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비즐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세계 식량위기를 경고했습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각) 열린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한 비즐리 WFP 사무총장은 식량위기로 인해 “앞으로 몇 달간 참사 이상의 참사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요. 그는 이어 “이미 식량 가격이 치솟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비즐리 사무총장은 내전으로 직·간접적 사망자만 37만여명 이상인 예멘을 언급하며, “예멘에서는 800만 명에 대한 식량 배급이 50%로 줄었고, 현재 식량 배급량이 0%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습니다. WFP는 2020년 기준 우크라이나산 곡물 의존도가 각각 85%와 81%에 달하는 이집트와 레바논의 식량 안보가 커다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현재 WFP, 유엔식량농업기구(FAO)를 비롯한 국제기구, 경제계, 시민단체 등 기관을 막론하고 모든 곳이 세계 식량위기 문제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현 위기상황의 원인이 무엇이고, 해결책은 없는 것인지 정리해봤습니다.

 

© 우크라이나 북동부 도시 하르키우에 있는 지하철역에서 피란민들을 위한 식사가 배급되고 있다_WFP 제공

‘유럽의 빵바구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식량위기 현실화 🍞

‘유럽의 빵바구니’란 별명과 함께 세계 3대 곡창지대에 포함되는 우크라이나. 밀과 보리 수출량만 해도 세계 인구 3분의 1이 의존하고 있는데요. FAO에 의하면, 2020년 기준 우크라이나의 세계 밀 수출량에서 우크라이나의 비중은 러시아(약 18%), 미국(약 14%), 캐나다(약 14%) , 프랑스(약 10%)에 이어 5위를 차지합니다. 러시아까지 포함하면 두 국가는 세계 밀 수출의 29%가량을 차지하죠.

같은기간 우크라이나의 옥수수 수출량은 세계 13.2%를 차지합니다. 이밖에도 해바라기씨, 콩 등 기타 곡물류도 전 세계 수출량 TOP10에 들어가죠. 이 때문에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단 소식이 전해졌을 무렵부터 식량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습니다.

 

© 2019년 우크라이나 총수출 실적, 노란색은 곡물류가 차지하는 비중이다_OCE 자료 제공, greenium 편집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주요 곡물 수출이 막히기 시작하면서 세계 식량위기가 초읽기에 들어갔단 전망이 나왔습니다. 여기에 대러 제재로 인한 비료 가격 상승, 에너지 공급 문제 등이 겹치며 주요 곡물 수출국들이 연쇄적으로 수출 제한조치를 내린 것도 문제가 됐는데요. 예멘, 레바논, 이집트, 튀니지 등 곡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중동 및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이미 식량위기가 현실로 나타난 상황입니다. 현 식량위기 원인을 좀 더 정리해서 말한다면.

  • 파종면적 ↓, 파종시기 임박 🌾: 지난달 22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농업부는 러시아의 침공 여파로 곡물 파종 면적이 700만ha(헥타르)로 줄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면적인 1,500만ha에 비해 2배 이상 줄어든 것인데요. 파종이 완료된 면적도 15만ha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보리, 밀, 옥수수, 보리 등 우크라이나의 주요 생산 곡물의 경우 4월과 5월 사이에 파종을 시작해야 하나, 농민들이 전쟁터나 인접국으로 피난을 떠나 파종이 어려워졌다고.
  • 비료가격 폭등 🧑‍🌾: 3월 8일(현지시각), 러시아 정부는 서방의 대러 제재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곡물과 비료 수출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는데요. FAO에 의하면, 러시아는 연간 세계 비료의 13%인 5,000만 톤을 생산하는 국가입니다. 세계 2위의 비료 생산국인 러시아의 수출이 막히면서 비료가격이 폭등한 상황!
  • 에너지가격 상승 ⚡: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유럽연합(EU). 네덜란드만 해도 천연가스의 약 20%를 러시아에서 조달하고 있죠. EU 집행위는 대러 제재 차원에서 올해 말까지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 물량의 3분의 2를 줄이겠다고 밝혔는데요. 러시아 정부도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을 줄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죠. 이로 인해 에너지가격이 급상승하면서 비료 공장을 비롯한 산업계 전반이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아울러 전쟁으로 인한 사회기반시설 파괴, 수출 제한 등도 원인으로 꼽히는데요.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해협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실된 기뢰가 표류하며 곡물과 원유 등을 담은 선박들의 운영도 차질을 빚고 있단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 구호활동가들이 WFP에서 지원한 식량을 나르고 있다_WFP 제공

