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제품 여권(DPP·Digital Product Passport). 제품의 ▲부품 원산지, ▲수리 및 해체 가능 여부, ▲수명 정보 등이 종합적으로 담긴 디지털 인증서인데요. 제품의 재사용·재활용을 촉진해 순환경제 전환을 촉진할 수 있는 기술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디지털 제품 여권 도입 속도가 산업계 덕에 더 빨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6월 27일(현지시각) 페트병 등 가공설비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프랑스 기업 시델(Sidel)은 자사의 지속가능한 플라스틱 포장을 구현하기 위해 R-Cycle에 참여한단 소식을 발표했습니다.
R-Cycle은 플라스틱 포장에 대한 디지털 제품 여권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업간 이니셔티브인데요. 이번 시델의 참여로 R-Cycle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은 20곳이 됐습니다.
R-Cycle에 참여한 기업 상당수는 페트병, 비닐 등을 생산하는 기업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들 기업이 자발적으로 디지털 제품 여권 구현을 이끈단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데요.
사내 혁신 프로젝트에서 기업간 이니셔티브로 격상된 R-Cycle ♻️
R-Cycle은 2020년 독일 가공설비 제조 기업 라인펜하우저(Reinfenhauser)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라인펜하우저 사업개발부서에 있던 베네딕트 브렌켄 박사가 사내 혁신 프로젝트로 R-Cycle을 추진했는데요.
이 프로젝트는 플라스틱 제품 생산·소비·폐기·재활용에 이르는 전과정을 추적해 재활용률을 높이는 것을 목표했습니다. 재활용 가능한 폐플라스틱을 정확하게 추적하고 식별할수록 플라스틱 자원순환율을 높이기 때문인데요.
사내 혁신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R-Cycle은 같은해 기업간 이니셔티브로 격상됩니다. 초기 아버그(Arbug) 등 플라스틱 제조 기업 4곳을 비롯해 독일 아헨공대의 플라스틱가공연구소(IKV)가 참여했는데요. 참여 기관 수는 채 2년이 지나기 전에 20개로 늘어났습니다.
R-Cycle은 일찌감치 디지털 제품 여권이 플라스틱 수명 주기 및 자원순환율 향상과 직결된단 점에 주목합니다. R-Cycle은 식품 산업에서 농산물 공급 추적을 위해 사용하는 QR코드나 바코드 표기 기술이 플라스틱 산업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는데요.
그해 R-Cycle은 비영리 국제민간표준기구 GS1(본부 벨기에 브뤼셀)의 지원을 받아 플라스틱 밸류체인(가치사슬·Value chain) 최적화를 위한 파일럿 프로젝트(Pilot project)를 시작합니다.
파일럿 프로젝트 결과, 디지털 제품 여권 성공 입증돼 🎫
3개월간의 파일럿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습니다. R-Cycle의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는 브렌켄 박사는 “R-Cycle이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앱)과 조건에서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입증했다”고 밝혔는데요. 대표적인 파일럿 프로젝트들만 보고 간다면.
- 폐플라스틱 추적 가능 🥤: 플라스틱 제조 기업 아버그는 자사 생산설비에 R-Cycle 데이터 플랫폼을 연결했습니다. 아버그는 해당 설비에서 폴리프로필렌(PP) 컵을 제작했는데요. 컵 외관에는 재활용 관련 정보가 담긴 QR코드가 인쇄된 디지털 제품 여권이 부여됩니다. 그 덕분에 아버그 컵이 소각장·매립장에 버려지더라도 선별장 기계 및 QR코드로 추적 및 수거가 가능해졌습니다.
- 재활용 가능 폐플라스틱 현황 실시간 공유 🌐: 독일 산업용 필름(팔레트 스트레치 필름) 생산기업인 폴리필름(Polifilm)은 대형마트에 납품할 특수 필름을 생산했습니다. 산업용 필름은 마트나 공장의 팔레트(화물운반대) 위에 적재된 물건들이 운송 과정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감싸 고정하는데 사용됩니다. 일회성 소모재인만큼 연간 폐기되는 양이 많은데요. 이에 폴리필름 또한 자사 생산설비에 R-Cycle 데이터 플랫폼을 연결했습니다. 이 데이터 플랫폼은 필름 생산 중 발생한 부산물과 수거한 폐필름의 양을 바코드를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줬는데요. 회사 측은 해당 데이터를 바탕으로 폐필름의 정확한 양을 파악하고, 이 중 재활용 가능한 폐필름 정보만 분류해 다시 원료로 사용했습니다.
