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공급망 실사법’으로 불리는 유럽연합(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

기업 공급망 전반의 인권·환경 관련 기업 책임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유럽이사회가 지난해 12월 합의안을 채택했고, 오는 5월경이면 유럽의회에서 표결될 예정입니다.

CSDDD는 EU의 여러 환경규제 중에서도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국무역협회(이하 무협) 산하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2023년 주목해야 할 EU 주요 환경규제와 대응전략’ 보고서에서 국내에 가장 큰 부담이 될 규제 중 하나로 CSDDD를 꼽았습니다.

올해 국내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주요 현안으로 떠오른 CSDDD가 어떤 내용인지, 조금 더 자세히 정리했습니다.

▲ CSDDD 적용 프레임워크 ©PwC Luxembourg, greenium 번역

기업에 지속가능성 촉구한 EU, 이젠 ‘실사’도 의무화한다고? 🔍

지난해 2월 23일(현지시각),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인권과 환경에 대한 기업의 실사와 정보 공개 책임을 의무화하는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초안을 공개했습니다.

이는 2021년 3월 유럽의회가 기업의 공급망 실사 의무화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지 약 1년 만이었습니다.

CSDDD 초안에 따르면, 인권·환경 관련 공급망 내 잠재 영향에 대해 ▲식별 ▲예방 ▲피해구제 조치 시행 등이 의무화됩니다.

구체적으로 CSDDD 적용 대상 기업은 인권·환경에 대한 실사 요구사항을 포함하도록 기업 정책을 수정·신설해야 합니다.

그다음 공급망 내 인권·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거나, 끼칠 가능성이 있는 지를 실사를 통해 식별(파악)해야 합니다. 실사를 이행한 뒤에는 관련 내용을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합니다.

실질적·잠재적 영향을 파악하고 이를 제거하거나 최소화·예방 의무도 부여됩니다. 피해가 일어날 경우 피해보상 등 구제절차도 마련해야 합니다. 이들 의무를 위반 시에는 벌금 부과 등의 제재를 받으며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ESG 관련 규제들이 기업의 보고를 목표로 하는 반면, CSDDD에는 ESG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실제로 수행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무엇보다 더 확실한 이행을 강조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EU 역내외 대기업 대상…“중소기업도 파급 미칠 것” 🇪🇺

CSDDD의 적용 대상은 일정규모 이상의 EU 역내외 대기업입니다. 중소기업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지난해 12월 합의를 통해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초안에는 명시됐습니다.

CSDDD 적용 대상은 ▲EU 역내·외 여부 ▲직원수 ▲매출액 등을 기준으로 나뉩니다.

*직전 회계연도 기준

 

먼저 직원수 500인 이상(역내)·연매출 1억 5,000만 유로 이상(역내외) 대기업이 CSDDD의 적용을 받습니다. 초기 EU 집행위가 제안한 CSDDD 초안의 적용 대상은 대기업만 해당됐습니다.

이후 유럽의회의 제안으로 직원수 250인 이상(역내)·연매출 4,000만 유로 이상(역내외) 기업들도 CSDDD 적용을 받게 됐습니다. 이 경우 해당 기업의 고영향 섹터(High-impact Sector)에서의 매출이 2,000만 유로 이상일 경우로 한정됩니다.

고영향 섹터는 말 그대로 인권과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큰 산업 분야를 말합니다. 섬유·가죽 생산 및 유통, 옷·신발 등 패션 분야, 농축수산·식품업, 원유·천연가스 등 원자재 생산, 철강 생산·유통 등이 해당됩니다.

중소기업은 CSDDD 적용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허나, 원청기업이 적용 대상일 경우 실사 지침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CSDDD 초안에는 중소기업에 대해 EU 회원국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단 제언이 담겼습니다. EU 회원국이 웹사이트, 플랫폼 등을 통해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재정적 지원 정책 제공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별개로 EU 집행위는 CSDDD 적용 대상 기업이 공정하게 그리고 단계적으로 자사의 공급망 내 중소기업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중소기업 지원의 예시로는 ▲저리대출 ▲파트너십 ▲대응 가이던스 지원 등이 소개됐습니다.

 

▲ 2021년 EU의회 결의안 채택 이후 CSDDD 입법 흐름도. ©greenium

연내 발효될 CSDD, 꼭 체크해야 할 변경사항 두 가지! ✅

CSDDD 초안은 약 10개월 간의 논의를 거쳐 지난해 12월, 유럽이사회 합의까지 마쳤습니다. 현재는 유럽의회에서 논의를 거치는 중이며, 오는 5월 의회에서 표결될 예정입니다.

