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가 작거나, 표면에 흠집이 나서 상품값어치가 떨어지는 농산물. 이를 못난이 농산물(Ugly Food)이라 부르는데요. 세계자연기금(WWF)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연간 12억 톤의 식품이 식탁에 올라가지 못하고 버려지고 있죠. 전체 식량 생산량 중 약 8.3%가 작은 상처나 과잉생산됐단 이유로 폐기되고 있습니다.

이 못난이 농산물의 유통을 촉진하면 온실가스 배출은 줄어들고, 농가 소득은 증대할 수 있단 사실은 더는 낯설지 않은데요. 최근 세계적으로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하는 어플리케이션(앱) 서비스가 늘고 있습니다.

편리하게 배송을 받으면서도 지속가능성에 기여할 수 있는 식자재에 수요가 급증한 덕인데요. 이번 시간에는 해외엔 못난이 농산물과 관련해 어떤 앱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 PRoduce 페이스북 갈무리

못난이 농산물로 푸에르토리코 전역을 연결한 프로듀스 🇵🇷

카리브해에 있는 작은 섬나라 푸에르토리코. 이곳은 전체 식량의 8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에 식량자급률을 높여야 한단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는데요. 2017년 9월, 초강력 허리케인 ‘마리아’가 푸에르토리코를 강타하면서 섬의 취약한 식량안보 문제가 드러나게 됩니다.

당시 허리케인으로 인해 도로와 공항 등 일부 사회기반시설이 파괴됐는데요. 항구도 큰 피해를 입은 탓에 식량 수입에 차질을 빚게 되죠. 주요 농업 기반 시설도 타격을 입어 수십만 명이 한동안 굶주림에 시달리는 상황도 있었는데요. 이 사건을 계기로 푸에르토리코는 지속가능한 식품 공급망 구축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됩니다.

마케팅 전문가인 크리스털 디아즈도 허리케인을 계기로 지속가능한 식품 공급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허리케인이 덮치기 불과 1년 전, 그는 동료들과 현지 농가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앱을 아이디어 차원에서 이야기했는데요. 디아즈는 “허리케인이 발생했을 때, 앱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프로듀스(PRoduce)란 앱입니다. 이 앱의 핵심은 푸에르토리코 내 농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것인데요. 못난이 농산물 등 농가에서 생산한 제품을 대량으로 구매한 후 호텔과 음식점, 소비자 모두에게 판매하고 있죠. 소비자들은 앱을 통해 해당 농산물이 어느 지역에서 재배됐고, 이를 구매할 경우 어떤 이점이 있는지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는데요. 푸에르토리코 어디서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바나나의 일종인 플랜틴을 생산하는 농가 PRoduce 제공

못난이 농산물 유통으로 농가 소득•식량 공급망 안정성 ↑ 🥕

회사 측에 의하면, 현재 5만여명의 고객이 프로듀스 서비스를 이용 중이고 600명이 넘는 현지 농가 및 생산자가 협력하고 있는데요. 2020년 7월 열대성 폭풍 이사아시스(Isaías)가 푸에르토리코를 덮쳤을 때, 이 앱은 본격적으로 빛을 발휘했습니다.

당시 폭풍이 지나간 후 현지 농가가 큰 피해를 입었는데요. 특히, 바나나의 일종인 플랜틴(Plantatin) 상당수가 수확을 불과 몇 달 앞두고 땅에 떨어지고 말죠. 작물 흠집 등 값어치가 떨어진 탓에 판매가 어려웠는데요. 이때 프로듀스는 15개 생산자로부터 땅에 떨어진 플랜틴 1만여개를 구매했고, 이를 소비자들에게 매우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습니다.

한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중에도 프로듀스가 식량수급 안정에 큰 도움을 줬는데요. 코로나19로 섬 전역에 야간 통행 금지 명령 및 식당 영업 제한이 확산됐을 당시 ‘푸드박스(Foodbox)’ 구독 서비스를 진행한 덕에 소비자 상당수가 신선한 제품을 매주 만날 수 있었죠.

프로듀스는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급성장했는데요. 이에 프로듀스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디아즈는 “우리는 가장 다양한 현지 제품을 취급한다”며 “자체 물류센터 덕에 항상 신선한 재료를 운반할 수 있고, 현지 농가와 연결된 덕에 가격 면에서 슈퍼마켓과 경쟁력 있는 싸움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또 식당이 현지 식재료를 구매하면 그 파급효과는 현지로 돌아간다고 이야기하며 “이는 우리 건강과 경제 발전 그리고 지구 모두에게 좋다”고 강조했죠.

