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0년, 한국에서는 더 이상 사과를 재배할 수 없습니다.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가 기후변화 시나리오(SSP 5*)에 따라 사과, 배, 복숭아, 포도 등 국내 6대 과일 재배지 변동을 예측한 결과입니다. 이는 비단 과일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향후 기후변화가 더 심화되면 거의 모든 식량작물 재배지에 변화가 생길 전망입니다.

이에 기후변화가 우리 식단에 어떤 변화를 불러오고 이를 어떻게 대비할지 탐구한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미국의 개념예술가 겸 작가인 조나단 키츠가 참여·개발한 인터랙티브 온라인 플랫폼 ‘테이스팅 투모로우(Tasting Tomorrow)’의 이야기입니다.

키츠는 기후가 극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앞으로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현지재료를 사용한 전통요리를 만나기 어려워질 것이란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이에 기후모델링을 통해 전통요리를 지켜낼 방법을 찾았냈다는데요.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SSP 5(Shared Socio-economic Pathway 5): SSP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에서 제6차 평가보고서(AR6)에서 채택한 신규 온실가스 경로 시나리오를 뜻한다. 적응 및 감축 노력의 정도에 따라 SSP 1~5까지 존재한다. SSP 5는 화석연료에 의존한 고속성장이 계속돼 온실가스 감축에 실패한 경우를 가정한다.

 

▲ 미래 기후 예측 플랫폼 클라이밋 아날로그에 따르면 2080년 스페인 부르고스와 유사기후를 가진 곳은 미국 애리조나 투산 지역이다 ©BIOTOPIA Naturkundemuseum Bayern 유튜브 캡처

기후변화로 달라질 식량지도, ‘전통요리’는 어떻게 될까? 🍽️

키츠는 저명한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s) 예술가입니다. 다양한 상황에 ‘만약’을 질문하며 여러 대체 현실을 탐구해왔습니다. 최근 그는 ‘전통요리’와 기후변화를 접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통요리에 사용되는 식재료는 현지에서 오랫동안 재배된 작물이 사용됩니다. 때문에 전통요리에는 해당 지역의 문화가 녹아들어 있습니다.

문제는 최근의 급격한 기후변화로 전 세계 작물 재배 지도가 급격하게 바뀌고 있고, 또 바뀔 예정이란 것. 이에 키츠는 ‘만약 기후변화가 계속된다면, 각지의 문화와 정체성이 담긴 전통요리는 어떻게 바뀔까’란 질문을 던졌습니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먼저 ‘클라이밋 아날로그(climate analogues)’ 플랫폼을 사용해 특정 지역의 미래 기후의 예측치를 찾았습니다.

클라이밋 아날로그는 스위스의 기상분석 기업인 메테오테스트(Meteotest)와 호주 금융민원청(AFCA)에서 개발한 웹기반 애플리케이션(앱)입니다. 이 플랫폼은 특정 지역의 미래 기후를 예측해 그와 유사한 기후를 가진 현재 지역을 찾습니다. 여기에는 기후모델링** 기술이 사용됐습니다.

**기후모델링: 대기, 해양, 지면 등 기후시스템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을 설명하기 위해, 기후 요소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물리, 역학적인 수치 방정식으로 단순화시켜 시뮬레이션하는 작업을 뜻한다.

 

▲ 투산의 저명한 요리사 조나스 와일더왼와 조나단 키츠오가 2080년 스페인 부르고스의 유사기후를 가진 투산의 식재료를 사용해 2080년의 올라 포르리다를 재구성하고 있다 ©Jonathan Mabry BIOTOPIA Naturkundemuseum Bayern 유튜브 캡처

2080년 스페인 전통요리의 미래, ‘2023년 미국 애리조나’서 찾았다! 🇪🇸

이를 기반으로 키츠는 유사기후를 가진 지역의 재료를 탐구해, 미래의 전통요리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대체 식재료를 찾았습니다.

그 중 키츠는 스페인 부르고스의 전통요리인 ‘올라 포드리다(olla podrida)’에 주목했습니다. 여러 고기와 곡물, 채소를 사용해 만든 스튜입니다.

2080년 스페인 중북부의 도시 부르고스의 예측 기후는 오늘날 미국 애리조나주의 투손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라 포르리다의 핵심재료인 스페인산 팥은 2080년에는 스페인에서 재배될 수 없을 전망입니다.