이 과정 달라진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실사 부문 정의 변경…“규제 완화돼” ⚖️

EU 집행위 초안에서는 실사 부문을 ‘밸류체인(가치사슬)’로 정의했습니다. 여기에는 기업의 생산·유통(업스트림)뿐만 아니라 제품·서비스 제공 단계(다운스트림)까지 전반이 포함됩니다.

유럽이사회는 이 정의를 ‘기업활동사슬(Chain of activity)’로 변경했습니다. 이에 따라 실사 부문은 업스트림 전반과 다운스트림 일부로 한정됩니다. 이로 인해 은행이 인권침해 사업에 자금을 제공해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단 지적도 나왔습니다.

 

2️⃣ 실사 대상에 ‘기후대응’ 포함돼 🌡️

유럽의회 환경위원회(ENVI)는 지난 2월 9일(현지시각) 표결을 통해 기업의 공급망 실사 대상으로 기존 인권·환경에 기후(Climate)를 포함하란 입장을 확정했습니다.

CSDDD에 기업의 탄소배출 감축 의무 요건을 추가하고, 별도 환경 관련 카테고리를 추가해 ‘환경에 대한 부정적 영향’의 정의를 명확히 하란 내용입니다. 다만, 구속력은 없습니다.

실제 반영 여부는 올 상반기 나올 최종 의회 입장에서 알 수 있습니다. 3월 중 CSDDD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무위원회의 표결과, 5월 유럽의회 본회의 표결 등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조건부로 그룹 차원의 실사가 허용되고, 적용 범위에 연금기관과 대체펀드매니저(AIFM) 등이 추가되는 등의 변경 사항이 있습니다.

 

▲ 프랑스 실사의무화법으로 제소된 첫 기업은 글로벌 에너지기업 토탈(Total Energies)이었다. 2019년 프랑스 시민단체는 토탈의 우간다 및 탄자니아 유전 개발 사업이 환경 파괴 및 기후변화 가속화 등을 유발한다고 제소했다. ©Les Amis de la Rerre France

CSDDD 파급 효과 궁금하다면? “고개를 들어 프랑스를 보라!” 🇫🇷

EU 법 체계에 따르면 지침(Directive)은 지침 발효 후 2년 이내의 회원국별로 입법 과정을 거쳐 적용됩니다. EU 회원국마다 법안 구체 내용은 달라질 수 있으며, 실질 적용까지도 상당 기간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일부 EU 회원국은 자체적으로 공급망 실사에 대한 법률을 이미 도입했거나 준비 중입니다.

가장 먼저 공급망 실사 법률이 시행된 곳은 프랑스입니다. 프랑스는 2017년 실사의무화법(Duty of Vigilance Law)을 제정했습니다. 법에 따르면 직원 5,000명 이상 프랑스 소재 기업 또는 전 세계 직원 1만 명 이상의 해외 소재 기업에 인권·자유·환경 관련 공급망 실사 의무가 적용됩니다.

작년 3월 기준 글로벌 에너지기업 토탈(Total Energies), 세계 1위 상수도기업 수에즈(Suez) 등 7개 기업이 환경오염·생물다양성 훼손·노동자 인권침해 등으로 ‘공식경고(mise en demeure)’를 받거나 피해보상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 IBK경제연구소는 중소기업의 공급망 실사 대비를 위해 금융 지원을 포함해 중소기업 맞춤형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PwC Luxembourg

한국 중소기업 110곳, CSDDD 적용받아…“맞춤형 지원 필요해” 🇰🇷

CSDDD 최종안은 올여름 EU 집행위·유럽의회·유럽이사회의 3자 협의를 거쳐 연내 발효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CSDDD에 대한 우리 기업의 대응은 여전히 부족하단 분석이 나옵니다. 지난 2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기업 300곳을 설문조사한 결과, 원청기업 48.2%·협력업체 47.0%가 공급망 실사에 별다른 대응 조치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의 대비가 시급합니다. 지난 7일 IBK경제연구소는 현재 계획대로면 CSDDD가 연내 발효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EU 수출 중소기업 대부분이 영향을 받을 것이며, 섬유·철강 등 고영향 섹터의 경우 실사비용, 소송비용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2년 3월 기준 EU 수출 중소·중견기업 중 실사지침 고영향 섹터에 적용될 국내 수출기업은 110곳에 달합니다.

이 때문에 ▲업종별 ESG 가이드라인 제공세제 지원 확대ESG 전문인력 양성ESG 금융 지원 등 중소기업 맞춤형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IBK경제연구소는 제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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