이집트부터 영국까지, 세계는 지금 식량가격 상승에 시름하는 중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세계 공급망 혼란으로 인해 국제 곡물가격은 계속 상승세를 유지했는데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국제 곡물가격을 포함한 거의 모든 식량가격이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농산물 가격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즉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 세계적으로 심화되는 상황인데요.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을 중심으로 식량 문제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의존도가 85%인 이집트의 경우 최근 곡물가격 상승으로 빵값이 크게 올랐습니다. 이에 이집트 정부는 빵값 상한선을 정해 가격을 임의로 올리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또 이를 지키지 않고 가격을 올리면 최소 10만 파운드(한화 약 68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죠.

중동에 위치한 레바논의 경우 밀 수입량의 상당수를 우크라이나에 의존하고 있는데요.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밀가루가 상점에서 자취를 감춘 상태일뿐더러, 빵 가격도 최대 70%까지 올랐습니다. 마찬가지로 곡물 수입의존도가 높은 이라크에서는 3월 초 밀가루 등 식품 가격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죠.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내놓은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 55개국 중 25개국은 전체 밀 수입량의 3분의 1 이상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15개국은 그 비중이 50%를 넘었는데요. UNCTAD는 비료 및 에너지가격 상승과 맞물려 일부 지역에서는 식량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진단했을뿐더러, 터키·중국·인도의 식량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현재 레바논 등 일부 국가들은 국제사회에 식량 지원을 호소했는데요.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식량원조를 담당하는 세계식량계획(WFP)이 구매하는 전체 곡물 중 50%가 우크라니아에서 생산되기 때문이죠.

WFP는 현재 기아에 시달리는 전 세계 인구 1억 2,500만 명에게 식량을 지원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식량·원자재·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지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 국제 밀 가격 상승으로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 국가의 식품 가격이 급등했을 뿐더러(왼), 영국의 경우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온실 운영이 어려워졌다_Mattew Child

주요 선진국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국의 경우 대러 제재로 인해 에너지가격이 급등했는데요. 이로 인해 오이·토마토·가지 등을 재배하는 온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몇몇 온실의 경우 전기세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았죠.

영국 생산자협회(Growers Association)는 지난해 오이 생산에 약 25펜스의 비용이 들었으나, 현재 생산가격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는데요. 단체는 에너지가격이 추후 더 상승할 경우 70펜스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오이 생산이 어려워지자 ‘오이 위기(Cucumber Crisis)’란 신조어도 등장했습니다. 온실재배로 유명한 네덜란드도 비슷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스페인이탈리아에서는 가축 사료를 구하지 못해 최악의 경우 가축을 도살해야 한단 전망도 나왔는데요. 이들 국가들은 옥수수 등 가축 사료 구매를 위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스페인 이베리코 돼지, 이탈리아 모차렐라 치즈 등 축산가공품의 가격도 연쇄적으로 출렁일 수 있단 위기감이 유럽 전역에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식량위기,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

지난달 24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주요 의제 중 하나는 식량위기였습니다. G7 정상들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신 미국과 캐나다의 곡물 생산을 늘리는 등의 방안을 논의했으나 구체적인 해법은 도출하지 못했죠.

주요국 및 국제기구 등을 중심으로 식량위기를 타파할 논의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EU 집행위는 2020년 유럽 그린딜의 일환으로 지속가능한 EU 식품 시스템 ‘팜 투 포크(Farm to Fork)’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 정책에는 2030년까지 화학 비료, 항생제 사용량 등을 줄이고, 유기농업 면적을 전체 농경지의 25%로 늘리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EU 집행위는 최근 식량위기로 인해 해당 정책 승인을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또 ‘위기 상황에서의 식품 공급 및 식량안보를 위한 비상 계획’의 일환으로 휴경지 및 보존구역을 경작지로 전환하는 내용을 논의했죠.

최근 미국농민연맹(AFBP) 등 여러 농업단체 또한 미국 농무부(USDA)에 보전휴경프로그램(CRP)에 따라 보호되는 지역에서의 긴급 경작을 허용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보존구역을 경작지로 전환할 경우 수십년간 달성한 노력이 지워지고, 기후 및 생물다양성 위기 완화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단 문제가 있는데요. 이에 환경단체들은 경작지 전환을 통한 곡물 생산보다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아예 이번 위기를 기회 삼아 합성비료 및 가축 사료용 곡물 사용량을 줄여야 한단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