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를 만들기 위해선 어떤 재료가 필요할까요?

맥주의 주재료는 크게 물, 보리(맥아), 효모 그리고 홉(Hops)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칭해 맥주의 4대 구성요소라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홉은 맥주에 다채로운 향과 쓴맛을 더해주는 작물입니다. 홉의 종류만 300여개. 오렌지, 레몬, 자몽 등 맥주의 여러 맛은 홉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맥주의 보존을 돕는 성분과 거품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요소 또한 홉에 따라 결정됩니다.

 

미국·독일 등 주요 ‘홉 생산국’ 생산량 감소…“원인은 기후변화” 📉

홉은 일조량과 강수량이 풍부한 온화한 날씨에서 주로 재배됩니다. 대개 북미 북서부를 비롯해 독일과 체코 등 중부유럽 쪽이 주요 홉 재배지입니다. 독일과 미국의 경우 전 세계 홉 생산량의 80%를 담당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문제는 홉이 기후변화에 취약한 주요 작물이란 사실입니다. 이미 기후변화로 인한 고온과 가뭄이 홉의 품질과 생산량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주요 홉 생산국의 재배자협회에 따르면, 2022년 미국 내 홉 생산량은 전년 대비 12% 감소했습니다. 같은기간 독일은 21%, 체코는 40% 이상 홉 생산량이 감소했습니다. 이들 국가 모두 지난해 여름 이상고온과 폭염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이에 영국에서는 혹독한 여름을 견딜 신품종 홉을 개발하고 있고, 미국은 아예 재배지역을 알래스카 같은 더 높은 위도로 옮기려 하고 있습니다. 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연구진은 아예 홉 없이 맥주를 만드는 법을 개발했습니다.

 

▲ 스페인 애그테크 스타트업 에코노케는 수직농장에서 홉을 재배하고 있다. 이 기업은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 일대에서 홉 재배를 위한 수직농장 3개를 운영 중이다. 사진은 수직농장에서 재배되는 홉을 연구원들이 관리하는 모습. ©Ekonoke

에코노케 “수직농장서 홉 재배…물소비량·탄소발자국 기존 대비 15배 ↓” 🍺

스페인 애그테크(AgTech) 스타트업 에코노케(Ekonoke) 또한 현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에코노케 공동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이네스 사그라리오는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고온과 폭우 등으로 인해 최근 10년간 홉의 품질과 생산량 모두 저하됐다”며 “이 때문에 농부들이 홉 재배를 포기하고, 다른 작물로 전환하는 사례를 봤다”고 설명합니다.

에코노케 산하 연구개발(R&D) 부서에서 기후취약성 작물을 식별한 결과, 목록 최상단에 홉이 올라갔습니다. 이에 에코노케는 수직농장(Vertical Farm)에 주목했습니다.

오랜 실험 끝에 에코노케는 수직농장에서 홉 재배에 성공했습니다. 이 회사는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 일대에서 총 3개의 홉 재배용 수직농장을 운영 중입니다. 이를 위한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사그라리오 CEO는 회상했습니다.

그는 “홉의 성장은 양상추 등 잎이 많은 채소나 허브보다 훨씬 복잡하다”며 “(홉의) 단계별 성장조건을 최적화하고 최대화하기 위해 성장 환경을 신중하게 조정해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영양분 배양액·조명 밝기·수분 공급량 등 세세한 조건에 따라 홉의 맛과 품질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 스페인 마드리드 인근에 위치한 에코노케 수직농장 시설에서 홉이 재배되는 모습. ©Ekonoke

11명으로 구성된 화학자 및 생명공학자 등이 여러 실험을 진행한 결과, 홉 재배에 최적화된 조건을 찾았습니다. 다만, 회사 측은 구체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비공개라고 밝혔습니다.

에코노케에 의하면, 스페인 수직농장에서 재배된 홉은 기존 노지 재배 대비 물소비량이 15배 적습니다. 탄소발자국도 마찬가지로 15배 적을뿐더러, 엄격한 통제 환경에서 재배된 덕에 살충제가 필요하지 않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습니다.

