션에서 연사로 나서 “우리는 좋은 말을 더 좋은 행동으로 지금 바꿔내야 한다”며 “우리는 이것이 수십억 달러가 아니라 수조 달러가 들 것이란 것을 알고 있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은 큰 위협이며, 세계는 그것과 싸우기 위해 전쟁과 같은 기반을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미래의 생존이 당신 손에 달려있기에 당신을 지구 담당 안내원으로 여기는 젊은 사람들의 절망적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다”며 각국 정상에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상기했습니다.

 

▲ 9월 10일(현지시각) 찰스 3세 국왕은 첫 대국민 연설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고 밝혔다 ©The Royal Family Channel, 유튜브 캡처

왕위 오른 찰스 3세, 기후 메시지 계속 유지할까? 🇬🇧

찰스 3세 국왕이 이전 선왕과 달리 기후문제에 정치적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지속가능발전기금 ‘미래를 위한 포럼’의 창설자인 조나단 포릿은 왕은 군주인 만큼 실제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권한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포릿은 찰스 3세 국왕이 기후 및 환경문제를 “국가 안녕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간주할 가능성은 크다고 덧붙였는데요. 영국 뱅고르대학에서 헌법 및 행정법을 가르치는 스테판 클리어 또한 “법안을 만들고 통과시킬 수 있는 권한이 당대 선출된 의회에 있다”며 찰스 3세 국왕이 더는 기후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해당 법에 왕이나 여왕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의회에서 통과된 법률은 항상 승인한단 것입니다. 또 56개국으로 구성된 영연방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를 계기로 흔들리는 상황인 만큼, 영연방 유지를 위해 찰스 3세 국왕이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속가능한 서비스 기업 에보라글로벌(Evora Global)의 공동설립자인 크리스 베넷은 “(찰스 3세 국왕이) 이빨 없는 리더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여왕의 뒤를 이어 소프트파워를 최대한 활용할 것 같다”며 “테라 카르타 같은 기후 관련 이니셔티브에 더 많이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기후 컨설턴트인 닉 브룩스는 영국 언론 클라이밋 홈과의 인터뷰에서 “찰스 3세 국왕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보다 인기가 있지는 않지만 기후 메시지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권위주의(계층적 시스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그는 그러면서 찰스 3세 국왕이 내놓는 메시지 하나하나가 영국과 영연방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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