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보이는 조형물은 소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칠레의 예술가 겸 건축가인 디자이너 말레 우리베 포레스의 ‘소금 상상(Salt Imaginaries)’이란 작품입니다. 소금 결정화로 만든 설치물 뒤로 소금 패널로 만든 벽이 전시돼 있는데요.

포레스 외에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소금을 재발견하기 위한 디자인 작업들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소금의 가치를 다시 질문하는 것.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소금이 다양한 자원 채굴 과정에서 부산물이자 폐기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리니엄에서는 소금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원 낭비에 대한 경고를 전달한 디자이너들을 만나봅니다.

 

▲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리튬 채굴 현장 파란색의 증발연못왼이 햇빛을 받아 증발하면 노란색 탄산리튬오으로 물든 고농도 소금물로 변한다 아래 사진은 세계 2위 리튬 생산기업인 SQMSociedad Quimica y Minera de Chile이 운영 중인 리튬 염호의 모습 ©Mále Uribe Forés위 Tom Hegen아래

포레스가 주목한 곳은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입니다.

칠레는 반도체 및 배터리의 필수 부품인 리튬의 세계 2위 생산국입니다. 특히, 아타카마 사막은 하얗게 빛나는 소금 결정으로 너른 벌판과 푸른 호수가 아름다운 지역인데요. 바로 이 소금 결정에 리튬이 함유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리튬이 함유된 소금 호수에서 물을 끌어와 증발연못에 가두고 리튬이 농축된 소금물을 얻습니다. 정제과정을 거치면 리튬 화합물과 함께 많은 양의 소금과 화학물질이 폐기물로 배출됩니다.

재생에너지 설비 및 전기자동차 수요가 급증하는 등 세계 기후대응이 본격화되자 아타카마 사막 내 리튬 채굴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오염으로 안데스 지역 내 희귀동물 개체수가 점점 줄고 있을뿐더러, 각종 수목이 고사하는 등 생태계 파괴 문제가 불거진 상황입니다.

 

▲ 포레스는 아타카마 사막에서 소금폐기물이 자연에서 형상화된 모습위을 보고 영감을 받아 소금폐기물을 활용한 타일 개발아래을 시작했다 ©Mále Uribe Forés

포레스는 이에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그는 “아타카마 사막을 방문했을 때, 소금폐기물이 자연스럽게 돌과 흙에 엉겨 형상화되는 모습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칠레 및 영국 화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소금폐기물과 석고를 사용해 안정적인 구성을 만드는 실험을 거쳤습니다. 이후 리튬 채굴 현장에서 나온 소금폐기물을 사용해 800개가 넘는 삼각형 타일을 제작했습니다.

이는 세계 최대 리튬 생산업체인 미국 화학기업 앨버말(Albemarle)과 협업한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리튬 추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금폐기물에 대한 관심을 환기고 새로운 가치를 재발굴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 수세미로 감싼 가구를 고농도의 증발연못에 담그면 5~9개월 뒤 소금 결정이 맺힌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Erez Nevi Pana

에레즈 네비 파나 또한 소금 폐기물을 활용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동물권운동가 겸 소재 디자이너인 그는 사해에서 매년 2,000만 톤의 소금이 광물 채굴의 부산물로 배출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파나의 작업 방식은 간단합니다. 수세미로 나무의자와 조각품을 감싸고 리튬 채굴 현장의 증발연못에 담그면 끝인데요. 5~9개월이 지나면 소금 결정으로 반짝이는 작품이 물속에서 탄생합니다.

그는 2014년부터 해당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자원 낭비와 광물 채굴로 인한 환경 문제를 알리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파나는 설명했습니다.

 

▲ 에레즈 네비 파나는 사해의 광물 채굴로 인한 천연자원 고갈과 환경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2014년부터 사해 소금을 활용한 디자인 가구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Erez Nevi Pana

사해에서는 세계 4대 칼륨 생산기업이자 이스라엘 최대 자원기업 사해조업회사(Dead Sea Works)를 비롯해 많은 기업이 칼륨과 브롬 등의 광물을 채굴하고 있습니다.

사해에서 채굴된 칼륨은 비료 산업의 원료로 주로 사용됩니다. 광산 채굴 대비 비용이 저렴해 사해 채굴은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파나는 “기후변화와 천연자원 고갈이 지구를 변화시키고 있다”며 “소홀히 하는 재료에 대해 반성하고 재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 2021년 파나 디자이너가 선보인 소금으로 만든 대리석 질감의 건축 자재위와 프랑스 순환디자인 연구소 아틀리에 루마에서 개발한 소금 패널아래 ©Erez Nevi Pana위 Atelier Luma아래

최근에는 소금폐기물을 활용해 건축 자재를 만드는 프로젝트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파나는 지난 2021년에는 사해에서 채취한 5톤의 소금으로 벽돌 등 건축자재를 선보였습니다. 그는 대량의 소금폐기물을 소비하는 방식을 고민하게 된 이유로 점차 보편화되고 있는 담수화 플랜트를 꼽았습니다.

최근 전 세계에서 물 부족이 심화됨에 따라 담수화 플랜트가 증가하는 상황. 이 때문에 지역 폐기물을 건설 자재로 사용한다면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인데요.

이밖에도 프랑스 아를에 위치한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순환디자인 연구소 ‘아틀리에 루마’에서도 지속가능한 건축 자재로써 소금 패널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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