즉, 2080년 부르고스 지역민들은 지금의 식재료와 요리법을 사용하는 올라 포드리다를 먹기 어려워진다는 얘기입니다.

이에 키츠는 투산의 저명한 요리사인 조나스 와일더와 함께 2080년의 올라 포르리다를 재구성하는 실험에 착수했습니다. 이들은 2080년 스페인 부르고스의 예측 기후와 유사한 지역인 애리조나주 투손의 식재료 중에서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았습니다.

스페인산 팥은 투손의 소노란 사막 등 가장 건조하고 더운 기후에서도 자랄 수 있는 테페리(tepery) 콩으로 대체됐습니다. 올라 포르리다 스튜에는 쌀과 돼지피를 사용한 소시지가 곁들여지는데요. 물 집약적인 쌀 대신 건조지역에서 잘 자라는 소노란 밀이 사용됐습니다.

 

👉 기후변화에 밀가루 대체할 작물로 주목 받는 또다른 작물, 밤바라땅콩!

 

▲ 테이스팅 투로우 프로토타입시제품 사람들은 오픈 플랫폼에 참여해 유사기후의 대체 가능한 식재료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검색할 수 있다 ©Tasting Tomorrow

미래 대체 식재료 찾기 위해선 ‘문화적 노하우’ 공유 필요해! 🤝

키츠는 스페인 사례를 시연하는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중들이 미래의 유사기후 지역을 찾고, 변화한 기후에 맞게 식재료를 대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플랫폼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화형 인터랙티브 플랫폼 ‘테이스팅 투모로우’입니다. 이름 그대로 기후변화로 변화할 ‘미래를 맛볼 수 있도록’ 돕는데요.

누구나 자신의 고향에서 자라는 식재료의 ▲종류 ▲요리법 ▲맛과 영양 등을 기록할 수 있는 오픈 데이터베이스(DB) 플랫폼 형태로 운영됩니다.

현재 미완성 상태이며, 대중의 지식 참여 형태로 정보가 갱신되고 있습니다. 약 2,000개 도시에서 각 전통요리 정보가 올라오는 중입니다.

 

▲ 테이스팅 투모로우 홈페이지에서는 대중들의 참여로 각국 도시들의 전통요리에 사용되는 식재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한국 관련 정보 또한 테이스팅 투모로우 홈페이지에 기재공유할 수 있다 ©Tasting Tomorrow

키츠는 해당 작업이 사람들이 미래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강조합니다.

또 이를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협업이 필요하다고 그는 피력했습니다. 변화한 기후에 맞는 작물을 재배하려면 지역별로 생소한 식용 작물을 재배하고 처리하는데 필요한 문화적 지식이 널리 공유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키츠는 지역 사람들의 문화적 지식 공유의 중요성을 ‘사막 참마(desert yam)’란 재료를 통해 설명했습니다. 사막 참마는 호주 중북부 지역에서만 자라는 희귀한 다년생 작물입니다. 덥고 건조한 지역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기후탄력작물로 관심을 받습니다.

그러나 사막 참마는 독소를 포함하고 있어 바로 섭취할 시 인체에 해롭습니다. 키츠는 며칠 동안 강에 담가 독소를 빼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지식들이 바로 우리가 공유해야 할 문화적 ‘노하우’라고 강조합니다.

 

▲ 키츠는 전통요리야말로 사람들이 미래를 준비하도록 도울 진정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BIOTOPIA Naturkundemuseum Bayern 유튜브 캡처

왜 하필 전통요리에 주목했을까?…“식문화의 보편성 때문!” 🤔

그런데 기후변화는 우리의 식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칩니다. 키츠는 왜 그중에서도 ‘전통요리’에 주목했을까요?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전통요리야말로 “사람들이 미래를 준비하도록 도울 수 있는 진정한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전통요리는 굳건하고 변하지 않는다는 이미지와 달리, 실제론 매우 역동적이란 것인데요.

요리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관심사란 것도 중요한 대목입니다. 키츠는 ‘기후이동’이 기후난민만의 문제가 아니란 점을 꼬집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기후이동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 말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가 섞이며 충돌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키츠는 이에 여러 지역 간 식재료의 교류가 다양한 공동체, 이질적인 문화를 연결하고 사람들의 협력을 증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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