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대응‧세제개편‧보건의료강화를 골자로 한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Inflation Reduction Act)이 12일(현지시각) 찬성 220 대 반대 207로 미국 하원을 통과했습니다. 이에 따라 IRA 법안 입법화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서명만 남은 상황인데요.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휴가가 끝나는 16일 화요일(현지시각), IRA 법안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IRA 법안이 통과함에 따라 미국 내 친환경 산업을 중심으로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면서 향후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의 관련 기업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재생에너지 투자가 미국으로만 쏠릴 수 있단 우려도 나오는 상황. IRA 법안 통과가 우리나라 기업들에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리했습니다.
현대·기아 등 완성차 기업, 발등에 불 떨어져 🔥
우선, 국내 자동차업계는 IRA 법안으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IRA 법안에 따르면, 친환경차 구매 세제 혜택의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미국 내에서 최종 조립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완성차 기업인 현대·기아의 경우 대표 전기차인 아이오닉5와 EV6를 한국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오는 11월부터, 기아차는 2023년 하반기부터 일부 모델을 미국에서 생산할 계획인데요. 다른 경쟁업체에 비해 진출이 늦어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단 분석이 나옵니다.
현대차의 경우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제조 공장을 세울 계획이지만 이 또한 내년 착공 예정이라 완공까지는 수년이 남은 상황입니다.
이에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지난 10일 미국 하원에 IRA 법안에 한국산 전기차가 세제 혜택 대상국에 포함될 수 있도록 개정해달란 의견서를 전달했습니다.
KAMA는 의견서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을 감안하면 우리 정부도 수입산과 국산 전기차 차별 없이 보조금을 지급 중”이라며 미국 하원에서 해당 조항이 개정돼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북미 시장 진출한 K 배터리 기업, 반사이익 기대해 🔋
한편, 전기차의 필수재인 배터리 기업은 이번 IRA 법안 통과를 반기고 있습니다.
IRA 법안에 의하면, 배터리 기업이 받을 수혜는 크게 배터리 생산시설에 대한 생산세액공제(PTC)와 투자세액공제(ITC)인데요. 아울러 친환경차 구매 세제 혜택으로 전기차 등 친환경차 판매량이 증가해 주요 부품인 배터리도 판매량 증가가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단, 이 수혜를 받기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PTC와 ITC의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미국 현지의 시설투자·생산이어야만 하는데요. 이미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배터리 대기업 3사 모두 미국 현지에 진출했기 때문에 해당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까지 6조 5,000억 원을 투자해 미국과 캐나다에 배터리 공장을 신설합니다.
SK그룹 배터리 계열사인 SK온은 5조 1,000억 원을 투자해 미국 자동차기업 포드와 합작 공장을 건설 중입니다. 뿐만 아니라, 3조 원을 투자해 단독 공장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인 지난 5월 삼성SDI가 스텔란티스(Stellantis)와 합작해 미국 첫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에 25억 달러(3조 2,700억원) 이상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둘째, 전기차 등 친환경차 구매 세제 혜택의 반사이익을 받기 위해서는 관련 배터리 기준을 만족해야 합니다.
- 배터리 🔋: 주요 부품의 일정 비율 이상이 북미에서 제조돼야 합니다. 요구비율은 2023년 40%에서 점진적으로 증가하여 2027년 이후 80%로 상향됩니다.
- 배터리 핵심광물 ⛏️: 핵심광물이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맺은 국가에서 채굴·가공되거나 미국 내에서 재활용돼야 합니다. 요구비율은 2023년 총 가치의 50%에서 점차 증가해 2029년에는 100%로 상향됩니다.
소비자가 전기차 구매 시 100%의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전기차가 두 항목을 모두 충족해야만 합니다. 또한, IRA 법안에는 중국에서 생산된 배터리, 중국에서 채취한 핵심광물을 이용한 배터리는 세제 혜택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배터리 주요 원자재 상당수는 중국에서 채굴·가공되고 있습니다. 영국 공급망 시장조사전문기관 벤치마크미네랄인텔리전스(BMI)에 따르면, 현재 중국은 글로벌 배터리 소재 시장에서 양극재 81%, 음극재 91%, 리튬이온전지 79%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도 배터리의 주요 원자재 80% 이상을 중국에서 수입하는 상황입니다.
