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온라인에서 상품을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품 구매가 간편해질수록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한 기업 간 암투는 치열해지기 마련입니다. 특히, 소비자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은 ‘저렴한 가격’이죠.
오늘날 저가 의류를 선보이며 빠르게 성장한 패션 브랜드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중국의 패션 전자상거래 플랫폼 쉬인(SHEIN). 중국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쉬인은 지난 8년 연속 매출 100% 초과 달성을 기록하는 등 그야말로 초고속 성장을 해왔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쉬인의 초저가 전략이 있습니다. 쉬인의 평균 상품 가격은 상의 5.99달러(약 7,000원), 원피스 9.99달러(약 1만 1,000원)으로 타 브랜드와 비교해 저렴한 가격대이죠. 그러나 쉬인은 지속가능성이 아닌 빠르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패션, 즉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생산되고, 빠르게 버려지는 패스트패션의 구조가 문제인 오늘날, 쉬인의 도약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쉬인은 어떻게 미국을 집어삼켰나 🇺🇸
2008년 중국 난징에 설립된 쉬인. 초기엔 해외 고객을 대상으로 웨딩드레스를 판매했고, 2012년부터 지금과 같은 전자상거래 플랫폼 형태로 발전해왔습니다. 쉬인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기점은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인데요. 2020년 쉬인의 매출은 100억 달러(한화 약 12조원)로, 전년 대비 250% 증가한 수치를 보였죠.
쉬인이 선보인 의류 상품은 자국인 중국 고객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쉬인은 국외 고객을 대상으로 하며, 현재 220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는데요.
쉬인의 성공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소셜미디어(SNS)를 공략한 마케팅입니다. 기존 브랜드는 SNS 마케팅을 위해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반면, 쉬인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중국의 숏폼 콘텐츠앱인 틱톡(TikTok)을 통해 Z세대(1995~2009년 사이 출생자) 마음을 사로잡았죠.
구체적으로 쉬인은 유명 인플루언서에게 옷을 제공하고, SNS 채널에 이를 업로드할 경우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마케팅을 진행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플루언서와 소비자를 가리지 않고, 직접 쉬인의 물건을 구입해 리뷰하는 ‘쉬인하울(SheinHaul)’ 콘텐츠가 주요 SNS 플랫폼에서 유행했는데요.
미국의 마케팅 분석기업 하이프오디터(HypeAuditor)에 의하면, 쉬인은 2020년 틱톡과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브랜드였습니다. 무려 3만 명이 넘는 인플루언서가 13만 4,000건에 달하는 멘션을 표시했는데요. 지난해 미국 투자은행 파이퍼 샌들러(Piper Sandler)가 발표한 쇼핑 웹사이트 선호도 조사 결과에 의하면, 쉬인은 나이키를 앞지르고 2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같은해 5월, 쉬인은 미국에서 아마존을 제치고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쇼핑 어플리케이션(앱)으로 등극하는데요. 심지어 그해 6월엔 쉬인이 미국 패스트패션 전체 매출 중 약 28%를 차지합니다. 이는 H&M이나 ZARA를 합친 것과 비슷한 규모였죠.
패션계 신흥 빌런, 쉬인 👿
쉬인이 발빠르게 성장할 수 있던 또다른 배경에는 빅데이터 분석이 있습니다. 쉬인은 최신 패션 트렌드와 소비자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각종 웹사이트 및 SNS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죠. 이후 200명이 넘는 전속 디자이너가 신속하게 시제품을 만든 후 공급업체를 끌여들여 생산을 진행하죠.
쉬인은 신제품이 플랫폼이 게시되면 소비자 행동을 모니터링하고, 수요와 재고 소진 상황을 예측해 빠르게 재생산에 도입하는데요. 아울러 쉬인의 알고리즘은 이전 구매자와 프로필이 유사한 다른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상품을 추천해 소비를 촉진하죠.
이러한 실시간 정보 분석과 소비자 구매 패턴 분석을 통해 쉬인은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많은 의류를 생산하는 브랜드로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쉬인과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환경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너무도 자명하단 사실입니다. 타 브랜드는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2~3주가 걸리는 반면 쉬인은 5~7일의 시간이면 충분하죠. 유명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ZARA가 1년간 선보인 디자인 총량을 쉬인은 단 두 달 만에 달성했는데요.
