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던 사람들마저 뒤돌아보게 만들 힘이 있는 향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최근 몇 년간 향수 소비가 급격히 늘었는데요.
사회적 거리두기 등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색조 화장품 대신 향수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소비가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롯데백화점은 향수 매출을 처음으로 1,000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향수 매출은 코로나19 이후 매년 전년 대비 40%대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중이죠. 여기에 실외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되자 향수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단 소식도 들려오는데요.
그런데 여러분은 혹시 향수가 어떤 원료로 만들어졌는지 꼼꼼하게 확인하신 적 있으신가요?
지속가능한 향수 위해 ‘자체적으로’ 원료 수급 중인 브랜드들 🍋
향수의 세계는 굉장히 복잡합니다. 여러 화학물질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뿐더러, 각 물질의 배합 비율과 강도 그리고 숙성 기간 등에 따라 향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대형 패션·화장품 브랜드 상당수는 거대 향료 기업에서 가져온 향료를 자사의 배합에 맞춰 향수를 만듭니다. 이 때문에 브랜드들은 향료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기 쉽지 않은데요.
더욱이 향료 기업 상당수는 영업기밀을 근거로 향료의 성분을 공개하지 않고 있죠. 즉, 브랜드 입장에선 수천가지가 넘는 향료가 어떤 방식으로 추출 및 제조됐는지 알기 어렵단 뜻인데요.
다만, 고급향을 위해 사향노루·사향고양이 등 일부 종이 멸종위기에 처해있단 점은 분명한데요. 단적으로 최고급향으로 분류되는 ‘침향’의 경우 원료 추출을 위해 침향 나무가 무분별하게 벌목돼 세계멸종위기식물 3급에 지정됐죠. 장미향을 내는 자단나무 또한 보호종으로 지정된 상황인데요.
생물다양성 손실, 폐기물 배출 등이 불거지자 ‘지속가능한 향수’에 관심있는 일부 브랜드는 자체적으로 원료 수급에 나섰습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화장품 브랜드 러쉬(Lush)는 향료 기업을 거치지 않고 원료를 수급합니다.
일례로 러쉬는 향수에 사용되는 ‘파촐리 오일’을 얻기 위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있는 지역 농부들과 협력을 맺고 있죠. 뿐만 아니라, 현지 환경단체와 협력해 지역 농부들에게 재생농업을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있는데요.
이밖에도 아마존 원주민을 지원해 원료를 직접 공급받는 향수 브랜드 아니마 빈치(Anima Vinci), 모로코에서 오렌지 에센셜 오일을 생산하는 취약계층 여성들을 지원하는 향수 브랜드 사나 자딘(Sana Jardin) 등이 있죠.
자체 원료 수급을 넘어 ‘업사이클링’에 관심을 기울인 향수 브랜드 🍊
지속가능성에 대한 기업과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자 아예 ‘업사이클링 향수’를 내놓는 브랜드도 늘고 있습니다. 과일 음료를 만들고 나온 부산물이나 떨어진 꽃잎 등에서 향을 추출하는 것인데요.
프랑스 프로방스에 있는 유명 향수 브랜드인 테크니코 플로어(TechnicoFlor)도 최근 업사이클 원료로 개발된 향수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테크니코 플로어는 지난 4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화장품 전문 전시회 ‘인–코스메틱 글로벌(In-Cosmetic global)’ 박람회에서 해당 컬렉션을 공개했습니다. 당근 씨앗, 시트러스(감귤), 코코아, 장미, 사이프러스, 와인 등 총 8개의 향수였죠.
단순히 이름만 들어선 일반 향수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요. 테크니코 플로어 소속 조향사들은 발아가능성이 낮은 당근 씨앗과 버려진 감귤 껍질에서 향을 추출했습니다. 코코아향 또한 코코아 열매 꼬투리에서 향을 추출한 것인데요.
사이프러스와 장미향의 경우 각각 목재 산업과 로즈 앱솔루트* 추출 후 나온 부산물에서 각각 향을 추출했는데요. 와인향에는 와인·샴페인 숙성 기간 중 발생한 부산물이 활용됐죠.
*앱솔루트(Absolute): 에센셜 오일과 마찬가지로 식물에서 추출한 오일입니다. 용매추출법을 통해 향료를 추출해 에센셜 오일보다 향과 농도가 더 강하다고. 그만큼 값이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테크니코 플로어는 산업 혹은 농업 부산물을 회수해 업사이클링한 덕에 자원 낭비를 줄일 수 있었다고 강조합니다. 단적인 예로 향수 재료 중 하나인 로즈 앱솔루트의 경우 1kg 생산을 위해선 최소 3~5톤 정도의 장미꽃이 필요한데요.
회사 측은 공정 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던 장미꽃에서 또다른 향료를 추출할 수 있는 것만으로 천연자원을 덜 쓸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업사이클링 향수 컬렉션을 개발한 피에르 플로레스 조향사는 “향수 브랜드에게 있어 업사이클링 재료 사용은 진정한 도전”이라고 밝혔는데요. 그는 이어 “(지속가능한 향수를 향한) 책임감 있는 접근이 다가올 미래의 향수를 정의한다고 믿는다”고 설명했죠.
테크니코 플로어는 자원 낭비를 줄이고, 버려진 폐기물에 새 가치를 불어놓는 순환경제 차원에서 업사이클링 향수 컬렉션을 개발했다고 덧붙였는데요. 다만, 아쉽게도 해당 컬렉션이 언제 시중에 공개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물론 업사이클링 향수를 개발한 곳이 테크니코 플로어만은 아닙니다. 향수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름을 널리 알린 에따 리브르 도랑주(Etat Libre d’Orange)는 2018년 ‘아이 엠 트래시(I am Trash)’란 향수를 선보였는데요.
우리말로 ‘나는 쓰레기야’란 아이 엠 트래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각종 폐기물에서 향료를 추출해 만들었는데요. 스위스 향로 기업 지보단(Givaudan)과 협력해 과일 음료를 만들고 남은 사과, 로즈 앱솔루트 추출에 사용 후 버려진 장미꽃 등에서 향을 추출했습니다.
에따 리브르 도랑주는 향수 업계에서도 실험적이면서도 반항적인 도전을 하는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 브랜드는 아이 엠 트래시 공개 당시 “원하지 않는 것들로부터 가장 원하는 향을 만들겠다(The most wanted scent mad from the unwanted)”란 메시지를 널리 퍼뜨리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위에 소개한 브랜드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시중에 업사이클링 향수를 공개했습니다. 버려진 와인통이나 목재 가구 제작 후 나온 폐목재 조각을 증류해 향수를 개발한 곳도 있고, 인도 사원에서 버려진 자스민 꽃을 증류해 향수를 개발한 브랜드도 있습니다.
향수 산업이 제조 과정에서만 9,200만 톤 이상의 폐기물이 발생한단 점을 감안할 때, 폐기물이 재사용되는 것만으로도 환경 및 경제적으로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단 평이 다수인데요. 나아가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기대할 수 있죠.
향수 업계는 업사이클링 향수는 더 지속가능한 향수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 지점임을 설명합니다. 향수 브랜드들이 앞다퉈 지속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자들이 브랜드의 지속가능성에 따라 소비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죠.
향수 업계의 말처럼 업사이클링 향수가 대안을 넘어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요? 그리니엄이 향수 업계의 지속가능한 행보에 대해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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