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를 막을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꼽히는 비건(Vegan). 국내에서는 ‘완전채식주의’로 번역되는 이 용어는 채식주의자 중에서도 동물성 식품(고기, 우유, 달걀 따위)을 전혀 먹지 않는 적극적인 개념의 채식주의자를 뜻하는데요.
1950년대 비건 운동의 개척자로 불리는 레슬리 크로스 비건 소사이어티 부회장은 ‘인간에 의한 착취로부터 동물을 해방시키는 원칙’을 제안한 바 있는데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비건 단체인 비건 소사이어티(The Vegan Society)는 비건을 ‘동물이 없는 대안을 사용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죠.
이렇듯 동물권 인식에서 출발한 비거니즘이 어째서 기후변화를 막을 대안으로 꼽히게 되었을까요?
식탁에 오르기까지, 고기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3단계 🍗
유엔은 전 세계 가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 중 14.5%를 차지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쇠고기와 우유를 위해 사육되는 소는 가축 부문 배출량에서 약 65%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돼지와 닭이 그다음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았죠.
축산업의 온실가스 배출 분야는 크게 2가지로 나뉩니다. 전체의 45%를 차지하는 분야는 사료 생산인데요. 여기에는 토지 이용과 비료 및 화학약품 사용, 가축 분뇨의 토양 살포, 사료 생산 등이 포함되죠. 두 번째는 39%를 차지하는 장내 발효입니다. 분뇨 저장(10%)과 처리 및 수송(6%)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축산업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원인은 너무나 다양한데요. 복잡해 보이는 온실가스 배출 과정을 3단계로 정리했습니다.
1️⃣ 농장을 만들 때 🚜
숲과 나무는 주요한 온실가스 흡수원입니다. 문제는 숲이 가축을 기르기 위해 벌채되고 있단 것인데요. 숲과 나무는 광합성 과정에서 탄소와 온실가스를 흡수하지만, 벌채로 인해 저장된 탄소가 다시 대기 중으로 방출되죠.
이와 관련해 과학 저널 네이처에 지난해, 아마존의 탄소배출량이 흡수량을 넘어서기 시작했단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실렸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탄소흡수원인 아마존이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이제는 이산화탄소 배출원이 돼버렸단 것. 연구진은 대규모의 벌목과 토지 개간, 화재를 원인으로 꼽았는데요. 이렇게 만들어진 땅의 70%가량이 소를 키우는 데 쓰이고 있다고 밝혔죠.
2️⃣ 사료를 재배할 때 🌾
가축을 먹이는 사료를 재배하는 과정에서도 온실가스가 배출됩니다. 농업 과정에서는 땅을 경작하고 거름을 뿌릴 때 이산화탄소와 아산화질소 등의 온실가스가 배출됩니다. 특히, 아산화질소는 이산화탄소보다 온난화지수(GWP)가 310배나 높다고 알려졌는데요. 질소가 첨가된 합성비료로 인한 배출이 전 세계 아산화질소 배출량의 70%를 차지하고 있죠.
대체 단백질을 지지하는 비영리단체 굿푸드인스티튜트(GFI) 자료에 따르면, 오늘날 전체 농경지의 77%가 동물 사육에 사용되고 있는데요. 이에 비해 전 세계에 공급하는 칼로리 중 육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18%에 불과하죠.
3️⃣ 가축이 자랄 때 🐮
앞선 사례들이 간접적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였다면, 가축을 기르는 과정에서 동물이 직접 배출하는 온실가스도 있습니다. 특히, 소는 먹이를 소화하는 과정에 메탄이 발생하는 반추동물에 해당하는데요. 이를 장내 발효 과정이라고 부르죠.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1배 이상 강력한 온실가스입니다. 2021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 보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사육되는 소는 약 10억 마리로 다른 가축까지 포함하면 가축들이 매년 배출하는 메탄은 이산화탄소 약 3.1기가톤(Gt)에 이른다고.