 

© Imperfect Foods 제공

‘못난이 사과’여도 맛있다면, 소비자에게 ‘사과(apple-ogize)’할 이유 없어! 🍎

2015년 미국에서 창업한 임퍼펙트 푸드(Imperfect Foods)도 못난이 농산물을 전문적으로 유통하고 있습니다. 임퍼펙트 푸드는 외관상의 이유로 대형 유통사에 판매되지 못한 못난이 농산물을 농가에서 직접 공급받아 판매하는데요. 기존 농산물보다 30~50%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죠.

또한, 프로듀스와 마찬가지로 못난이 농산물 판매를 넘어 꾸러미를 소비자 집까지 배달해주는 구독 서비스를 제공 중인데요. 소비자가 우편번호를 입력하면, 인근 지역에서 나고 자란 농산물을 모아 보낸다고 합니다.

필립 벤 임퍼펙트 푸드 CEO는 “편리하게 배송을 받으면서도 지속가능성에도 기여할 수 있는 식자재 수요가 급증한 덕분”이라며 “못난이 사과여도 맛있다면, 소비자에게 사과(apple-ogize)할 이유가 없다”는 명언을 남겼죠.

헝그리 하베스트(Hungry Harvest) 또한 임퍼펙트 푸드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못난이 농산물 유통 기업입니다. 미국 볼티모어에 본사를 두고 있는 헝그리 하베스트. 2014년 창업한 이 기업은 대형 농장과 농산물 유통 시장에서 버려진 과잉 제품을 수거해 가공 후 재판매하고 있습니다. 임퍼펙트 푸드와 마찬가지로 못난이 농산물 꾸러미를 고객 집까지 배송하는 구독 서비스를 제공 중인데요.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다양한 유형의 농산물을 오랫동안 보관하는 방법 및 기간에 대한 정보가 포함된 안내서도 함께 제공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죠.

 

© 왼 헝그리 하베스트를 이용한 소비자에게 제공된 농산물 보관 팜플렛 오 실제 배송된 제품 모습 Hungry Harvest 페이스북 갈무리

헝그리 하베스트 측에 따르면, 회사는 창업 후 지난해까지 2,900만 파운드(약 1만 4,500톤)의 농산물이 버려지는 것을 막았는데요. 이에 에반 러츠 헝그리 하베스트 설립자 겸 CEO는 미국내 공급망에서만 사소한 이유로 버려진 농산물 양이 연간 200억 파운드(약 1,000만 톤)에 달한다고 설명하며 “(우리는) 외모 때문에 버려지는 이들 농산물을 구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헝그리 하베스트와 임퍼펙트 푸드 모두 못난이 농산물 전용 앱을 구축해 운영 중인데요. 헝그리 하베스트는 농가 및 유통업자를 대상으로 못난이 농산물 공급망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앱을 운영 중이고, 임퍼펙트 푸드는 구독 서비스를 이용한 소비자를 위한 앱을 운영하고 있죠. 다만, 아이폰 iOS 앱스토어에서만 이용이 가능하다고.

 

+ 미국에선 못난이 농산물 관련 기업이 계속 등장 중! 🇺🇸
위 두 기업을 시작으로 미 전역에선 각 주(州)를 중심으로 현지 농산물을 유통·가공하는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했는데요. 2018년 뉴저지주에 설립된 미스핏츠 마켓(Misfits Market)은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하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구축해 빠르게 성장했고, 같은해 캘리포니아주에는 어글리 피클(Ugly Pickle Co)이란 스타트업체가 창업했는데요. 상품가치가 없는 채소와 과일을 재가공해 판매하고 있단 사실! 이밖에도 많은 기업이 탄생해 사업을 확장 중이죠.

 

© 미국 내 못난이 농산물을 유통하는 3개 업체 비교 사진 Avi Lalvani

세계적으로 못난이 농산물 유통 시장은 꾸준히 성장 중입니다. 국내에서도 임퍼펙트 푸드나 헝그리 하베스트처럼 못난이 농산물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을 쉽게 볼 수 있게 됐는데요. 아쉽게도 별도로 앱 서비스 운영까지는 활성화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물론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최근에야 떠올랐기에 국내에서도 관련 앱을 볼 가능성은 계속 열려있는데요.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편리한 앱을 이용해 못난이 농산물을 쉽게 구매하는 일이 일어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