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영국과 14개 영연방 왕국의 군주임을 선포하는 대관식이 지난 6일(현지시각)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됐습니다. 각국 정상 100여명 등 203개국 대표가 대관식에 참석했습니다.

찰스 3세가 9살에 왕세자로 책봉된 뒤 65년 만에 치러진 대관식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립니다.

이번 대관식은 70년 전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때보다 규모가 줄었다고는 하나, 최소 1억 파운드(약 1,700억원)의 예산이 사용됐습니다. 영국 경제가 고물가로 훠청대는 상황이라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영국 왕실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리 곱지 않습니다. 대관식이 치러진 날, 런던 곳곳에서는 군주제 폐지를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의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대관식은 영국 사회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국가적인 행사란 점에서 온 세계의 관심과 이목이 쏠렸습니다.

왕세자 시절부터 50여년 넘게 기후환경문제에 목소리 내오던 찰스 3세. 새로운 군주의 시대가 영국의 기후정책에는 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 2021년 영국 글래스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찰스 3세당시 왕세자가 참석한 모습 ©Number 10

왕실 정치적 중립성 깨고 50여년간 기후환경문제 피력한 찰스 3세 👑

영국은 의회가 모든 정치적인 부문을 결정하고, 국왕과 여왕은 정치에 일절 간섭하지 않습니다. 영국 왕실의 독립성과 공정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찰스 3세는 왕세자 시절부터 기후환경문제에 정치적 견해를 내비쳤습니다. 찰스 3세가 왕세자 시절이던 1970년 대중에게 환경문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첫 연설이 계기였습니다. 이후 그는 50여년 넘게 국제환경운동에서 핵심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찰스 3세가 기후환경문제에 정치적 견해를 내비친 것을 놓고 영국 사회 내부에서 논란이 일었던 적도 있습니다.

찰스 3세는 2006년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에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꼬집으며 엄격한 탄소배출권 거래제 채택을 주문했습니다. 또 당시 영국 7개 부처 장관들에게 기후변화를 비롯한 여러 사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비공식 서한을 보냈습니다.

2015년 더가디언 등 영국 현지매체 등을 통해 이같은 사실이 보도됐고, 찰스 3세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던 영국 왕실의 행보와 대비돼 정치권 및 일부 언론으로부터 비난받았습니다. 당시 그는 ‘간섭하는 왕세자(meddiling prince)’라는 수식어란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 2022년 9월 10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이후 찰스 3세 국왕은 첫 대국민 연설에서 개인적으로 깊은 관심이 있던 자선단체와 문제에 더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할 수 없다고 밝혔다 ©The Royal Family

찰스 3세 국왕 대국민 연설서 “더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 할애할 수 없어” 🎙️

논란만 있는 건 아닙니다.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영국을 국빈 방문한 당시 찰스 3세는 기후변화에 대해 미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했습니다. 같은해 12월 파리협정에서 탈퇴하려던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던 이도 찰스 3세였습니다.

그는 또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각국 정상들에게 기후문제 해결을 위해 산업계와 협력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더불어 찰스 3세는‘제1회 테라 카르타 디자인 랩(Terra Carta Design Lab)’ 대회를 주최하기도 했습니다. 이 대회는 디자인을 통해 기후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밖에도 400개가 넘는 자선단체를 이끌거나 활동에 참여해 왔습니다.

다만, 영국 헌법상으로 군주가 된 현재부터는 정치적으로 더 제한받을 수 있단 것이 중론입니다. 찰스 3세 역시 환경보호 방식에서 중립성을 유지하며 논란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작년 9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직후 열린 첫 대국민 연설에서 찰스 3세는 “새로운 책임과 함께 삶도 달라질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깊은 관심이 있던 자선단체와 문제에 더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찰스 3세 기후행동 지휘봉 윌리엄 왕세자에게 넘긴 것처럼 보여” 🤝

찰스 3세 연설 직후 미국 전(前) 부통령이자 환경운동가인 앨 고어는 트위터에 찰스 3세가 “수십년간의 리더십과 환경에 대한 깊은 헌신, 지구에 대한 미래 보호” 등에 노력한 것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러면서 고어 전 부통령은 찰스 3세가 왕좌에 오른 것이 “씁쓸한 순간”이었다고 인정했습니다.

환경보호를 위한 정부 자문기관, 내추럴 잉글랜드(Natural England)의 토니 주니퍼 회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찰스 3세는)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환경 인물 중 하나”라고 평가했습니다.

주니퍼 회장은 그가 50여년간 열대우림·농업·기후변화 등에 관한 논의에 참여하며 방대한 지식을 축적했다고 덧붙였습니다.

 

▲ 2022년 12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제2회 어스샷 상 시상식에 참석한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자비와 윌리엄 왕세자의 모습 ©The Earthshot Prize

이어 그는 작년 6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 행사 당시 윌리엄 왕세자의 공개연설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윌리엄 왕세자는 당시 연설에서 삼림벌채와 야생동물 보호 문제를 강조했습니다. 주니퍼 회장은 이 연설이 찰스 3세가 기후행동의 지휘봉을 장남인 윌리엄 왕세자에게 넘기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윌리엄 왕세자는 찰스 3세와 할아버지인 필립 공 등 왕실 의지에 따라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윌리엄 왕세자와 그의 아내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비는 2020년부터 기후문제를 해결할 혁신적인 기술을 찾는 ‘어스샷 상(Earthshot Prize)’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 대관식 개최 닷새 전인 지난 2일현지시각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런던 버킹엄궁에서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Anthony Albanese 트위터

호주 총리 “(찰스 3세) 군주로서 환경문제에 계속 참여할 것으로 생각돼” 🔉

반면, 일각에서는 군주의 자리에 오른 찰스 3세가 기후문제에 계속 목소리를 피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후문제를 다루는 것은 정치적 문제로 볼 것이 아니다”라며 “이는 인류의 삶의 질 그리고 생존에 관한 문제로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호주는 영연방 국가에 포함돼 있습니다.

앨버니지 총리는 그러면서 “(찰스 3세가) 해당 문제에 대해 계속 의견을 피력하기로 선택한다면 그건 완벽하게 수용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대관식(6일) 개최 직전인 지난 2일(현지시각) 앨버니지 총리는 찰스 3세와의 알현식에서 기후문제 등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습니다.

앨버니지 총리는 의전상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밝히면서도 “(찰스 3세가) 군주로서 환경문제에 계속 참여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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