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의 부채한도 상향 합의안이 지난 1일(현지시각) 미 의회 상원을 통과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상향 최종안에 합의를 이룬지 사흘 만입니다. 해당 법안은 전날(5월 31일) 미 하원에서도 가결됐습니다.

덕분에 미 재무부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예상 시점인 6월 5일을 앞두고 디폴트 고비를 넘어섰단 분석입니다.

이날 미 상원은 본회의를 열고 연방정부 부채한도의 적용을 2025년 1월까지 2년간 유예하기로 한 ‘재무책임법(Fiscal Responsibility Act)’을 찬성 63 대 반대 36으로 가결했습니다. 미 상하원을 모두 통과한 법안은 현재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통령 서명*을 거치면 법안은 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 가결 직후 성명을 통해 “이 초당적 합의는 우리 경제를 위한 큰 승리”라며 “가능한 한 빨리 서명하길 고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업데이트: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 통과 이틀 뒤인 지난 3일(현지시각) 해당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美 부채한도 31조 달러…“올해 1월 한도 초과해” 🚨

부채한도는 미국 정부가 차입할 수 있는 돈의 규모를 제한하기 위해 의회가 설정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정부가 빚을 너무 많이 지지 않도록 의회가 그 한도를 정한 것.

과거 2021년 12월, 미 의회는 법정 부채한도를 31조 3,810억 달러(약 4경 1,700조원)로 상향했습니다. 그런데 약 1년 만인 올해 1월 19일(현지시각) 그 한도를 넘었습니다.

추가로 국채를 발행할 수 없게 된 미 재무부는 공공분야 투자를 미루거나 정부 보유 현금을 활용해 급한 곳부터 돌려막는 조치로 디폴트 사태를 피해왔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부채한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미 의회의 설득이 필수였습니다. 문제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미 의회 하원은 야당인 공화당이 다수당이 된 것. 공화당은 바이든 정부의 지출을 지적하며, 그간 부채한도 상향에 반대를 고수해 왔습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2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캐빈 매카시 하원의장을 만나 연방정부 부채한도 인상 협상을 진행했다 ©백악관

백악관 경제 자문위 “미국 정부 디폴트 빠지면 주가 45% 폭락” 📉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정당 간 합의에 실패하면 “헌법상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며 “의회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초래한 경제적·재정적 재앙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미국은 디폴트 사태를 겪은 적이 없습니다. 만약 디폴트가 발생한다면 세계 금융 시장을 뒤흔들고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는 “미국 정부가 디폴트에 빠지면 주가가 45% 폭락할 것”이며, 2008년 금융위기와 유사한 침체를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디폴트 사태에 대한 불안감의 영향으로 뉴욕증시가 5월 24일부터 25일까지 이틀간 일제히 하락 마감했습니다.

 

▲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미 정부의 부채가 31조 달러를 넘었다는 포스터가 붙은 모습 ©KobeissiLetter 트위터

민주당·공화당 극적 협상…부채한도 상향 최종안에 무슨 내용 들어갔나? 🤔

디폴트 사태 우려로 인해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참석과 연계한 순방 일정을 단축했습니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양당 대표들과 만나 부채한도 상향 문제에 대한 협상을 이어갔습니다.

다행히 앞서 언급한대로 미국의 디폴트 사태는 해소됐습니다. 바이든 대통령과 매카시 의장은 미 정부의 부채한도 적용을 2025년 1월까지 유예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사실상 부채한도를 상향한 것입니다.

그 대신 비(非) 국방 분야 예산 지출은 2024 회계연도에서 동결됩니다. 2025 회계연도에는 1% 내에서 증액하는 등 정부 지출이 줄어듭니다.

이와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원 예산 환수, 푸드스탬프(식료품 구매 쿠폰)* 수급자 근로 요건 강화 등도 합의안에 포함됐습니다.

그중에서도 탈세 단속을 위해 10년간 국세청에 배정하기로 한 예산 800억 달러 중 200억 달러(약 26조원)가 삭감됐습니다.

