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패션 문제? 순환경제로 타파한 패션 기업 티밀의 비결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은 지금 어떤 옷을 입고 있으시나요? 혹시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됐는지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부끄럽게도 본 에디터는 그리니엄을 알기 전만 해도 옷이 어떻게 생산되고 폐기되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비영리기관인 글로벌 패션 아젠다(Global Fashion Agenda)와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이 내놓은 2018년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연간 9,200만 톤의 의류폐기물이 버려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류산업이 내뿜은 탄소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0%를 차지하죠. 재활용 가능한 의류가 폐기돼 겪는 경제적 손실 규모만 연간 5,000억 달러(한화 약 580조원)에 이른다는 유엔 지속가능패션연합의 자료도 공개됐는데요.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이 여러모로 심각한 문제란 사실이 더는 낯설지 않습니다. 이에 대응하고자 얼마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패스트패션을 종식하기 위한 지속가능한 섬유 전략을 발표했죠.

다행히 EU 규제에 앞서 의류산업 스스로 변화를 꾀하려 노력 중인 소식도 들려옵니다. 특히, 패스트패션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찍이 순환경제에 주목한 기업이 있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영국 패션 기업 티밀(Teemill)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 ‘순환경제를 디자인하는 법’을 주제로 테드 토크(TED talk)에서 강연 중인 마크 드레이크-나이트 티밀 공동 설립자_Teemill, 페이스북 갈무리

순환경제는 인류 발전을 위한 레시피 (feat. 티밀) ♻️

“한 사람이 경제를 재설계하고 지속가능성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요?”

마트 드레이크-나이트 티밀(Teemill) 설립자

지난 7일(현지시각) 티밀의 공동 설립자인 마트 드레이크-나이트가 테드 토크(TED talk) 강연에서 청중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순환경제를 디자인하는 법’을 주제로 열린 강연에서 나이트는 순환디자인이 지속가능성을 현실로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는데요. 그는 이어 순환경제가 기업가들에게 공급망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 기회를 준다고 역설했죠.

나이트는 순환경제를 “인류의 발전을 위한 레시피”라고 소개했는데요.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티밀의 창립 이야기를 알고 가야만 합니다.

롭과 마트 드레이크-나이트 형제에 의해 설립된 티밀. 사실 티밀의 모회사는 패션 브랜드인 라파누이(Rapanui)입니다. 2009년 두 형제는 창업 자본금 200파운드(당시 한화 약 26만원)을 가지고 티셔츠 제작 업체인 라파누이를 시작합니다. 사무실과 공장 모두 부모님 주택 앞마당에 있는 작은 헛간에 위치했는데요.

무엇 하나 소박했으나, 두 형제의 야망만은 거대했습니다. 나이트 형제는 순환경제 도입을 통한 공급망의 대전환이란 야망을 품고 있었는데요. 이에 두 형제는 직물 생산부터 폐기에 이르는 전 의류 생산 공정을 재설계하기 시작합니다.

 

© 티밀이 관리하는 인도의 목화밭(왼)과 직물 생산 공장(오)_Teemill, 페이스북 갈무리

유기농 목화 생산부터 AI가 관리하는 공장을 만들기까지 👕

먼저 나이트 형제는 지속가능한 직물 공급을 위해 ‘유기농 면’에 주목했습니다. 목화에서 추출한 면은 생분해되는 천연 섬유이나, 환경적으로는 까다로운 직물에 속하는데요.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전 세계 농약과 살충제의 35%가 목화밭에 뿌려져 주변 생태계를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이에 나이트 형제는 인도 북부에 있는 목화 재배 밭을 아예 사들였는데요. 살충제 대신 곤충 덫과 소똥 퇴비 등을 활용한 유기농법을 활용하고, 목화에서 실을 뽑는 공장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했습니다.

