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세계 주요국이 단행한 식량·비료 수출 제한 조치만 57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지난달 20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담긴 내용인데요. 특히, 식량·비료에 걸린 수출 제한 조치의 80%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시행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러시아는 서방 제재에 맞서 비우호국에게 비료 등 일부 품목에 수출 제한 조치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세계 비료 생산량은 13%일뿐더러, 화학비료의 주원료가 되는 암모니아와 요소 또한 세계 수출량의 40% 이상을 공급합니다. 마찬가지로 화학비료의 주원료인 탄산칼륨 또한 러시아에 그간 의존했는데요.
중국, 우크라이나 등 세계 비료 수출 상위국들도 잇따라 비료 수출 제한 조치를 내리며 지구촌 비료 공급 부족 현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비료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은 없는 걸까요? 최근 비료 문제에 맞써 사람의 소변을 비료로 만드는 방식이 각광받고 있는데요. ‘오줌재활용업자(Peecycler)’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단 사실,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간호사, 유치원 교사로 일하던 부부가 오줌재활용업자로 거듭난 사연은? ♻️
미국 버몬트주의 작은 도시 브래틀버러에 살고 있는 케이트 루시와 존 셀러스 부부. 이들은 각자 간호사와 유치원 교사로서 오랫동안 일해왔는데요. 이들 부부의 화장실 한쪽에는 붉은색 깔때기가 꽂힌 통이 있습니다.
이 통의 용도는 오로지 소변만 따로 모으기 위한 것인데요. 이들 부부가 소변을 모으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7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들이 오줌을 모으게 된 계기는 단순했습니다. 지역 비영리단체에서 오줌재활용(Peerecycling)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흥미를 느낀 것인데요.
부부는 프로그램을 통해 소변에는 식물 성장에 필수 영양소인 질소가 풍부할뿐더러, 기존 화학비료의 생산방식이 지속가능하지 않단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소변으로 만든 천연퇴비가 환경에 이롭단 사실을 깨달은 부부는 이때부터 소변을 따로 모으기 시작했는데요.
부부는 초기 매주 2~3개 분량의 소변 통을 지역 비영리단체에 기부하고 이를 다시 비료로 받았습니다. 현재는 집 앞마당에 대형 물탱크를 설치해 이웃들로부터 소변을 받아 판매하는 오줌재활용업자로 거듭났는데요.
지난 7년간 부부가 모은 소변의 양은 1,000갤런(약 3,700리터) 이상. 루시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작은 통에 소변은 모으는 것은 “조금 느릿느릿했다”고 회상합니다. 루시는 이어 소변을 따로 모으는 것이 익숙해져 평범한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 후회된다고 밝혔는데요.
그는 “우리는 몸에서 놀라운 비료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귀중한 자원들을 물로 씻어낸다”며 “(소변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은) 정말 생각만 해도 미친 짓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화학비료보다 지속가능한 소변비료, 그 이유는? 💧
케이트 루시와 존 셀러스 부부에게 오줌재활용의 중요성을 알린 지역 비영리단체는 리치어스연구소(Rich Earth Institute)란 곳입니다. 이곳은 10년 넘게 소변 재활용을 연구했는데요. 소변비료가 작물 재배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연구하고 버몬트주 일대 공공기관과 마을 곳곳에 소변 수집용 공공화장실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리치어스연구소는 자발적 기부와 공공화장실을 통해 소변을 모으고 있는데요. 이 소변들은 한데 모여 섭씨 90°C에서 살균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에서 소변에 있을 수 있는 모든 병원체를 제거하는데요. 이후 몇 달간 농축과정을 거쳐 천연퇴비로 완전히 거듭납니다.
리치어스연구소를 비롯한 수많은 기관이 화학비료가 더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화학비료의 주원료인 암모니아와 인산칼륨의 생산방식이 한계를 보이기 때문인데요.