플라스틱 정확한 분류, 고품질 재활용 위해선 데이터 공유 표준안 필수! 📢
디지털 제품 여권은 밸류체인 내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제품 정보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 점에서 각국 정부 및 기업은 디지털 제품 여권이 자원순환을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하는데요.
유럽연합(EU)도 지난 3월 디지털 제품 여권 도입을 통해 섬유 등 제품 전반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한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EU 집행위원회는 앞으로 예고된 순환경제실행계획 법안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라도 디지털 제품 여권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는데요.
R-Cycle 또한 디지털 제품 여권을 통해 EU의 순환경제 전환을 촉진한단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업 주도로 실제 현장에서 디지털 제품 여권을 적용하고, 각각의 장단점을 반영하고 있단 것이 특징인데요.
궁극적으로 R-Cycle은 플라스틱 산업군에 있는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제품 여권의 국제 표준을 만드는 것을 목표합니다. R-Cycle이 GS1과 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GS1은 ‘상품 식별용 바코드’, ‘전자문서’, ‘전자카탈로그’ 등의 표준화를 주도해온 국제민간표준기구인데요. 월마트, 프록터앤드갬블(P&G) 등 100만여개가 넘는 기업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R-Cycle의 브렌켄 대표이사는 플라스틱 제품에 들어갈 디지털 제품 여권의 표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일임을 강조합니다. 브렌켄 이사는 “순환경제 달성을 위해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자문했다”는데요. “플라스틱의 정확한 분류 및 고품질 재활용을 위해선 제품 수명 주기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선 적절한 표준이 필요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어 “GS1에는 이미 플라스틱에 적용할 수 있는 적절한 표준이 있었다”며 “R-Cycle에 가입한 회원사는 모두 GS1의 표준이 적용된 디지털 제품 여권을 사용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디지털 제품 여권 첫 단추, 수집할 정보와 수집하지 말아야 할 정보 구분! 💽
브렌켄 이사는 디지털 제품 여권 생성의 첫 단계는 수집할 정보와 수집하지 않을 정보를 구분하는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플라스틱 유형별 추적 및 수거를 위해라도, 디지털 제품 여권에는 해당 제품이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지에 관한 여러 정보가 담겨야 합니다. 동시에 해당 정보가 특정 회사의 기밀 정보를 드러낼 수 있단 점을 유의해야 하는데요. 이 때문에 브렌켄 이사는 R-Cycle 회원사를 비롯해 여러 협회와 긴밀하게 논의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R-Cycle의 디지털 제품 여권은 크게 3개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제품을 식별할 수 있는 아이디(ID), 둘째는 해당 제품의 재질 및 생산지 등을 기록한 데이터입니다. 해당 정보의 경우 GS1의 표준에 맞춰 기록됩니다. 마지막은 바코드, QR코드 등 여러 형태의 디지털 워터마크를 하나로 묶어 정보를 삽입합는 ‘마킹(Marking) 기술’입니다.
이에 대해 R-Cycle은 플라스틱 수명주기에 맞춰 모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여러 단체와 협력해 다양한 마킹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R-Cycle은 파일럿 테스트, GSI 표준안 개발 등을 기반으로 디지털 제품 여권 상용화에 나섰습니다. R-Cycle은 디지털 제품 여권이 순환경제 전환으로의 전제조건임을 명시했는데요. 브렌켄 이사는 한 재활용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순환경제는 수명주기와 관련해 이해관계자 간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어 디지털 제품 여권이 제품의 재활용 가능성을 넘어 탄소발자국 계산이나 생산공정 효율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역설했습니다. 브렌켄 이사는 그러면서 “(디지털 제품 여권이) 실제로 대규모로 적용되고 해당 사회기반시설이 구축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R-Cycle의 디지털 제품 여권은 오는 10월 독일 뒤셀드로프에서 열릴 플라스틱 및 고무 박람회(K 2022)에서 대중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