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플라스틱을 영원히 재활용하는 꿈의 기술이 있다?

플라스틱 게임 체인저 두고 기술경쟁 ↑

여러분은 플라스틱을 몇 번이나 재활용할 수 있는지 아시나요? 사실 이 질문에는 플라스틱의 재활용 횟수가 한정돼있단 전제가 깔려있는데요. 재활용 가능 횟수가 한정돼있단 사실이 이해가 잘 안 갈 수도 있습니다. 몇 번이든 녹였다가 굳혀 재활용할 수 있는 유리나 철과 달리 플라스틱은 특유의 분자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인데요.

플라스틱의 생애주기(라이프사이클)에서 살펴봤듯, 플라스틱은 분자가 특정한 반복 구조로 연결돼 만들어진 중합체입니다. 분쇄하고 녹이는 과정에서 연결 구조가 짧아지면서 품질이 저하되죠. 보통 페트병의 경우 2~3번가량 재활용이 가능한데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한’ 플라스틱 재활용을 꿈꾸는 기술이 있습니다. ‘도시유전’으로도 불리는 플라스틱의 화학적 재활용을 만나보시죠.

 

해중합, 플라스틱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일반적으로 폐플라스틱은 분쇄를 거쳐 칩이 되고, 이를 다시 녹여 원하는 모양으로 성형하는 일련의 재활용 과정을 거칩니다. 기계적 장비를 사용한단 점에서 ‘기계적 재활용(물리적 재활용)’으로 불립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기계적 재활용에서 플라스틱을 분쇄하고 녹이면서 분자의 연결 구조가 짧아지는 게 문제라면, 연결 구조를 다시 만들어주면 어떨까요?

이러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기술이 바로 해중합(Depolymerization)입니다. 플라스틱은 저분자 물질인 단량체(모노머)가 1만 개 이상 결합(중합)된 고분자 물질인데요. 해중합은 플라스틱의 중합을 화학물질이나 열을 가해 역행시키는 과정을 말합니다.

즉, 화학 분해를 통해 플라스틱을 원료 단계로 되돌린다는 것. 그 결과물로 플라스틱의 원료인 단량체 또는 짧은 중합체인 올리고머 등이 생산되죠.

이처럼 해중합을 통한 재활용은 분자의 결합을 분해한다는 점에서 ‘화학적 재활용’에 속하는데요. 해중합을 통해 생산된 단량체나 올리고머는 플라스틱 제조에 사용되는 것과 거의 같습니다.

이를 원료로 중합해 만든 플라스틱은 품질이 원유로 만든 기존 플라스틱과 흡사하다는 장점이 있죠.

 

▲ PET(Polyethylene terephthalate) 화학식. ©iStock

기계적 재활용이 활성화되기 어려웠던 이유는 플라스틱에 음식물 등 오염물질이 묻어 있거나 재활용이 안 되는 첨가물이 들어간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는데요.

화학적 재활용은 용해 과정에서 정제가 가능해 첨가제, 색상, 오염물질을 분리할 수 있단 점에서 장점이 있습니다. 재활용 가능한 재질이지만 선별이 어려워 버려지던 폐플라스틱까지도 재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거죠.

그렇다면 해중합을 통해 무한히 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해중합은 플라스틱 중에서도 페트(PET)와 폴리아미드(PA), 폴리우레탄(PU) 같은 특정 종류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페트와 함께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쓰는 폴리프로필렌(PP)과 폴리에틸렌(PE)은 해중합이 불가능한데요. 이를 재활용할 수 있는 또다른 화학적 재활용 방법도 있습니다.

 

해중합 안 되는 PE·PP,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

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재활용하는 방법은 해중합 외에도 유기용제 기반 정제(Solvent-based Purification)열분해(Pyrolysis) 방식이 있습니다. 모두 화학물질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해중합으로는 처리할 수 없는 PP와 PE 등의 제품도 재활용할 수 있죠. 이 둘의 차이를 간단하게 알아본다면.

 

©그리니엄

1️⃣ 유기용제 기반 정제는 유기용제를 이용해 플라스틱을 녹이는 방식인데요. 특정 용매에 폐플라스틱을 녹여 오염물질과 첨가제 등 불순물을 걸러내고 순수 폴리머(중합체)를 회수할 수 있죠. 새로운 중합 과정 없이 플라스틱 제품으로 바로 생산할 수 있는 순수 폴리머가 생산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유기 용제의 가격이 비싸고, 정제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섞인 유기 용제 폐기물이 남는다는 문제가 있죠.

2️⃣ 열분해는 말 그대로 고온의 열을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저산소·무산소 환경에서 플라스틱을 고온(300–900°C)으로 가열하면 플라스틱이 탄화수소로 분해된다는 점을 이용하는데요. 그 결과물로 가스와 오일, 기타 잔류물 등이 생산되죠. 석유나 천연가스처럼 연료로 사용할 수 있고 플라스틱의 원료인 나프타를 뽑아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열분해는 혼합·복합 플라스틱을 처리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는데요. 그동안 기계적 재활용을 하기 위해서는 플라스틱의 분류가 필수적이었습니다. 물성이 같은 플라스틱이어야 같은 온도와 조건에서 녹여 다시 성형할 수 있기 때문이죠.

문제는 소비자들이 모든 플라스틱을 재질별로 분리배출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겁니다. 가령 즉석밥 용기나 과자 포장지 같은 복합 플라스틱은 소비자가 분리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죠.

이러한 ‘OTHER’ 표기의 플라스틱 상당수는 재활용이 어려워, 소각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허나, 열분해는 PET나 PA 등 일부 플라스틱을 제외하고는 복합 플라스틱 대다수를 오일이나 가스로 분해할 수 있단 것.

 

©Pixabay

도시유전, 플라스틱 문제의 게임 체인저 될까? 🛢️

앞서 살펴봤듯 플라스틱의 화학적 재활용은 기존 기계적 재활용의 단점을 극복하고 플라스틱에서 플라스틱으로의 진정한 순환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받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화학적 재활용을 가리켜 플라스틱을 지속가능하게 만들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고 보는 시각도 있죠.

게임 체인저란 기존의 상황이나 활동을 크게 변화시키는 사람, 사건, 아이디어 등을 말하는데요. 화학적 재활용을 통하면 생산-소비-폐기로 이어지는 선형의 라이프사이클을 순환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대는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탄소중립을 위한 한국형(K) 순환경제 이행계획’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계획에는 폐플라스틱의 열분해 처리 비중을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됐는데요.

이미 작년 9월부터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현대오일뱅크, SK지오센트릭, GS칼텍스 등 국내 석유·화학 기업에서 실증 특례를 진행하고 있죠.

한편, 정책 홍보 기사와 달리 해외에서는 화학적 재활용 기술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효율성, 오염물질 배출, 순환성 등 여러 쟁점이 부딪히고 있는데요. 다음 편에서는 꿈의 기술로 불리는 화학적 재활용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들과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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