이에 LG화학, 포스코케미칼, 롯데케미칼, SKC 등 배터리 핵심 소재 생산 기업들이 원자재 현지 조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현지에 소재 공장 신설 계획에 나섰습니다.
+ 잠깐! 미국 자동차기업도 반발하고 있다고? 🇺🇸
이처럼 IRA 법안에는 자국 내 전기차 산업을 지원·보호하는 내용이 담겼는데요. 그런데 법안이 가결되자 오히려 미국 자동차업계가 항의에 나섰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들은 핵심 광물 및 배터리 부품 조달에 대한 목표가 너무 높고 빠르게 상승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미국 자동차혁신연합(AAI)의 존 보젤라 대표는 “불행하게도 전기차 세금공제 요건에 따르면 대부분의 차는 혜택을 받을 수 없다”며 IRA 법안이 통과할 경우 현재 판매되는 전기차의 70%가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보젤라 대표는 이어 IRA 법안이 통과되면 “2030년까지 (자동차 총 판매량 중) 전기차 판매 40~50% 달성이라는 목표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국내 재생에너지 기업, 미국 투자 늘릴 계획 ☀️
IRA법안에 따르면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등 국내 재생에너지 기업들은 미국에서의 설비 투자 및 생산에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약 600억 달러(약 78조)가량이 지원될 예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소비 시에도 세제 혜택이 있는데요.
이에 미국 태양광 모듈 시장 점유율 1위이자 미국 현지에 생산시설을 이미 갖추고 있는 한화솔루션이 직접적인 수혜를 입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한화솔루션은 현재 미국 조지아주에 연간생산량 1.7GW(기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모듈공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내년 2분기에는 2,000억 원을 투자해 1.4GW 규모의 공장을 추가로 가동할 예정인데요.
지난 12일 하나증권의 에쿼티리서치(Equity Research) 보고서는 1.7GW 기준의 세제 혜택은 1,400억 원, 추가 가동되는 공장을 고려하면 2024년 3.1GW 기준 세제 혜택은 2,600억 원으로 분석했습니다. 이는 향후 법인세에서 차감되기 때문에 순이익(Net Profit) 증가로 연결되는데요.
이밖에도 풍력, 수소 등 국내 재생에너지 기업 대부분이 미국을 주력시장으로 삼고 있어 IRA 법안 통과에 따른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풍력발전기 생산 세계 1위 기업이자 지난해 미국 생산 공장을 인수한 씨에스윈드(CS Wind), 수소 생산과 연료전지 개발에 나선 두산퓨얼셀 등이 주요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미국에 의한·미국을 위한 기후 투자, WTO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와 🌐
한편, 미국의 전기차 세제 혜택이 외국산 자동차를 차별하고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미리암 가르시아 페러 대변인은 IRA 법안에 대해 “외국 생산자를 차별하고 있다”며 이는 WTO와 양립할 수 없다고 밝혔는데요.
페러 대변인은 세금 공제가 전기차 수요를 촉진하고 지속가능한 운송으로의 전환과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촉진하는 주요 인센티브란 점은 인정합니다. 다만, 현재 조치가 차별적인 게 문제라며, 미국이 IRA 법안의 차별적 요소를 제거하고 WTO를 준수하도록 촉구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정부도 IRA 법안의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IRA 법안 하원 표결을 하루 앞둔 11일, 우리나라 산업통상자원부는 IRA 법안과 관련하여 국내 자동차 및 배터리 기업과 간담회를 가졌는데요.
간담회에서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은 해당 법안이 한미FTA와 WTO 협정 등 통상규범 위배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미국 측에 전달했다며, ‘북미 내’로 규정된 전기자동차 최종 조립 및 배터리 부품 요건을 완화해줄 것을 미국 통상 당국에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허나, 미국 하원 통과안에 해당 요청이 반영되진 않은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