또한, 가축 분뇨에서도 메탄과 아산화질소 등 온실가스가 발생합니다. 분뇨 속 질소가 산소와 만나면 아산화질소(N2O)가, 밀폐된 조건에서는 메탄(CH4)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비건 식단은 탄소발자국을 절반, 아니 4분의 1로 줄일 수 있음! 👣
비건 식단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탄소발자국은 현저히 줄어듭니다. 탄소발자국 감축 연구그룹인 쉬링크댓풋프린트(Shrink That Footprint)가 미국 농무부(USDA) 데이터를 분석한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위 그래프에 나와 있듯이 연구진은 식단 유형을 크게 ▲육류 선호, ▲평균, ▲소고기 제외, ▲채식주의, ▲완전 채식주의 등 5가지로 나눴는데요.
연구에 따르면, 육류 선호 식단의 탄소발자국은 인당 3.3톤CO2e*에 달했습니다. 비건 식단을 선택하면 그 절반도 안 되는 1.5톤CO2e으로 떨어지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식단에서 소고기만 줄여도 탄소배출량을 40% 가까이 줄일 수 있다는 것!
국가별 식단을 비교하면 비건이 탄소발자국에 미치는 효과를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요. 지난해 6월 미국 튤레인대학교 연구진이 국가별 식단 지침 연구를 진행한 결과, 인도 정부의 식단 지침이 가장 기후 친화적이었습니다. 독일, 인도, 네덜란드, 오만, 태국, 우루과이, 미국 등 7개국 중 가장 낮은 탄소발자국을 보였는데요. 인도 권장 식단의 탄소발자국은 하루 0.86kgCO2e으로, 가장 높은 탄소발자국을 보인 미국 권장 식단(하루 3.83kgCO2e)의 4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인도 정부 지침에 단백질과 유제품은 매우 낮은 대신 채소를 많이 섭취할 것을 권하는 것이 꼽혔습니다. 더불어 단백질 권장 사항은 두부와 콩류로만 구성됐는데요. 인도가 대표적인 채식 지향 국가라는 점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죠.
*CO2e: 이산화탄소환산톤, 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한 값.
축산업의 대가, 온실가스 배출만이 아니었다고?
탄소발자국이 낮은 비건 식단을 선택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데요. 여기에 더불어 간접적으로 온실가스가 감축되는 효과도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가축을 기르던 땅을 숲으로 바꾸거나, 탄소를 흡수하는 탄소농업을 짓는 등 축산업에 사용되던 토지를 기후 친화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더 큰 감축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인데요. 이를 경제학적 용어를 빌려 ‘탄소 기회비용’이라고 하죠. 여러 선택 요소 중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포기한 것들에 대한 가치와 비용을 경제학에서는 기회비용이라고 부르는데요.
2020년 과학 저널 네이처에 이를 연구한 보고서가 발표됐습니다. 미국 뉴욕대와 하버드대 연구진 등이 협력한 공동 연구였는데요. 연구진은 식단에서의 탄소 기회비용을 추정해 2050년까지 전 세계 식량 생산이 식물성 식단으로 바뀔 경우 격리할 수 있는 탄소배출량을 추산했습니다. 연구진은 이 경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제1실무그룹(WG1) 보고서’에서 발표한 카본 버짓의 99~163%에 달하는 332~547GtCO2e*를 격리할 수 있다고 발표했는데요. 이를 통해 파리협정의 목표인 1.5°C로 제한하는 데 성공할 확률은 66%로 추정됐죠.
즉, 육식을 선택한 대가는 축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뿐만 아니라, 온실가스를 감축할 ‘기회의 상실’이기도 했다는 것!
*GtCO2e: 기가이산화탄소톤. 1Gt는 10억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고기를 끊고 식단을 바꾸는 것은 어렵습니다. 음식은 개인의 선호이면서 동시에 문화이자 정체성이기 때문이죠.
이에 육식과 기후변화를 둘 다 잡으려 식물성 대체육과 배양육 등 대체 축산업에 도전하는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는데요. 소에 마스크를 씌우거나 해조류를 이용해 메탄 저감 사료를 개발하는 등 가축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기술 개발이 완전하지 않을뿐더러 배양육 생산의 에너지 다소비 문제, 동물권 논란 등 여전히 한계점이 노출되고 있는 상황.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과 동시에 육류 소비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