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 사용후 배터리가 순환경제를 이끌 미래먹거리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다만, 국내 배터리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선 사용후 배터리 평가 및 진단이 좀 더 체계화될 필요성이 있단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왔습니다.

지난 19일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제주센터)가 주관한 ‘테크 아일랜드 제주’ 순환경제 밋업(meet-up)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밝힌 말입니다.

‘테크 아일랜드 제주’는 기술기반 창업가들에게 기술혁신과 실증화 사례를 제공하고 산업 전반에 분포한 아이디어를 모아 협업 산업모델을 발굴하기 위해 제주센터가 지난해부터 추진한 프로그램입니다.

이번 주제는 순환경제였는데요. 제주도 순환경제의 유망분야인 배터리 산업을 주제로 관련 스타트업과 투자자, 그리고 기관별 발제와 토론, 네크워킹이 진행됐습니다. 폐배터리와 관련해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그리니엄이 취재했습니다.

 

▲ 경기 시흥시 미래폐자원 거점수거센터 내 전기차 폐배터리 보관 창고 모습 자동화 시설이 설치돼 거대한 크레인이 움직이며 폐배터리를 옮긴다 ©한국환경공단

환경부, 2030년 사용후 배터리 10만여개 배출 예상돼 🔋

국토교통부 통계누리에 의하면, 국내 전기차 누적 판매 대수는 지난 8월 30만대를 넘어섰습니다. 1년 새 12만 5,000여대 이상 증가한 것입니다.

전기차 보급에 속도가 붙으며 폐배터리 배출도 빠르게 늘어날 전망입니다. 환경부에 의하면, 지난해 연간 폐배터리 배출 개수는 1,075개. 이는 2024년 1만여개를 넘기고, 2025년 3만 1,696개 2030년 10만 7,500개로 증가할 전망입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에서 배출된 배터리는 재차 사용이 가능하단 점을 강조합니다. 이 때문에 폐기물로 상정하는 ‘폐배터리’ 대신 ‘사용후 배터리’란 용어 사용을 권장합니다.

사용후 배터리는 재사용·재활용됩니다. 재사용은 사용후 배터리의 잔존 용량 수명이나 배터리 건강 상태 등에 따라 원래 목적이었던 전기차용 배터리로 다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대개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재사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재활용은 아예 사용이 불가능한 배터리를 분해해 핵심 소재를 추출해 새로운 배터리 제작에 활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 19일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테크 아일랜드 제주 순환경제 밋업왼에서 손정수 KIGAM 책임연구원오은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배터리 재활용 시장 성장 중…“배터리 산업 순환경제 구조로 전환해야 해” 📈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의 손정수 책임연구원은 세계 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성장 중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는 2025년부터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구체적으로 2025년 7억 9,400만 달러(약 1조 1,300억원)에서 2040년 573억 9,500만 달러(약 82조 1,000억원) 규모까지 성장할 전망입니다. 삼일회계법인 또한 ‘인사이트 리서치(Insight Research): 순환경제로의 전환과 대응 전략’ 보고서에서 플라스틱과 함께 사용후 배터리가 순환경제를 견인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은 바 있는데요.

현재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 상업화에 성공한 기업은 세계에서 단 5개뿐입니다. 중국 기업 3곳(브룬프 Brunp·거린메이 GEM·화유코발드 Huayou)을 포함해 벨기에 유미코아(Umicore), 한국 성일하이텍 등인데요. 이들은 니켈·코발트·리튬·망간·구리 등 5개 원료를 추출할 수 있는 공정 상용화에 성공해 배터리 기업들에게 원료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배터리 산업을 순환경제 구조로 전환하면 ▲천연 광물자원 소비 감소 ▲이산화탄소(CO2) 배출량 감소 ▲지속가능한 발전 도모 등의 장점이 있다고 손 연구원은 강조했습니다.