여기에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쉬인의 하울(Haul) 콘텐츠가 더해져 과소비를 유발하고, ‘한철 입고 버리는 옷’이란 인식을 심는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는데요. 쉬인이 선보인 의류상당수는 폴리에스터 같은 합성섬유로 만들어지며, 이를 매립할 경우 미세플라스틱이 방출돼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쉬인의 공급망을 둘러싼 비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브랜드 윤리 평가 사이트인 굿온유(Good on you)에 의하면, 2021년 패션투명성지수에서 쉬인은 0~10%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는데요. 굿온유는 쉬인의 노동 환경 등급을 ‘매우 나쁨’이라고 밝혔습니다. 공급망 중 어느 것도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 최소 임금, 노동 권리를 보장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죠. 또 워커라이츠컨소시엄(Worker Rights Consortium) 등 노동인권침해 감시단체들은 쉬인의 불투명한 경영을 꾸준히 지적했는데요.
그러나 쉬인은 현재까지도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운영 정책이나, 뾰족한 해결책 모두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각에서 제기된 비판에 쉬인은 성명을 통해 “소비자 요구와 재고 처리 과정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며 “이는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디자인 도용으로도 여러 차례 논란을 일으킨 쉬인 🧦
쉬인은 디자인 도용으로 여러 차례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쉬인은 프랑스 만화가 장 줄리앙 및 여러 예술가의 작품을 허락 없이 상품에 활용한 바 있고, 일부 상품이 미국의 인디 브랜드 벨퍼(Valfré) 상품을 도용한 것이 아니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얼마전에는 유명 신발 브랜드인 닥터 마틴(Dr. Martens),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Levi’s) 역시 쉬인이 자사의 디자인을 무단으로 도용한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죠.
패스트패션, 이젠 과감한 혁신 필요해! 🛍️
사실 이는 패스트패션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계속 화두가 되자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은 오랜 악습을 개선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죠. ZARA의 모회사인 인디텍스(Inditex)는 오는 2025년까지 유기농·재활용 면 등만 사용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또 영국의 패션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아소스(ASOS)는 2030년 넷제로를 목표로 오는 2027년까지 모든 의류를 재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환경을 고려해 포장할 것을 선언했죠. 쉬인과 마찬가지로 아소스도 매달 5,000개 이상의 신제품을 내놓고 있는데요. 아소스 역시 패스트패션을 부추긴단 비난해서 피해가지 못했으나, 적어도 순환디자인 가이드북 제작 및 순환패션 도입 등을 통해 의류폐기물을 감축하려 노력 중에 있죠. 아울러 H&M 역시 지속가능한 선택지를 포함한 컨셔스(Conscious) 컬렉션을 강화했습니다.
분명 이들은 흐름에 발맞춰 개선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본질적인 특성인 빠른 패션이란 화두는 변하지 않은 채로 말이죠.
이러한 가운데 쉬인은 지난해 11월 오랜 침묵을 깨고 디즈니와 휼렛패커드(Hewlett-Packard), JC 페니(JC Penney)에서 사회공헌 임원을 지낸 아담 윈스턴을 ‘글로벌 ESG 임원’으로 영입해 화제를 모았죠. 다만, 쉬인의 움직임에 대해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란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지속가능성 컨설턴트이자 작가인 엘리자베스 클라인은 쉬인의 움직임에 대해 “노동력을 착취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초고속으로 성장한 뒤 거대해지면 지속가능성 본부를 만드는 패스트패션 브랜드를 많이 봐 왔다”며 이는 그린워싱이고, 마케팅 게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죠.
패스트패션 브랜드는 빠른 제작 공정을 거쳐 저렴한 가격에 옷을 내보여야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이상 환경 오염의 주범이란 오명을 벗기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유기농 소재를 사용하고, 포장재를 간소화하고, 재활용률을 높인다 해도 여전히 빠르게 작동되는 시스템 안에서 머지않아 버려질 다량의 의류 상품을 쏟아낼 테니까요.
과열된 소비문화가 사그라들고, 패스트패션 브랜드 차원에서는 오래 지켜온 신념을 되짚어 볼 정도로 대대적인 혁신이 도래하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