 

+ 부채한도 상향 합의안의 핵심 쟁점이었던 ‘푸드스탬프’ 🍞
1964년 시작된 푸드스탬프. 정확히는 ‘영양 보충 지원 프로그램(SNAP)’입니다. 저소득층 식비 지원 제도로 미국의 대표적인 사회보장제도입니다. 정부지출 축소를 지향하는 공화당 입장에서 푸드스탬프는 눈엣가시였던 것. 푸드스탬프를 받을 수 있는 노동의무 적용 연령을 놓고 양당 간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양당의 합의로 적용 연령(기존 18~49세 → 54세)을 단계적으로 올리기로 했지만 미 하원에서 불만이 계속 됐던 것.

 

“IRA 예산 보전”…재생에너지 설비 허가 간소화 위한 NEPA 개정 착수 🌞

매카시 하원의장은 에너지안보 및 기후대응을 골자로 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내 보조금 삭감 의사도 내비쳤습니다. 구체적으로 IRA 전기자동차 보조금 등의 삭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경우 우리 산업계의 손해가 불가피하단 전망이 나왔습니다. 완성차기업인 현대자동차와 기아, 배터리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주요 기업 상당수가 현지 공장 투자를 예정 중이거나 확정해 건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예상과 달리 IRA 예산은 삭감 없이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한편,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한 국가환경정책법(NEPA) 개정도 이번 합의안의 주요 쟁점 중 하나였습니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NEPA 개정안은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황입니다.

NEPA는 대규모 기반시설(인프라) 건설 시 환경평가를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허가제 규정이 있습니다. 허가 과정이 길고 복잡해 발전사업자들의 장벽으로 작용한 것. NEPA가 개정되면 태양광·해상풍력 등 설비 허가 절차가 간소화돼 재생에너지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란 기대도 나옵니다.

 

▲ 웨스트버지니아주와 버지니아주를 잇는 마운트밸리 천연가스관 건설로 인해 숲이 벌채된 모습 ©Appalachians Against Pipelines

부채협상 상향 최종안에 천연가스관 건설 돌연 끼워넣기 😡

그러나 주요 환경단체들은 이번 부채협상 상향 최종 합의안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주요 환경단체가 반대해온 웨스트버지니아주(州) 천연가스관 건설 계획 ‘마운트밸리 가스관(Mountain Valley Pipeline)’이 돌연 합의안에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해당 계획은 웨스트버지니아주와 버지니아주를 잇는 303마일(약 488㎞)의 천연가스관입니다.

가스관 찬성 진영은 천연가스가 풍부한 애팔래치아 분지에서 시추 용량을 늘려 지역사회 경제와 에너지안보 향상에 기여될 것이라 주장합니다. 반면, 지역주민과 환경단체들은 화석연료 시추에 따른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을 이유로 반발합니다.

실제로 이로 인한 반발과 소송으로 인해 법원이 가스관의 국유림 횡단을 불허하면서 완공이 수년간 지연된 상황입니다. 현재 공정률은 94%로, 완공까지 단 6%만 남았습니다.

합의안에는 공사에 제동을 걸어온 제4연방항소법원 대신 워싱턴 D.C 연방항소법원으로 옮기고, 기관별 승인을 법원이 사후 검토하는 사항을 제한했습니다.

 

▲ 부채협상 향상 최종 합의안이 조 맨친 상원의원의 큰 승리였다고 지난 5월 28일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보도했다 ©Politico 캡처

천연가스관이 합의안에 들어간 것은 미 상원 내 영향력이 큰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을 포섭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됩니다.

웨스트버지니아주 소속인 맨친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보수성향이 큰 인물입니다. 맨친 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한 IRA 등 기후대응 및 사회복지 법안에 그간 반대표를 던져왔습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번 합의가 맨친 의원에게 ‘큰 승리’가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 등 주요 환경단체는 이번 합의가 앞서 알래스카주에서 승인된 석유 시추부지 개발사업 ‘윌로우 계획(Willow Project)’과 함께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대응 공약 후퇴를 보여주는 것이라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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