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미 중심의 배터리 공급망 재편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번 재편으로 배터리 순환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란 기대가 일각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자동차와 차량부품 수출액이 대미수출액의 약 25%를 차지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전기차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단 우려가 공존합니다.

지난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참석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국제 통상규범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혔는데요. 우리 정부는 한국산 전기차 제외 사항과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분쟁해결 절차를 밟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이에 대해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 대다수인데요. 미국이 추진하는 배터리 공급망 재편의 핵심, 배터리 순환경제가 무엇이고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살펴봅니다.

 

© Li-Cycle

배터리 순환경제, 재사용·재제조·재활용으로 구분된단 사실! 🔋

배터리 순환경제란 폐배터리를 기존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재사용 혹은 폐배터리 내 금속을 추출해 신규 배터리 제조에 사용함으로써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모델입니다.

전기차 폐배터리를 순환하는 방법은 크게 ▲재사용, ▲재제조, ▲재활용 등 3가지인데요. 각각 폐배터리에 남은 가치에 따라 구분됩니다.

 

© greenium

전기차 배터리의 수명이 끝나는 시점은 충전가능 용량이 80% 이하로 떨어질 때입니다. 충전가능용량이 80%나 남아있음에도 수명종료로 보는 이유는 ‘안전’ 때문입니다.

순간적으로 고출력을 내야 하는 자동차 특성상, 배터리충전능력(SoH*)이 80% 이하로 떨어지면 운행상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사용후 배터리**는 우선 폐차업체나 지방자치단체로 옮겨집니다. 이후 민관검사기관에서 성능검사와 평가를 받은 뒤 활용방식이 결정되는데요.

잔존수명(충전가능 용량)이 ▲80% 이상일 경우 재사용, ▲65~80%이면 재제조, ▲65% 이하면 재활용에 사용됩니다.

*SoH(State of health) : 최초 설계능력대비 현재 충전능력을 백분율 표시한 수치.

**사용후 배터리 : 폐배터리를 지칭하는 용어. 전문가들은 전기차에서 배출되는 배터리는 재차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폐기물로 상정하는 ‘폐배터리’ 대신 ‘사용후 배터리’란 용어 사용을 권장한다.

 

© 경기 시흥시 미래폐자원 거점수거센터에서 보관 중인 폐배터리들_한국환경공단 제공

우리나라 배터리 순환경제, 어디쯤 왔을까? 🤔

국내 폐배터리 산업은 아직 준비단계를 밟는 중입니다. 법령 정비 및 제도 개선이 아직 진행 중이고, 주원료인 전기차 폐배터리 발생량도 당장은 적기 때문인데요.

폐배터리는 전기차를 5년 이상 사용했을 때 발생합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국내 폐배터리 수가 2025년 8,321개에서 2029년 7만 8,981개로 늘 것으로 전망했는데요. 이에 정부는 관련 정책을 세우고 산업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우선 정부는 2020년부터 총 171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태양광 폐패널과 폐배터리 유통기반이 될 미래폐자원 거점수거센터를 운영 중입니다. 거점수거센터는 경기 시흥시, 충남 홍성군, 전북 정읍시, 대구 달서구 등 전국 4개 권역에 있는데요. 이들 센터는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를 회수해 성능 평가 후 보관 및 민간에 매각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또한, 지난해 7월 산자부는 2030 이차전지 산업(K-Battery)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사용후 배터리 산업 시장 활성화를 위한 육성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특히, 시장활성화를 위한 실증특례를 적용하는 규제샌드박스 사업이 활발한데요. 올해 6월 기준, 배터리 재사용·재활용 분야에서만 17건의 규제샌드박스 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각각 지난 6월과 7월에 발표된 새정부 경제정책 방향과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에서도 폐배터리 분야가 비중 있게 다뤄졌습니다. 하반기에는 사용후 전기차 배터리 산업 방안이 개별정책으로 발표될 예정입니다.

 

© KDB미래전략연구소 산업기술리서치센터 ‘국내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산업 현황과 의미’ 보고서, greenium 편집

그간 재사용·재제조 분야는 시범사업과 실증특례 사업이 대부분이었고, 재활용 분야는 재활용 전문기업이나 소형 배터리나 공정 부산물을 처리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허나, 이제는 기업들이 앞다퉈 폐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배터리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뿐만 아니라 자동차제조·화학·건설 등 다양한 기업이 각자의 고유사업과 연계한 전략과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배터리 규격 표준화가 이뤄지면서 자동차 기업과 배터리 기업 간의 재사용·재제조 협업이 증가했습니다. 아울러 재활용 기술력 확보와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해외 기업과의 인수합병(M&A)과 합작법인(Joint Venture)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각)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IRA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해당 법안에는 중국산 전기차 및 배터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_White House

