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디자인’을 제품의 형상, 모양, 색채 등 미적 외관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순환경제의 시각에선 조금 다릅니다. 자원이 순환하기 위해서는 설계부터 순환이 의도돼야 합니다. 제품의 생산 방식을 원형으로 바꾸는 구체적인 설계 및 활동이 순환경제에서 주목하는 ‘디자인의 역할’이죠.

이러한 ‘순환디자인’에 적극적인 분야가 바로 패션업계인데요. 빠르게 입고 버리는 패스트패션의 문제가 계속 지적받고 있기 때문이죠. 순환경제 구축에 앞장서는 영국의 엘렌 맥아더 재단도 ‘패션 순환 디자인(Circular Design For Fashion)’이란 책을 발간했는데요.

이번 콘텐츠에서는 국외서적이란 장벽에 답답했던 독자분들을 위해, 지난 12일(현지시각) 무료로 배포된 순환디자인 가이드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 베스트셀러그룹이 진행한 ‘Sorting for Circularity Project(순환을 위한 분류 프로젝트)’_Bestseller 제공

최근 발간된 순환디자인 가이드(CIRCULAR DESIGN GUIDE)는 덴마크에 본사를 둔 글로벌 패션기업 베스트셀러그룹(Bestseller)이 내놓은 책입니다. 전자문서로 발간돼 누군가 쉽게 접근 가능한 것이 특징인데요. 베스트셀러는 이 책을 패션 디자이너와 제품 개발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순환디자인 4단계 : 원료, 생산, 사용, 회복 ♾️

베스트셀러 그룹은 책에서 순환디자인의 4단계로 원료, 생산, 사용, 회복을 꼽았습니다. 첫 번째, 원료(Raw Material) 단계에서는 섬유 생산의 환경적 영향을 따지는데요. 기존 원료보다 환경적 영향이 낮은 재료로서 재생 가능하거나 재활용된 섬유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죠. 섬유의 질을 따지는 기준 또한 환경적 영향으로, 가장 낮은 영향을 미치는 섬유를 최고(Best)로 분류하고 있는데요. 최고로 꼽힌 섬유 중에는 앞서 그리니엄이 소개한 리뉴셀이 개발한 혁신 소재 ‘서큘로오스’도 있단 것!

이어서 생산(Production) 단계에서는 ‘최적의 자원 사용’을 꼽았는데요. 원료를 가공하는 과정에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투입되는데 이 과정에서 낭비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를 위한 전략으로는 폐기물을 최소화하기 위해 ▲ 더 적은 폐기물을 만드는 디자인, ▲폐기물 비율 계산한 원단 패턴 디자인, ▲3D 디자인 활용한 샘플 줄이기 등이 제안됐습니다.

또한, 폐기물 최소화를 넘어 아예 제로웨이스트까지 나아가는 전략도 제시됐는데요. 해당 전략에는 ▲디지털 쇼룸, ▲원단 100% 활용한 패턴, ▲모든 원단 사용, ▲재단된 원단 폐기물 재활용 등이 담겼습니다.

 

© 순환디자인 4단계_Bestseller, greenium 편집

세 번째 단계인 사용(Use)에선 옷을 오래 입기 위해 고려할 사항을 ▲물리적 내구성, ▲감정적 내구성, ▲미적 내구성, ▲수리 가능성, ▲의류 케어(의복관리) 등 5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감정적 내구성(Emotional Durablity)’입니다. 고객이 옷을 계속 입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정서적 애착이 중요하단 점을 꿰뚫어본 것인데요. 베스트셀러그룹은 사람들이 옷을 더 오래 입거나 재판매하고 싶어하도록 주문 제작이나 숨겨진 메시지를 추가하는 방식을 권했습니다.

순환디자인의 마지막 단계는 회복(Recovery)입니다. 가이드는 디자인에서부터 재활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요. 물론 이 단계는 재활용 기술의 발전에 영향을 받는다고 명시해 뒀습니다. 재활용 기술은 지금도 발전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럼에도 현재의 재활용 기술은 특정 섬유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순환디자인에서는 분해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보았죠.