이는 순환경제가 기존 선형경제와 달리 재제조·재사용·재활용 등을 기반으로 사용후 배터리를 최대한 오래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 전기차 배터리 구성도 셀 모듈 팩으로 크게 구성된다 ©삼성SDI

전기차별 크기·무게 모두 다른 배터리…“배터리 재사용·재활용 진단 중요” 🔍

다만, 배터리 산업을 순환경제로 전환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고 손 연구원은 꼬집었습니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시스템이 기업별로 제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기차 배터리 시스템은 크게 ▲셀(Cell) ▲모듈(Module) ▲팩(Pack) 등으로 구성됩니다. 배터리의 최소 단위인 ‘셀’이 여러 개 모여 ‘모듈’이 되는데요. 모듈이 여러 개 모인 것,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전기차에서 보는 커다란 배터리를 ‘팩’이라 부릅니다.

손 연구원은 테슬라, BMW, 닛산 등 3개 기업의 배터리팩 설계 구조가 모두 다른 점을 예시로 설명했습니다. 그는 “셀, 모듈, 팩이 각각 자동차 회사마다 무게와 크기 모두 다르다”며 “(배터리) 재사용 뿐만 아니라, 재활용도 자동화도 힘들고 기술 표준화도 힘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 손정수 KIGAM 책임연구원이 발표를 하는 모습 사진 속 자료는 위에서부터 테슬라 BMW 닛산 전기차의 배터리팩 구조 모습이다 세 기업 배터리 모두 셀 모듈 팩 등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유튜브 캡처

이 때문에 손 연구원은 사용후 배터리의 재사용·재활용을 진단 및 평가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사용후 배터리의 재사용 및 재활용 여부 비용효과적으로 신속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는데요. 손 연구원은 “(배터리 재사용·재활용 비용의 뒷 자리에) 0이 하나 차이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배터리팩 안에 있는 다른 구성 부품들도 재활용·재사용해야 한다고 손 연구원은 강조했습니다. 가령 227kg 되는 배터리를 분해하면 약 40%가 플라스틱 등 배터리가 아닌 부품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손 연구원은 “팩을 재활용해 돈을 벌고, 환경에 문제가 되지 않게 처리하기 위해선 나머지 40%도 어떻게 할 것인가 방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사용후 배터리 재사용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 독일 화학 기업 뒤젠펠트가 배터리 재활용을 하는 모습. 작업자가 먼저 배터리를 ‘모듈’ 단위로 분해하면, 이를 완전히 분해 및 파쇄한다. 이 기업은 여기서 흑연, 망간, 니켈, 코발트, 리튬 등을 추출하는 특허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Duesenfeld

한편,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 기술을 더욱 향상해야 한다고 손 연구원은 제언했습니다. 그는 미래 상용화해야 하는 기술로 독일 화학기업 뒤젠펠트(Duesenfeld)의 특허기술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 기업은 배터리팩을 모듈 단위까지 분해한 후 파쇄기에 넣어 분해합니다. 이 과정에서 ‘검은덩어리(Black Mass·블랙매스)’라 불리는 물질이 생성됩니다. 리튬은 액체금속과 함께 생성된 슬러그 형태로 혼합돼 있는데요. 뒤젠펠트는 이러한 액체들을 감압해 증발시키는 기술을 사용합니다. 덕분에 블랙매스의 재활용 공정이 쉬워지는데요.

뒤젠펠트는 자사 기술을 이용하면 배터리 구성 요소의 96%를 회수해 신규 배터리에 재활용할 수 있고, 채굴을 통해 배터리 소재를 얻는 방식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최대 40% 감소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배터리 재활용·재사용? 국내 산업 막 걸음마 시작해 ♻️
우리나라는 사용후 배터리 관련 제도가 미비할뿐더러, 재활용 및 재사용 기준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사용후 배터리 상태를 평가하는 안전성 검사제도의 부재로 기업들이 관련 사업 진출에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다행히 사용후 배터리의 안전성을 검사하는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이 지난 9월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관련 산업은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 우리나라 배터리 순환경제, 어디쯤 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