IRA 법안으로 폐배터리 ‘재활용’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 ♻️

지난 8월 16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IRA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폐배터리 순환경제에서도 재활용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IRA 법안은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전기차 배터리 조건으로 ‘북미 조립’과 ‘북미 채굴·가공 광물 사용’을 제시했는데요. 생산공장을 이전하면 해결되는 전자와 달리, 후자는 조금 더 까다롭습니다. 리튬, 코발트, 니켈 등의 핵심 광물의 대부분이 중국산이거나 중국 기업이 아프리카·남미에 투자해 확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폐배터리에서 핵심광물을 회수하는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 확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데요. 미국 정부의 지원에 발맞춰, 기업들도 배터리 재활용 산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북미 최대 리튬이온배터리 재활용기업 라이사이클(Li-Cycle)이 페리닷(Perridot)과 합병 후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에 성공했는데요. 이 기업은 2016년 설립된 캐나다 기업으로, 미 증시 상장 후 시가총액이 13억 달러(약 1조 7000억원)을 돌파했습니다.

라이사이클은 1억 7,500만 달러(한화 약 2330억원)를 투자해 뉴욕주에 북미 최대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건설할 예정입니다. 해당 공장은 폐배터리 최대 2만 톤을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 테슬라는 자체적으로 배터리셀 원료의 약 92%까지 회수가 가능한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지난해 8월 테슬라는 자체 개발 기술을 통해 2020년까지 니켈 1,300톤, 구리 400톤, 코발트 80톤을 재활용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재활용에 드는 에너지는 10분의 1로 줄이면서도 배터리 핵심물질의 95% 이상 회수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스타트업도 있는데요. 미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스핀오프 스타트업인 시트레이션(SiTration)입니다.

시트레이션은 지난 12일(현지시각) 235만 달러(약 31억원)의 사전 시드(pre-seed)펀딩에 성공해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요. 이외에도 여러 스타트업이 배터리 재활용 산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 삼성SDI는 지난 25일 한국을 방문한 미국 인디애나 주지사와 만나 미국 자동차기업 스텔란티스와의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JV)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했다_삼성SDI

한국도 배터리 재활용 기술 개발에 뛰어드는 중! 🏃

그간 중국에서 소재를 수입해온 우리나라 기업들도 배터리 재활용 체계를 구축하는데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미국 IRA 법안에 발맞추려면 중국 의존도가 높은 배터리 소재를 국산화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인데요.

우선 삼성SDI는 천안·울산 사업장에 스크랩(고철)에서 광물 원자재를 추출하는 스크랩순환체계를 구축했습니다. 헝가리와 말레이시아 등 생산거점에도 폐배터리 재활용 관련 선순환체계를 구축할 계획인데요. 더불어 리사이클연구랩을 신설해 폐배터리 재활용과 원자재 회수율 향상을 위한 연구도 진행합니다. 저비용의 친환경 소재 회수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집중할 방침이라고 삼성SDI는 밝혔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LG화학은 앞서 소개한 라이사이클에 600억 원을 투자해 지분을 확보했는데요. 향후 10년간 재활용 니켈 2만 톤을 공급받을 예정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2분기 실적 발표에서 폐배터리재활용(BMR) 사업을 본격 추진해 오는 2025년부터 상업 가동에 나설 것이라 밝혔습니다.

한편, 지난 25일 포스코그룹은 연간 7,000톤의 생산능력을 갖춘 재활용 공장을 운영할 것이라 발표했는데요. 폴란드 브젝돌니에 설립된 배터리 재활용 공장 ‘PLSC(Poland Legnica Sourcing Center)’을 준공했고,, 국내 배터리 재활용기업 성일하이텍과 협업해 운영할 계획이라 설명했습니다.

이밖에도 에코프로씨엔지, 영풍 등 배터리 재활용 고유기술을 확보한 중소규모의 기업들이 다양한 협업을 통해 그 기술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 배터리 재활용기업 1만 개 설립한 중국처럼, 적극적인 산업 육성 필요해 🇨🇳
한편, 유진투자증권은 ‘불충분한 광물(Not Enough Minerals-Circular Economy)’ 보고서를 통해 올해 7월 기준 중국의 배터리 재활용 기업이 1만 곳을 넘었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이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관련 산업을 육성한 결과인데요. 중국 정부는 오는 2025년 완전한 배터리 재활용 체계 구축을 목표로 기술 육성과 세부규정 보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배터리 공급망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우리 정부도 적극적인 정책으로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