에코노케는 궁극적으로는 수제맥주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쓴맛과 과일 향을 담은 홉의 생산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에코노케 CEO “양조장 인근에 홉 재배 위한 수직농장 건설하고 싶어” 🥬

에코노케의 수직농장에서는 연간 최대 52회까지 홉 수확이 가능합니다. 이미 해당 수직농장에서 재배된 홉은 실제 양조장에 제공되고 있습니다. 식음료 기업 ‘에스트렐라 갈리시아(Estrella Galicia)’는 에코노케에서 수확한 홉을 이용해 만든 맥주를 스페인 현지에서 판매 중입니다.

사그라리오 CEO는 가까운 미래 양조장 옆에 홉 재배를 위한 수직농장을 건설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맥주 발효 과정에서 방출된 이산화탄소(CO2)를 포집해 수직농장에서 재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사그라리오 CEO는 “맥주 발효 과정에서 나온 CO2를 재사용해 홉의 광합성 속도를 높이고 싶다”며 “또 (맥주) 제조 중 나온 물도 재활용함으로써 순환경제에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 (위) 에코노케 공동설립자인 이네스 사그라리오 CEO와 아나 사에즈 라르시아 운영책임자의 모습. 두 사람은 회사의 비전이 “기후문제로부터 맥주를 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래) 왼쪽부터 에코노케 수직농장에서 수확 직전인 홉의 모습과 수확한 홉을 들고 있는 직원의 모습. ©Ekonoke

높은 에너지가격 장벽 남아…“수직농장 통해 생물다양성 회복 기여 가능” 🌱

유명 맥주 버드와이저를 소유한 세계 1위 맥주 기업 ‘앤하이저부시 인베브(AB-INBEV·이하 AB인베브)’도 에코노케에 주목했습니다. 에코노케의 수직농장 사업은 AB인베브의 지속가능성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의 일부입니다.

에코노케는 지난해 확보한 420만 유로(약 62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바탕으로 스페인 북서부에 1,200㎡ 규모의 공장을 건설 중입니다. 올해 6월 말에 완공될 예정이며, 에코노케는 해당 시설에서 연간 5,000kg의 홉을 수확할 것으로 목표로 합니다.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러시아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세계적인 에너지위기와 공급망 대란은 에코노케에게도 험난한 장벽입니다. 윌리 부호저 AB인베브 글로벌 홉 조달 담당이사 또한 높은 에너지가격과 생산비를 우려했습니다.

다만, 부호저 이사는 치솟은 에너지가격이 정상화될 것으로 낙관했습니다. 또 오늘날에는 홉 없이는 맥주를 만들 수 없는 만큼 홉이란 특수 품종에 대한 양조장과 기업의 수요가 계속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사그라리오 CEO는 영국 더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홉은) 변화하는 온도를 견딜 수 없거나, 질병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에코노케는) 더는 재배되지 않는 품종을 재배함으로써 생물다양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2021년 미국 에어로팜 또한 수직농장에서 홉 재배에 성공했다. 수직농장에서 재배된 홉은 AB인베브의 ‘구스 아일랜드’ 맥주 제조에 사용됐다. ©AeroFarms

에어로팜도 2021년 수직농장서 홉 재배 성공…“기후적응 도울 수 있어” 😮

수직농장에서 홉을 재배하려는 시도가 에코노케가 처음은 아닙니다. 2021년 미국 유명 애그테크 기업 에어로팜(AeroFarms) 또한 수직농장에서 홉 재배에 성공했습니다. 에어로팜 수직농장에서 재배된 홉은 실제 판매용 맥주 제조에 사용됐습니다.

이밖에도 수직농장에서 코코아를 재배하기 위해 미국 곡물 대기업 카길(Cargill)과 파트너십을 맺은 바 있습니다. 에어로팜 공동설립자 겸 CEO인 데이비드 로젠버그는 이러한 시도가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로젠버그 CEO는 “(기후문제로 인한) 이상기후와 환경적 스트레스가 심해짐에 따라 농업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는 수직농장이 농업 시스템의 기후적응을 도울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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