암모니아의 경우 화학공정을 통해 공기 중 질소를 암모니아로 바꾸는 ‘하버-보슈 공정’을 통해 생산하는데요. 2019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한 연구에 의하면, 이 공정에 세계 전체 에너지의 약 1%가 소비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 매사추세츠공대(MIT)는 암모니아 제조가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1~2%를 차지한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화학비료의 또다른 핵심재료인 인산칼륨은 대개 암석에서 채굴되는데요. 오래전부터 매장량이 줄어들고 있단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리치어스연구소는 일찌감치 소변비료에 주목했습니다. 소변의 98%는 물, 나머지 2%에는 탄소·질소·산소 등의 유기물이 풍부하기 때문인데요. 연구소에 따르면, 성인 한 명이 연간 생산하는 소변은 473리터 정도로 이는 145kg의 밀을 재배하기 충분한 양입니다.
연구소는 또 소변비료가 물 절약과 연결됨을 강조합니다. 미 환경보호청(EPA)은 화장실이 가정 내에서 가장 많은 물을 사용하는 곳임을 지적한 바 있는데요. 연구소에 따르면, 소변을 따로 모으는 것만으로도 연간 약 4,000갤런(약 1만 5,000리터)의 물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니제르부터 프랑스까지, 세계 각지에서 소변비료 활용 시도 활발해 🌍
현재 리치어스연구소는 미 미시간대 연구팀과 협력해 소변비료 상업화 방안을 연구 중입니다. 이들은 미시간대 캠퍼스 일부 화장실에 소변만 모으는 화장실을 설치하기도 했는데요. 캠퍼스 곳곳에서 수집된 소변은 지하 저장탱크에 보내지며, 일련의 과정을 거쳐 대학 식물원에서 비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세계 곳곳에서 소변비료를 활용하련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아프리카 니제르에 있는 마라디농민연합(Federation of Maradi Farmers Union) 또한 지역민들에게 소변비료의 중요성을 장려하는데요. 2013년부터 자원봉사자들이 모아온 소변을 동물 분뇨와 섞어 비료로 사용 중입니다.
이들 단체는 동물 분뇨와 섞거나 혹은 아예 소변비료만 단독으로 사용할 경우 니제르의 주요 작물 중 하나인 진주 기장(서아프리카 일대 재배되는 곡물)의 수확량이 약 30%이상 증가한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는데요.
프랑스의 경우 2017년부터 수도 파리 일대 남성용 소변기를 설치해 놓고 있습니다. 위리트로투아(Uritrottoir)라 불리는 이 소변기는 노상방뇨로 인한 위생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설치된 야외 소변기인데요. 소변기 내부에는 톱밥, 목재, 짚 등이 있어 소변과 결합되면 친환경 비료가 되는 식입니다. 최대 600명의 소변을 모을 수 있고, 통이 가득찰 경우 원격제어시스템에 통보돼 수거됩니다.
최근 파리시 당국은 600여개 신축 아파트에 소변만 수집할 수 있는 양변기를 설치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곳에서 수집한 소변은 비료로 전환돼 파리 도심 곳곳의 녹지공간에 사용될 계획입니다. 또 유럽우주국(ESA) 본부가 위치한 파리 시내 건물에도 80개 이상의 소변 수집 화장실이 설치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스위스, 독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멕시코, 인도 등에서도 소변비료를 활용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시범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입니다.
순환자원으로 대접받는 소변, 상업화 위해 필요한 것은? 🥇
물론 소변비료가 오늘날의 비료위기를 해결할 정도로 발전하지는 못했단 평가가 대다수인데요. 소변비료의 상업화를 위해선 소변을 대규모로 수집해야 한단 뜻인데, 이는 곧 도시 배관 시설의 전면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악취 또한 문제일뿐더러, 도심에서 모은 소변을 농촌까지 어떻게 이동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데요.
여러 고민지점에도 불구하고 리치어스연구소 등 여러 기관은 한목소리로 소변이 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들은 소변도 귀중한 자원이며, 이를 제대로 순환시키면 기후변화나 생물다양성 손실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는데요.
실제로 소변의 활용가치가 높아지자 소변 가격도 오른 상황입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까지 겹치며 소변 가격이 25리터당 1달러에서 6달러까지 상승했는데요. 우리나라도 소변을 순환자원으로서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