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평소 어떤 서비스를 구독 중이신가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비대면서비스가 확대됨에 따라 구독경제가 주요 소비 트렌드로 떠오른지 오래입니다. 구독경제는 매달 일정한 구독료를 내고 정기적으로 서비스나 제품을 빌리는 것을 뜻하는데요. 최근에는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OTT(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구독을 넘어 못난이농산물, 식물, 반려동물용품 등 구독 가능한 제품군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죠.
그렇다면 전자제품도 구독할 수 있을까요. 답은 ‘그렇다’입니다.
‘전자제품계 넷플릭스’란 별명이 붙은 독일의 전자제품 구독서비스 업체 그로버(Grover)가 대표적인데요. 지난 7일(현지시각) 그로버는 3억 3,000만 달러(한화 약 4,028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펀딩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합류한 글로벌 혁신 투자 플랫폼 에너지임팩트파트너스(EIP)의 주도로 진행됐는데요. 유럽 주요 벤처투자사(VC)인 코렐리아캐피탈을 비롯해 LG전자와 미래에셋증권 등 국내 기업도 펀딩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로버는 앞서 2018년에는 삼성전자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삼성넥스트로부터 투자를 받아 화제를 모은 바 있는데요. 전자제품 구독 서비스를 통해 순환경제 촉진을 꿈꾸는 그로버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유니콘 기업 반열에 오른 그로버, 주요 사업은 ‘전자제품 구독서비스’ 📱
독일 수도 베를린에 본사를 둔 그로버.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로 유명한 로켓인터넷을 다니던 미하엘 카사우가 2015년 퇴사 후 창업한 곳입니다. 창업 당시 사무실은 허름한 건물에 있었을뿐더러, 직원 수도 1명에 불과했는데요. 2022년 기준 그로버의 직원수는 450명이 넘고, 기업가치가 10억 달러(한화 약 1조, 2000억원)를 돌파해 이른바 유니콘 기업 대열에 올랐죠.
그로버는 TV, 라디오 등 가전제품을 비롯해 스마트폰·무선키보드·가상현실(VR)기기 같은 전자제품을 월 단위로 대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구독료는 대여 제품 및 기간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령 애플의 최신 기종인 아이폰13프로의 경우, 1개월 134.9유로(약 18만원), 3개월 94.9유로(약 12만원), 6개월 74.9유로(약 10만원), 12개월 59.9유로(약 7만원), 18개월 49.9유로(약 6만원)의 구독료를 지불해야 하죠.
최신 제품일수록 구독료가 높은데요. 반면, 중고나 리퍼브 제품의 경우 구독료가 저렴한 편입니다. DSLR 카메라나 고프로(GoPro) 액션캠 등 촬영용 장비도 구독료가 저렴한 편입니다.
예를 들어 드론 촬영에 쓰이는 고프로 히어로10은 12개월간 24.9유로(약 3만원)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국내 촬영 장비 대여점에서 같은 제품을 같은 가격에 단 24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단 것과 비교하면 거의 365분의 1밖에 안 되는데요.
그로버의 한 달 구독료는 해당 제품의 시장 판매가 대비 5~10%에 불과한데요. 또 구독기간 중 고장난 제품의 경우 수리비의 90%는 그로버에서 책임지고 있습니다.
구독 가능 제품군만 50만 개 이상, 미국 포함 5개국에서 서비스 중 🌍
그로버를 사용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사용자가 그로버 홈페이지에서 원하는 제품과 최소 구독 기간을 설정한 후 사용료를 결제하면 되는 것인데요. 해당 제품은 3~7일 이내 원하는 곳에 배송됩니다.
2022년 기준 그로버에서 대여가 가능한 제품 수는 50만 개 이상. 등록된 사용자도 200만 명 이상인데요. 이 중 25만여명이 서비스를 이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죠. 또 독일을 넘어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페인에서도 서비스를 진행 중인데요. 지난해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지부를 열고, 미 전역으로 서비스를 확대하려 하고 있죠.
그로버의 성장세는 구독경제가 여전히 매력적인 서비스임을 알려줍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인 2020년, 독일 내 스타트업 투자활동은 크게 위축된 상황이었는데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로버는 1억 9,500만 유로(한화 약 2,600억원)의 투자를 받았을뿐더러, 투자규모 비교 부문에서 독일 스타트업 TOP10 2위에 들어갔죠.
코로나19 유행 동안 투자와 함께 구독자 수도 늘었는데요. 그로버는 지난해 구독자 수가 2019년 대비 2.5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최근에는 서비스에 가입한 기업(B2B) 고객이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는데요. 고정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프린터나 노트북 등 사무실 제품을 다수 대여한 기업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유럽 순환경제 선구자로 이름을 날린 그로버 ♻️
오늘날 그로버는 전자제품 구독서비스 시장 산업에 활로를 열었단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유럽 내에서는 순환경제 선구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죠.
그로버의 전자제품 구독 방식이 궁극적으로는 전자폐기물의 양을 줄이되, 순환하는 자원의 양은 되려 늘릴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로버는 자사가 제공 중인 제품은 수명이 종료될 때까지 사용될뿐만 아니라, 반품 및 리퍼브 제품도 계속 순환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로버가 제공하는 구독 제품들은 평균적으로 수년간 대여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평균적으로 제품 하나당 수 년에 걸쳐 최소 4명 이상의 사용자를 거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부 품목은 평균 이상의 구독률을 보여줬는데요. 대표적으로 액션캠의 대명사인 고프로는 평균 27명이 넘는 사용자를 거쳐갔죠.
그로버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미하엘 카사우는 전자제품 구독이 환경과 경제 모두에게 이롭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지속가능성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트렌드를 넘어 변화로 정착돼야 함을 역설했는데요.
그는 이어 “전자제품 구독서비스 시장의 성장세는 우리 사회를 형성하는 주요한 변화의 일부다. 지속가능한 기술에 접근하고 사용하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카사우 CEO는 또 2024년 말까지 500만 개 이상의 제품을 순환시켜 2만 4,000톤 이상의 전자폐기물 배출을 예방하겠단 포부를 밝혔습니다.
+ 그로버는 순환경제 전문 스타트업을 간판으로 내걸었단 사실! 🤑
그 덕분일까요? 그로버는 유럽 내 순환경제 전문 스타트업을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서큘러리티 캐피털(Circularity Capital)로부터 투자를 받은 적이 있는데요. 2018년 말, 서큘러리티 캐피털은 인공지능(AI) 기반 음식물쓰레기 절감 기술을 갖춘 위노우(Winnow)와 의류 플랫폼 지그재그(ZigZag)와 함께 그로버에 6,000만 파운드(한화 약 960억원)를 투자한 바 있다고.
누구보다 먼저 신제품을 사용해 사용 경험을 전파하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 입장에서는 그로버의 전자제품 구독서비스가 매력적으로 보일 텐데요. 아쉽게도 아직 그로버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까지 사업을 확장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최근에는 정보통신(IT) 분야의 내로라하는 공룡기업들도 전자제품 구독서비스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달 애플과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등 자사기기의 구독서비스를 준비 중이란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이들 모두 자사의 기기를 월 단위로 구독하는 서비스를 준비해 올해 말이나 2023년 초에 출시할 계획으로 알려졌습니다. 애플은 아이폰을 비롯해 아이패드나 맥 등 자사 모든 제품을 구독료를 내고 이용하는 방안을 고심 중인 상황인데요. 다만, 두 기업 모두 현재까지는 미국 시장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할 계획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