나이트 형제의 야망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2018년 나이트 형제는 패션 기업 티밀을 설립하고, 이듬해 영국 남부에 있는 와이트섬에 의류공장을 세웁니다. 재생에너지로 운영되는 이 공장은 수십대의 로봇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제품을 실시간 주문 제작하죠.

 

© 실시간 주문 제작 방식으로 진행되는 티밀의 공장 내부 모습_Teemill 페이스북, Dan Wilton 제공

주문 제작 방식은 간단합니다. 고객이 의류의 색상과 크기, 디자인 등을 온라인으로 지정해 주문하는데요. 주문 접수 후 공장에서 의류를 만들어 고객에서 발송하는 것이죠. AI가 전체 생산 공정을 최적화시킨 덕에 폐기물 배출도 최소화됐는데요.

티밀은 수요 기반(On Demand) 생산 덕에 의류산업 특유의 과잉생산과 폐기물 발생을 모두 줄일 수 있었다고 강조합니다. 또 폐기물 처리에 들어가던 비용을 시설에 재투자해 생산공정 효율성을 보다 높일 수 있었는데요.

물론 이런 방식으로 생산해도 의류의 수명이 다하면 쓰레기 매립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티밀은 고객들에게 수명이 다한 제품을 반송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반품에 들어가는 운송비는 모두 회사가 자체 부담하고 있고, 제품을 반품한 고객들에게는 매장 크레딧(Store Credit)을 제공하고 있죠.

 

👉 세계 최대 물류 기업 DHL도 ‘수요 기반 생산’을 강조했다고?

 

© 반품된 의류가 다시 원단으로 순환하는 티밀 공장의 모습_Teemill, 페이스북 갈무리

티밀 측은 한 달 평균 1톤 정도의 의류가 반품됐다고 밝혔는데요. 반품된 제품들은 수선하거나 원단으로 순환하는 공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방적·염색·재단·봉제 등 모든 생산이 통합된 덕에 의류가 계속 순환될 수 있을뿐더러, 이를 통해 천연직물 등 재료의 투입량도 줄였다고 하죠.

이러한 장점 덕에 세이브더칠드런, 그린피스 등 시민단체(NGO)를 비롯해 캐서린 햄넷, 벨라 프로이트 등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도 티밀을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순환경제? “환경과 경제가 모두 일치하는 흥미로운 장소” 🏃

티밀은 실시간 의류 주문 제작에 필요한 제조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후 이를 다른 의류 브랜드와 공유했습니다. 덕분에 티밀처럼 순환경제로 전환하려는 브랜드들도 똑같이 기술의 이점을 누리게 됐죠.

이에 나이트 형제는 “대형 브랜드가 변화를 시작하는 것을 기다리는 대신 사람들 스스로 패션을 만들고, 패션의 미래에 참여하거나 공동으로 창조할 수 있다”며 티밀을 패션업계의 우버 혹은 에어비앤비라 불러달라고 밝혔습니다.

그간의 노력 덕분일까요? 2019년 티밀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수여 하는 가장 권위있는 상인 퀸즈어워드(Queen’s Award) 혁신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이 상은 지속가능성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인정받아야만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밖에도 티밀은 세계경제포럼(WEF)과 유엔환경계획(UNEP)의 순환경제 전환을 위해 노력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소개된 바 있습니다.

 

© Teemill, 페이스북 갈무리

마트 드레이크-나이트 티밀 공동 설립자는 테드 토크 강연에서 순환경제는 “환경과 경제가 모두 일치하는 흥미로운 장소”로 소개했습니다. 그는 이어 “지속가능한 디자인에 관심있는 모든 이에게 순환경제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는데요.

나이트는 강연 후반부에 “경제는 어른들이 만든 커다란 게임”이며 우리 모두 게임을 바꿀 힘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또 패스트패션이 진정으로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제품 설계에서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죠.

순환경제로의 전환은 더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상황.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이 티밀의 눈부신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세상은 좀 더 지속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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