이에 서로 다른 소재를 사용할 경우 분리가 가능하도록 설계하고, 탈부착식의 부재료를 사용하는 전략을 권했습니다.

 

© 베스트셀러그룹의 순환디자인이 적용된 .OBJECT 브랜드 제품_Bestseller

좋은 스웨터, 더 좋은 드레스, 최고의 재킷! 👍

베스트셀러그룹은 순환디자인 가이드에서 실제 현장에서 적용될 수 있도록 패션드로잉을 좋음·더 좋음·최고의 3단계로 나눠 그림과 함께 설명합니다.

좋은 디자인이란 친환경적인 원료를 사용하고, 설계에서부터 재활용을 고려한 것인데요. 베스트셀러그룹이 설정한 3단계는 최고(Best) 단계로 올라갈수록 새로운 기준이 추가될 뿐만 아니라, 기존에 적용된 기준도 더 향상됩니다.

예컨대 좋은 스웨터는 원료 단계에서 환경에 최대한 영향이 덜 가는 100% 유기농 면을 사용했다면, 최고의 스웨터에는 폐기물을 순환해 만든 100% 재활용 폴리에스테르(rPET)를 사용하는 것처럼요.

이처럼 여러 요소의 구성을 통해 디자이너는 자신의 야망과 현실적 제약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순환디자인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 Bestseller, greenium 편집

그럼 베스트셀러그룹이 제안한 ‘최고’ 단계의 순환디자인은 어떤 것일까요? 베스트셀러그룹은 재킷을 예시로 설명하는데요. 최고 단계 재킷에 담긴 순환디자인 요소 7가지를 순서대로 따라가 보면.

1️⃣ 원료에서는 최고의 재료로 100% 재활용 폴리에스터를 사용.

2️⃣ 디자인에서부터 단일 소재를 적용해 재활용성을 고려했죠.

3️⃣ 생산 단계에서는 재단 폐기물을 수거하고 재활용해 폐기물을 방지하는데요.

4️⃣ 사용 단계에서는 내구성 측면에서 물리적 내구성과 미적 내구성, 수리 가능성을 고려했죠.

5️⃣ 손쉬운 재활용을 위해 분해 설계까지 적용하면, 그래도 끝이 아닙니다. 여기까지는 ‘더 좋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이죠. 최고의 재킷에는 여기에 2가지 요소가 더 추가되는데요.

6️⃣ 더 오래 사용될 수 있도록 양면 착용이 가능하고

7️⃣ 더 손쉬운 재활용을 위해 단추 등 부재료까지 분리 가능하도록 설계됐죠.

재킷의 스케치화를 보면 양면 사용이 가능하면서도 쉽게 탈부착이 가능한 단추, 재단 폐기물을 재활용한 라벨 등 순환디자인의 요소가 실제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볼 수도 있습니다.

 

© H&M이 2022년 출시를 예고한 서큘레이터_H&M 홈페이지 갈무리

순환패션을 이끌어가기 위해 나선 기업은 비단 베스트셀러그룹만이 아닙니다. 영국의 온라인 패션 및 화장품 소매업체인 아소스(ASOS)는 지난해 11월, 지속가능한 패션 센터(CSF)와 협업해 아소스 순환디자인 가이드북을 출시했습니다. 같은 달 글로벌 패션브랜드 H&M은 의류 제작 과정의 모든 단계를 고려할 수 있도록 돕는 서큘레이터(Ciculator)의 일환으로 관련 가이드를 선보였죠.

한편,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도 순환디자인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는데요. 2019년에 발간된 순환:미래 디자인을 위한 가이드(Circularity: Guiding the Future of Design)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이키는 디자인의 미래를 위해 순환 개념을 공유하고자 작성했다고 밝혔죠.

이처럼 글로벌 패션업계는 친환경 상품 제작, 친환경 선언을 넘어서서 기업 자체가 순환경제를 실현하려 노력하고 있는데요. 한국에서도 제품 하나, 라인 하나를 넘어 기업 자체가 순환경제를 선도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